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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빈번해진 이상기후, 막연한 ‘환경’이 아닌 이젠 ‘먹고사는’ 문제 [기후위기와 식량재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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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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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태풍으로 농산물 품귀에 최근 ‘토마토 빠진 햄버거’ 등장
기후위기는 조각난 빙하 타고 표류하는 북극곰만의 문제 아냐

광범위한 이상기상은 식량생산 타격 넘어 세계 경제에 큰 영향
“온실가스 안 줄이면 식량안보 문제에 직면” 유엔 보고서 나와
“햄버거에 토마토를 제공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버거킹)

자칭 ‘햄버거의 왕(Burger King)’ 버거킹이 느닷없이 이런 공지를 내놓은 이유가 뭘까? 최근 토마토 가격이 너무 올라 토마토를 적정가에 조달하기가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지난 25일 기준 토마토 10㎏(중품 기준)의 도매시장 가격은 5만8160원으로 1년 전 2만4720원의 딱 두 배 수준으로 올랐다. 52일에 이른 긴 장마와 연이은 태풍 영향으로 가격이 급등한 것인데, 다른 패스트푸드 체인들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맥도날드 일부 매장에서는 햄버거에 토마토를 뺀 대신 음료 쿠폰을 제공하고, 롯데리아는 토마토 슬라이스를 빼는 대신 가격을 할인하겠다고 밝혔다.

일단 토마토 시장 출하량이 회복될 것으로 예상되는 10월 중순까지 벌어질 단발성 해프닝이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상기상’(Abnomal Weather)이 점점 빈발하는 한반도 기후를 고려하면 가까운 미래에 매일같이 마주치는 일상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2020년 대한민국의 기록적인 장마와 토마토 가격 상승은 오래전부터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세계 곳곳에서 반복돼 왔던 이상기상의 전형이다. 아랍 주요국 장기 독재자들이 줄줄이 축출된 ‘아랍의 봄’은 2011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유례없는 이상고온 현상으로 곡물 출하량이 급감하자 러시아 정부가 곡물수출을 제한하면서 촉발됐다. 수입길이 막힌 뒤 식량난을 호소하던 민중 봉기가 정권 퇴진 운동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이 같은 이상기상 현상은 때로는 프랑스의 가뭄으로, 때로는 미국의 장마로 세계 곡창지대 곳곳을 습격하며 기습적인 곡물파동을 일으키고 있다.

산발적이고 국지적인 현상으로 취급되던 이상기상 문제가 국제사회에서 공식적으로 ‘환경’이 아닌 ‘먹고사는’ 경제 문제로 급부상하고 있다. 수척한 모습의 북극곰이 녹아버린 빙하 위를 표류하는 모습이나, 몰디브가 조만간 수몰될지 모른다는 위협을 넘어 당장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로 기후문제가 다가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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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 스위스 다보스에서 개최된 세계경제포럼(WEF)은 향후 10년 세계를 위협할 요인 ‘톱5’ 모두를 기후변화에서 기인한 환경문제로 꼽았다. WEF의 분석을 보면 전 세계 44조달러 규모(약 5경1629조원)의 경제적 가치창출 활동이 자연과 자연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의존하고 있다. 이는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을 넘는 규모로, 기후변화에 따른 자연 손실이 환경을 넘어 인간의 경제적 활동 절반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다.

이상기상으로 가장 치명적인 타격을 받는 것이 식량 부문이다. 생산량이 줄고, 가격이 급등하며, 기아 인구를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 매킨지는 해수 온도 상승으로 인한 조업부진으로 어업 종사자의 대규모 피해를 예상했는데 영향권에 들어가는 인구수만 8억명에 육박한다. 유엔세계식량기획(WFP)은 이미 저개발국가를 중심으로 이상기상 현상이 식량자급 능력에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WFP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지구상의 기아 인구는 8억2100만명 이상으로 추산되는데 이는 1년 전보다 1100만명 증가한 수준이다. 지난 수십년간의 기아인구 감소 추세가 처음으로 반전된 것으로, WFP는 아프리카 지역의 이례적인 가뭄이 식량체계를 심각하게 훼손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저개발국가가 기근으로 시름하는 동안 선진국은 물가상승의 압박이 더해진다. 지난해 유엔 산하 기후변화 정부간 협의체인 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고 지속가능하게 식량을 생산하지 않을 경우, 수십년 내에 전 인류가 ‘식량안보’ 문제에 직면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놨다.

보고서는 지구온난화로 글로벌 식량 공급망이 불안정해지면서 2050년에는 주요 곡물 가격이 최대 23%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매킨지는 연간 밀·옥수수·대두·쌀 작황이 10% 감소할 확률이 지금은 6% 정도이지만 2050년이 되면 18%로 뛸 것으로 예상했다. 식료품 가격의 가파른 상승은 불가피할 것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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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상으로 인한 타격은 비단 식량 분야에 국한되지 않는다. 글로벌 컨설팅 그룹 매킨지는 2040년까지 전 세계 반도체업계의 자연재해 손실이 지금보다 4배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한국 등 글로벌 반도체 생산 벨트를 덮치는 슈퍼 태풍의 잦은 내습을 상정한 것으로, 업계의 대응이 부실할 경우 순이익이 35%나 감소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 밖에 미국 플로리다의 부동산 가격은 2050년까지 15~30%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는데, 이 역시 앞으로 더 잦아질 슈퍼 허리케인의 변수를 고려한 것이다.

이상호 농촌진흥청 기후영향예측평가연구단장은 “식량 공급체계가 글로벌 네트워크로 모두 연결돼있기 때문에 세계 각국이 이상기후와 이에 따른 식량공급 부족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면서 “특히 올해 들어 이상기상 현상이 빈발하면서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각국이 해외식량 확보와 이상기상 극복 기술 개발에서 주요 곡물 가격동향 예측까지 가능한 모든 대응방안을 구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호준 기자 hj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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