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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설왕설래] 스톡홀름 증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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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1973년 스웨덴 스톡홀름의 크레디트반켄 은행에 2인조 강도가 침입했다. 강도들은 직원 네 명을 인질로 잡고 경찰과 대치했다. 은행 직원들과 강도들은 6일 동안 함께 지내면서 정서적인 애착관계로 발전했다. 직원들은 강도들이 자신의 목숨을 해치지 않은 것에 고마움을 느꼈다. 심지어 인질 상태에서 풀려나면서 강도들과 포옹하고 키스까지 했다. 재판이 열렸을 때에는 인질범들에게 불리한 증언을 거부했다. 여기서 나온 말이 ‘스톡홀름 증후군’이다. 인질이 인질범에게 연민을 느끼거나 동조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범죄심리학 용어다.

이듬해 미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신문 재벌 허스트 가문의 상속녀 패티 허스트는 아파트에서 급진 좌파 무장단체에게 납치됐다. 패티 역시 납치범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동조화 현상을 나타냈다. 그녀는 납치범들이 은행과 가게를 터는 범행에도 가담했다. 무장단체의 투쟁 기조를 따른다면서 게릴라 혁명가 체 게바라의 애인 이름인 ‘타냐’로 개명했을 정도다.

스톡홀름 증후군은 가정 폭력 등에서 자주 나타나지만 우리나라에선 좌파들이 흔히 앓는 질환의 일종이다. 핵·미사일 도발을 일삼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위인으로 떠받드는 풍조가 그 짝이다. 근자에 해양수산부 공무원 피격사건을 맞아 그 증세가 더욱 심해진 양상이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방송인 김어준씨는 야만적인 시신 소각 행위를 화장(火葬)으로 윤색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변명 일색인 북한 통지문에 감읍했고,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김정은을 “계몽군주 같다”고 칭송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뒤늦게 공개된 친서에서 “생명 존중에 대한 강력한 의지에 경의를 표한다”며 희대의 독재자를 치켜세운 사실이 드러났다.

피해자들이 스톡홀름 증후군을 보이는 이유는 생존 본능 때문이다. 극단적인 위협에서 자신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의 일환이다. 하지만 가해자에 의존하는 저자세로는 인질의 덫에서 결코 헤어날 수 없음이 자명하다. 북한의 협박에 굴종하면 국가와 국민은 영원한 인질로 전락한다. 북한이 내민 ‘평화의 마약’에 취한 이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고언이다.

배연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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