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운 작가 작업실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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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우울증을 앓았다. 5년 전 암투병을 하던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강운 작가(54)에게 찾아온 마음의 병이기도 하다. 그는 딸과 나눈 대화를 캔버스에 쓰고 물감을 덧칠해 지우기를 반복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명료한 색채만큼이나 그의 마음이 분명해지고 치유됐다. 광주시 문화공원 김냇과에 펼친 '마음산책' 연작 50여 점은 그의 고백이 켜켜이 쌓인 삶의 질감이다. 물감 속에는 그가 뾰족하게 깎은 나무젓가락 끝으로 화면에 생채기내듯이 써내려간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작가는 "딸과 두서 없이 나눈 대화를 녹음한 후 타자로 정리하고 그 문장들을 화면에 적었다. 물감을 덧칠한 후 딸에게 해 줄 말을 쓰면서 내 마음이 정화됐다"고 설명했다.
`마음 산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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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 응어리진 감정과 기억을 끌어낸 뒤에는 사회로 눈길을 돌렸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광주에서 경험한 5·18광주민주화운동은 고통스러운 기억이었다. 김준태의 시 '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를 쓴 다음 색으로 덮고, 망월동 국립 5·18 민주묘지에 묻힌 고인들 이름을 적고 색으로 지우고, 방명록을 발췌해 쓴 후 색을 칠했다.
작가는 "너무 아름다운 초록으로 덮인 5월의 광주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을 목격했다"며 "40년이 흘러서야 그때를 작품에 담게 됐다"고 말했다.
`마음 산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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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산책'은 2019년 서울 아트스페이스3에서 전시한 '바람소리 그리고 흔적' 연작에서 비롯됐다. 강원도 고성군과 인제군 비무장지대(DMZ)에서 철거된 감시 초소(GP) 철조망을 주우려다 손에 난 상처가 불러온 과거 기억과 사회적 서사를 담은 작품이다. 그는 "33년 전 군부대에서 보초를 설 때 바람이 철조망에 부딪쳐 나던 소리가 떠올랐고, 남북이 갈라진 한반도 상황까지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붓으로 마음과 바람을 잡아온 그는 원래 구름만 그리는 작가였다. 1992년 교직을 그만둔 후 6개월 동안 전남 해남군을 떠돌면서 풍경을 그리다 구름에 마음을 뺏겼다. "그림만 전문적으로 그리기 위해 빈센트 반 고흐처럼 주변 풍경을 그리고 다녔는데 별게 없더라고요. 어느 날 문득 창 밖 하늘을 보니 구름이 지나가는데 한 번도 똑같은 구름은 없더군요. 구름 형태로 내 생각과 예술의 본질을 표현해도 괜찮을 것 같아서 구름 주변 풍경을 그리게 됐죠. 2000년 광주 비엔날레를 기점으로 다른 풍경 없이 구름만 그리게 됐어요."
`마음 산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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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통해 깨달음을 찾는 그의 작품을 두고 '구도회화'라고들 한다. 작가는 "이해하는 것이 많아질수록 두려움이 줄어들 것 같아 쓰고, 나를 치료하고 싶어 지우고 명료해질 때까지 힐링의 색채로 우려낸다"고 했다. 붓질을 덧대면 덧댈수록 규정할 수 없는 '마음의 공기' 같은 상징적인 색감이 나온다고 한다. 1990년 전남대 미술학과를 졸업한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일본 모리미술관 등에 소장돼 있다. 전시는 10월 31일까지.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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