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63129754 0022020093063129754 09 0902001 6.1.21-RELEASE 2 중앙일보 0 false true false false 1601392620000 1601419366000

[차이나인사이트] 백성과 다투지 말라던 중국은 누구를 위한 나라였나

글자크기

중국, 유럽과 달리 도덕경제 내세워 분배·조화 강조

실상은 소수 황제·관료가 유력자 동원해 부패 제도화

조선의 수탈도 못지않아…일본은 중국 따라 메이지 유신

민주·도덕경제·성장 균형 잡은 ‘한국 모델’ 고민할 때



역사가의 시각으로 본 ‘중국 모델’의 환상



중앙일보

왕조시대 중국이 내세운 도덕경제의 실상은 황제와 소수 관료가 지방 유력자와 손잡고 백성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구조였다. 조선과 일본은 각자의 방식으로 중국 모델을 받아들였다. 왼쪽부터 청의 건륭제, 조선의 영조대왕, 일본의 도쿠가와 이에야스. [중앙포토]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중국이 미국과 나란히 주요 2개국(G2)으로 불리자 ‘중국 모델’이 서구 모델의 대안으로 제기됐다. 미국 UCLA 사학과 교수 로이 빈 웡(王國斌)은 명(明)·청(淸) 시대의 전통 중국이야말로 현대 복지국가와 비슷했다고 주장했다. 통치이념이 성장보다 분배를 강조했고, 사회적 조화를 우선했으며, 재정으로 거둬들인 조세가 적었다는 논리다.

같은 시기 유럽 국가들은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재정을 확충해야 했고, 소비세 등 간접세를 개발했다. 심지어 소득세를 창안해 토지가 아닌 소득에도 과세했다. 은행이란 기업이 생겨나자 국채를 발행하는 노하우를 깨우쳐 민간과 해외 자본시장에서도 재정을 조달할 수 있었다. 유럽 국가와 정부는 한술 더 떠서 동인도회사와 같은 국책회사를 만들어 스스로 장사까지 했다. 유럽의 행정과 재정 테크닉과 비교할 때 중국에선 ‘백성과 이익을 다투는’ 여민쟁리(與民爭利)가 도덕적으로 금기시됐다. 백성을 굶기지 않는 것이 최대 목표였기 때문에 농민 구제를 위한 대규모 곡창(穀倉) 제도로 기근을 구제했다. 현대 복지국가와 비슷해 보인다.

굶기지 않겠다는 허울뿐인 도덕경제

실제는 어떨까. 중화제국의 통치이념에 따르면 부의 격차가 커지면 불평등에 대한 불만으로 반란과 소요가 일어나기 쉬워 상인을 억압해야 했다. 현실에서는 상인과 상업경제를 적극 이용하면서도 이념적으로만 억압했다. 도덕경제는 최소한 굶지 않는 초안정 사회를 유지함으로써 황제의 절대 권력과 관료 지배를 공고히 했다.

재정 규모는 작으나 할 일은 많았기 때문에 행정·재정은 지역별로 ‘할당’해 민간 유력자층에 떠맡겼다. 이런 청부제는 중국같이 인구가 많은 국가에서는 합리적이었다. 인구가 지나치게 많고 영토가 클 때 ‘대행(代行)주의’는 불가피하다. 청대가 피크였다. 명을 정복했을 때 한족 인구는 약 1억 명이었으나 만주족은 200만명에 불과했다. 200만 명이 1억명을 지배하려니 행정·재정은 현지 한족 엘리트의 도움 없이 불가능했다. 청대 관료의 정원은 1000여 년 전 당(唐)보다 적었다. 당나라 인구는 약 9000만 명이었지만 청대는 19세기 중반까지 200년 만에 5배 가까운 4억5000만명을 넘어섰다. 여전히 관료, 즉 지배자이든 공무원이든 나랏일을 하는 관리 숫자는 늘어나지 않았다. 중앙정부 파견직 중 최말단 행정단위인 현(縣)은 지방관 1명이 평균 30만 명을 다스렸다.

관료 1명에게 과도한 힘은 주어졌지만, 현지 유력자의 도움과 유착이 불가피한 통치가 중국식 도덕경제의 실상이었다. 게다가 관료 월급은 터무니없이 적었다. 수십만 인구의 현에 홀로 부임한 지방관은 자기 돈으로 3~5명의 재정과 법률에 뛰어난 보좌관을 고용해 데려가야 했다. 징세 할당량을 못 채우면 1년 연봉이 깎였다. 재해가 발생하면 청렴함을 어필하기 위해 스스로 감봉하거나 연봉의 몇 배를 헌납해야 했다. 당연히 지출을 맞추기 위해 뒤로 비정규적 회계, 즉 부정부패가 만연했다. 청말 현급 지방관의 연봉은 본봉 90량(兩)에, 18세기 초 연봉 현실화 이후 생겨난 보너스 600~1500량을 더해도 690~1590량 정도였다. 실제는 3년 임기 동안 챙기는 돈이 10만량만 넘지 않아도 양심적이란 소리를 들었다. 제도적으로 부득이해서, 혹은 부패한 관리의 악의적인 중간착취로 중앙 재정에 보고되는 재정 규모와 납세자인 백성이 지는 부담은 천양지차가 났다.

게다가 현지 유력자에게 행정·재정의 집행을 의존할 수밖에 없는 대행주의 때문에 힘이 약한 약자가 많이 뜯기는 구조였다. 지방의 유력자 ‘신사(紳士)’는 과거(科擧) 1·2차 시험에 합격한 학위 보유자, 혹은 관료 경력을 쌓고 귀향한 특권층으로 이들은 각종 면세 혜택을 누리며 토지를 보유하고 늘렸다. 어차피 지역 할당제인 세금은 약자에게 부담 전가가 이뤄졌다.

중앙 정부는 힘이 약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여기에 중국 모델의 특성이 있다. 2000년간 이어진 황제 전제 지배체제는 부랑자 출신으로 명을 개국한 주원장(朱元章)을 거치며 무소불위로 강화됐다. 이민족 지배 왕조였던 청대 황제 통치는 더욱 전제적이었다. 청 황제가 한 줌의 관료로 인류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4억 인구를 다스릴 수 있었던 이유는 전제 권력으로 인사권을 완벽히 장악했기 때문이다. 가끔 본보기로 관료들을 참수하고 바꾸면 됐다.

‘중국 모델’ 따랐던 조선과 일본

역사적으로 중국이라는 나라를 모방하며 성장한 나라 중에 조선과 일본이 있다. 조선은 중국보다 한술 더 떴다. 도덕경제를 구현하려 했기 때문에 훨씬 더 상업을 억압하고 농업을 중시했다. 화폐경제의 발전은 더뎠고 실물경제가 굳건했다. 조선 후기에도 동전 외에 쌀과 포목이 여전히 화폐 기능을 담당했다. 금과 은은 그냥 귀금속이었다. 대신 곡창제도는 인구 대비로 중국보다 더 규모가 컸다. 곡창 제도로 도덕경제를 체현하고 구휼로 왕권을 과시했다. 중간착취도 중국 못지않았다. 조선 후기 삼정의 문란과 잦은 민란이 잘 보여준다. 중앙정부가 돈을 덜 가져가고 ‘백성과 이익을 다투지 않았다’지만, 실제 백성은 훨씬 많이 뜯겼다. 인구 대비 관리 숫자는 중국보다 많아 말단 행정단위 지방관은 1만 명 이하를 촘촘히 관할했다.

반면 일본은 중세 때부터 역사 경로가 달라졌다. 13세기 고려와 일본은 똑같이 막 성립한 무인정권의 지배 아래 원(元)의 침입을 받았다. 고려는 무신정권이 무너졌고, 일본은 막아냈다. 무인정권이 정당성을 확보하고 영속화됐다. 무인, 즉 사무라이 계급이 지배계급이 되면서 강력한 무장 세력이 영토를 분할 지배하는 봉건제도가 뿌리내렸다. 과거제가 없지만, 곡창제도 없었다. 지배는 도덕적이지 않고 순수한 권력관계에 가까웠다.

청이 잘 나가던 18세기 말 일본에서도 유교와 중국 모델을 배우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이때 수입한 중국화·유교화는 의외로 쇼군(將軍) 정권, 즉 사무라이 정권을 무너뜨리고 일본의 황제인 천황의 지배를 복원시킨 메이지 유신의 동력이 됐다.

■ 탈세 천국 중국…한국이 훨씬 평등한 도덕경제

다소 엉뚱할지 모르나, 오늘날 재정과 소득세 구조를 보면 전통 시대와 마찬가지로 한국이 훨씬 중국 모델을 잘 체현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은 사회주의 국가로서 계급 평등을 구현할 정의로운 권력을 자처하지만, 재정에서 소득세 비중은 10% 내외다. 고소득자를 제대로 파악 못 해 탈세 천국이다. 근로소득에만 누진세를 적용한다.

중앙일보

한·중 조세구조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의 조세 수입은 세수 1위가 약 30%를 차지하는 소득세다. 기업의 소득세 격인 법인세와 부가가치세가 비슷하게 25% 내외로 2~3위다. 소득세는 환급제도로 근로소득자 면세 비중이 46.5%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소득 하위 절반은 소득세를 사실상 안 낸다. 법인세 세율은 세계적으로 높다. 세수 점유율 상위 50대 기업 대부분이 국영기업인 중국의 기업소득세율 20%보다 더 높다. 반면 모든 소비자가 내야 하는 부가가치세는 한국은 3위이지만, 중국은 소비세를 합해 40~50%로 최대 세원이다. 사실상 한국이 훨씬 분배적인 재정 구조이며, 평등을 구현하는 도덕경제를 체현하고 있다.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다. 한국은 GDP 대비 조세 비중이 20% 후반대다. 소위 유럽 복지 국가의 50%대의 절반도 못 미친다. 미국·일본보다 낮고 중국과 비슷하다. 국민 정서가 세금 내기를 싫어하고 국가를 신뢰하지 않아 조세 저항이 크다는 의미다. 정부는 표심을 생각해 적극적 조세 정책을 취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유럽 복지국가가 국가 운영을 잘하나? 별로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사회복지 지출(social spending)은 사회 안정에는 도움이 되나 성장을 자극하는 역할은 제한적이다. 복지국가 이데올로기와 선거로 인해 이 항목 비중이 지나치게 크다 보니, 심지어 도로 수리 비용조차 부족한 지경이다.

한국이야말로 민주주의 아래에서 국민의 힘이 센 덕분에 현대적 방식으로 도덕경제와 성장을 비교적 균형 있게 타협시키고 있는 셈이다. 향후 한국 사회가 더는 ‘중국 모델’을 따르지 말고, 새로운 중화주의가 된 ‘유럽 복지’ 모델도 따르지 말고, 충분히 세계에 발신할 ‘한국 모델’을 만들어가길 기대한다.

■ ◆강진아

도쿄대 박사. 중국경제사·동아시아 화교사를 연구한다. 저서로 『1930년대 중국의 중앙·지방·상인』 『문명제국에서 국민국가로』 『동순태호』, 역서로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 『미완의 기획: 조선의 독립』 『중국경제사』 등이 있다.

강진아 한양대 사학과 교수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