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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삶과 문화] 노들섬의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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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63빌딩에서 바라본 노들섬. 배우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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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은 어수선했다. 사상 최장의 장마로 몸과 마음이 늘 눅눅했다. 거기에 태풍까지 몇 차례 소란을 더했다. 이상 기후에 주눅 들어, 이토록 맑은 가을을 다시 만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밀려갈 것은 가고 올 것은 기어코 온다. 열렬한 것들이 순해지고, 들뜬 삶이 가라앉고 있다. 애착의 자리에 아름다운 헐거움이 내려앉을 것이다. 그리고 곧 이별과 침묵의 시간이 올 것이다.

내가 있는 서울 노들섬도 가을이 한창이다. 노들섬 하부 도로로 내려가면 강이 지척이다. 물은 깊고 고요하다. 가을빛에 빛나는 물비늘을 보며, 내게 반짝이는 날이 몇이나 있었는지 헤아려 본다. 세상의 모든 추문을 씻어 가듯, 강물은 끝없이 흘러가고 온다. 그 물결에 나의 부끄러움도 싣는다. 잘 가거라, 아둔하고 치졸했던 나여. 이 계절 노들섬 물가는 갱생의 자리다.

이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멀리 두물머리를 지나 청평이나 강촌의 어느 호젓한 북한강변에 도착할 것이다. 거기서 가객 정태춘은 우리가 잃어버린 삶의 시원(始原)을 찾아 노래했다. “과거로 되돌아 가듯 / 거슬러 올라가면 / 거기 처음처럼 신선한 새벽이 있소(‘북한강에서’).” 그 처음같은 새벽에 이르면, 푸른 신생(新生)의 설렘을 만날 수 있을 것인가. 그 북한강에서 모든 것이 불안하던 스무살 무렵의 나를 만날 수 있을 것인가.

노들섬은 강의 처음에서 꽤 먼 곳이다. 강물에 지친 기색은 없으나, 조금은 피로하리라. 풋풋하던 강의 노래는 도시를 관통하며 무거워지고, 지난한 삶들을 읽어내느라 제 노래 소리를 조금씩 잃었을 것이다. 노들섬에 이르러 강의 노래는 삶의 노래를 닮는다. 그리고 길을 재촉해 서쪽으로 흘러간다. 길의 끝은 바다다. 어떤 다툼도 과시도 열망도 없는 곳이다. 모든 것을 무화(無化)시키는 거기서, 삶의 이야기들도 경쟁과 성공이라는 주술의 속박에서 비로소 풀려난다. 이 도시에서 벌어진 영광과 좌절이 얼마나 사소한 일이었는지, 그 바다는 들려주리라.

노들섬에서 먼 바다를 상상할 때마다, 나는 ‘졸업식 노래’의 마지막 구절을 떠올린다. “냇물이 바다에서 서로 만나듯 / 우리들도 이 다음에 다시 만나세.” 북받치는 슬픔에 울먹이며 노래했던 어린 나는, 이제 ‘이 다음’이 그리 멀지 않은 나이가 됐다. 각자의 강줄기를 따라 흩어졌던 우리는 결국 한 곳에서 만날 것이다.

강의 발원지로부터 바다 사이의 거리를 계절로 따지면, 노들섬은 한해가 기우는 가을쯤에 위치해 있다. 여름의 열렬한 기억들은 팔당이나 미사리 어디쯤에 두고 왔을 것이다. 그러니 노들섬의 강물은 지금이 제철이다. 가을에 이루어진 사랑은, 맑고 투명한 것들만 가득해 거짓이 없을 것이다. 이 계절 노들섬을 오가는 젊은 연인들은 가을처럼 거짓없는 한 시절을 살기 바란다.

노들섬은 음악이 중심이 된 복합문화시설로, 작년 이때쯤 개장했다. 나는 입주사 공모에 운 좋게 선정돼, 이 도시의 가장 여유로운 곳에 사무실을 두게 됐다. 삶이 까닭 없는 염증으로 가득할 때 여기 노들섬으로 오라. 강에 몸을 기댄 채 도시를 바라보면, 마른 먼지처럼 흩날리는 세간의 욕망들이 문득 우습고 덧없게 느껴질 것이다. 흘러오는 강물처럼 마음 속에 천천히 새로움이 밀려올 때, 다리를 건너 다시 도시로 돌아가라. 권태와 피로를 헤집고 어디선가 새 바람이 불어올 것이다.

한국일보

이주엽 작사가, JNH뮤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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