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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이슈 미술의 세계

30여 년 전 27세로 떠난 바스키아, 그가 바로 '킹 오브 쿨(King of C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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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뮤지엄 바스키아 회고전

회화, 조각, 드로잉 등 150점

'거리' '영웅' '예술'로 조명

"30년 흘러도 신선하고 세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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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키아 회고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롯데뮤지엄 전시장 입구. [사진 이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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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작 ‘Victor 25448’. 1987년 앤디 워홀의 사망 후 절망에 빠져 그린 작품이다. ©Estate of Jean-Michel Basquiat. Licensed by Artestar, NewYork. 사진 롯데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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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키아 대규모 회고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롯데뮤지엄 전시장. [사진 롯데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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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낱 인간이 아니다. 나는 전설이다."

"나는 열일곱 살 때부터 늘 스타가 되기를 꿈꿨다. 찰리 파커, 지미 핸드릭스 같은 우상들을 떠올리며 이들이 스타가 된 과정을 꿈꿨다."

'간절히 원하면 꿈이 이뤄진다'는 말, 적어도 이 사람에게는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미국 화가 장 미셸 바스키아(Jean-Michell Basquiat·1960~1988) 얘기다. 1980년 뉴욕 화단에 혜성처럼 나타나 8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3000여 점의 작품을 남기고 27세에 세상을 떠났다. 미술계에 등장할 때부터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그는 스타였고, 30여 년이 흐른 지금 그 인기는 날로 치솟고 있다.

지난 2017년 5월 미국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바스키아의 1982년 작 회화 '무제(Untitled)'가 1억1050만 달러(당시 한화 약 1248억원)에 낙찰돼 화제를 모았다. 이 작품은 당시 미술품 경매 최고가인 파블로 피카소의 '알제의 여인들'의 1억794만 달러(2025억원)를 넘어서지는 못했지만, 1980년대 이후 작품 가운데 1억 달러를 넘어선 첫 작품이자, 미국 작가 작품 최고가 기록으로 눈길을 끌었다. 항상 흑인 영웅을 가슴에 품고 흠모하던 바스키아는 결국 그 자신이 영웅이 되는 것으로 꿈을 이뤘다.

'장 미쉘 바스키아·거리, 영웅, 예술' 전이 8일 서울 잠실 롯데뮤지엄에서 개막했다. '거리' '영웅' '예술'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통해 바스키아의 작품을 조망하는 이번 전시는 회화, 조각, 드로잉, 사진 등 150여 점의 작품을 망라해 소개한다. 국내에서 바스키아 전시는 2006년, 2013년 두 차례에 걸쳐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바 있지만, 이번 전시는 바스키아의 초창기 시절부터 전성기, 그리고 마지막 유작까지 모두 아우르는 국내 최대 규모라는 점에서 다르다.



미술관에서 보낸 어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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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미쉘 바스키아. 1980년대 8년간 3000여 점의 작품을 만들고 27세로 세상을 떠났다. ©Estate of Jean-Michel Basquiat. Licensed by Artestar, NewYork. 롯데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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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키아는 1960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아이티공화국 출신의 아버지와 푸에르토리코계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어린 바스키아를 데리고 뉴욕의 주요 미술관을 함께 다녔다. 덕분에 바스키아는 다빈치부터 피카소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걸작 그림을 가까이서 접하며 자랐다.

예술가 바스키아에게 그의 어머니가 끼친 영향은 미술관 관람에 그치지 않는다. 1968년 큰 교통사고로 병원에 장기간 입원했을 때 그의 어머니가 만 7세인 바스키아에게 어머니가 선물한 책이 해부학 입문서 『그레이의 해부학 (Gray’s Anatomy)』였다. 전문가들은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해부학적인 인체 모습과 내장 기관들, 강조된 팔과 다리의 형태는 이때 사고와 연관됐다고 본다. 이후에도 바스키아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해부학 드로잉을 보았고 그의 이런 독특한 인체 탐구는 삶과 죽음에 대한 사유와 연결되면서 뼈와 해골, 신체 기관이 그대로 노출되는 독창적인 이미지로 나타난다.



거리 화가에서 세계적인 스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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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키아의 1981년 작 'Old Cars'. ©Estate of Jean-Michel Basquiat. Licensed by Artestar, NewYork.[사진 롯데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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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키아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알아야 할 키워드는 '세이모(SAMO©)'다. '흔해 빠진 낡은 것'이란 뜻으로, 1977년부터 바스키아가 친구 알 디아즈와 함께 만든 가상인물이다. 두 사람은 'SAMO© (세이모)'라는 이름으로 거리 곳곳에 스프레이로 낙서를 시작했으며,권위적인 사회를 비판하는 메시지가 담긴 작품들로 뉴욕 미술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익명'으로 남고자 했던 알 디아즈와 '스타'가 꿈이었던 바스키아는 세이모 활동에 대한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곧 결별했다. 이후 우편엽서와 티셔츠에 그림을 그려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던 바스키아는 영화제작자이자 음악가, 큐레이터인 디에고 코르테즈를 만나며 본격적으로 뉴욕 화단에 진입하고, 1982년 미국 첫 개인전을 계기로 언더그라운드 낙서미술가에서 신인 아티스트로 급부상했다. 이후 그는 앤디 워홀을 만나 1985년 워홀과 협업으로 전시를 열었으며, 1988년 코트디부아르로 이주를 준비하던 중 8월 12일 약물 과다로 세상을 떠났다.



자유와 저항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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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키아, 'New York,New York', 1981. ©Estate of Jean-Michel Basquiat. Licensed by Artestar, NewYork.[사진 롯데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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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키아의 1983년 작 'Untitled'. ©Estate of Jean-Michel Basquiat. Licensed by Artestar, NewYork.[사진 롯데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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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가 무심하게 낙서한 듯 자유분방한 화법이 도드라지는 바스키아의 작품들은 제작된 지 30여 년의 시간이 무색하게 여전히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그는 알파벳과 단어, 문장과 드로잉을 자유롭게 조합하며 스프레이, 오일, 파스텔, 크레용, 유화와 아크릴 물감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했다.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제작 방식도 바스키아 작품의 특징이다. 깨알같이 글씨를 썼다가 지운 흔적이 그대로 작품이 되는 식이다.

1981년 작 '뉴욕 뉴욕'에도 어찌 보면 거칠게 낙서하고 지운 흔적이 그대로다. 뉴욕의 번잡한 거리를 묘사한 이 작품엔 왕관 형태와 얼굴, 그리고 암호같은 글자가 캔버스를 가득 채우고 있다. 당시 그의 작품을 본 비평가들은 "유치하고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비난했지만, 지금 평단에서는 "긴장감을 증폭시키고, 시적인 상상력을 자극하는" 작품으로 추앙받는다.

이번 전시작 중 가장 비싼 작품으로 거론되는 '더 필드 넥스트 투 디 아더 로드(The Field Next to the Other Road)'도 눈여겨봐야 한다. 1981년 바스키아가 미국을 벗어나 처음으로 유럽(이탈리아)에서 열린 첫 개인전을 위해 그린 그림이다. 가로 4m, 세로 2m가 넘는 거대한 화면에는 뼈가 고스란히 드러나 보이는 형상의 인간이 소를 끌고 가는 모습이 그려진 게 전부다. 동물의 죽음을 통해 자본주의 소비 사회를 비판해온 바스키아의 사고를 엿보게 하는 이 작품은 가격은 약 2000억원으로 추산된다.

어린 시절 바스키아가 해부학책에서 받은 영향이 고스란히 보이는 작품들도 여럿 눈에 띈다. 1983년 작 '무제(Untitled·Baracco di Ferro)'와 '백 오드 더 넥(Back of the Neck)' 등이다. 두 작품에는 팔뚝에 문신을 새긴 괴력의 선원이었던 만화 캐릭터 뽀빠이(Popeye)가 등장한다. 화면에 보이는 '바라코 디 페로(Baracco di Ferro)'는 무쇠 팔이라는 이탈리아어로, 뽀빠이는 거대한 팔로 악당을 무찌르는 캐릭터였다. 바스키아는 골격과 근육, 힘줄은 거친 선으로 그리고,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검은색과 노란색을 사용해 화면에 팽팽한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이번 전시 보험가액 1조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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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키아 전시장. 오른쪽 벽면으로 이번 전시작 중 최고가로 추산되는 '더 필드 넥스트 투 디 아더 로드' 가 보인다. [사진 롯데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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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작의 대부분은 이스라엘 출신의 사업가이자 컬렉터 호세 무그라비(81) 소장품들이다. 무그라비는 앤디 워홀과 바스키아 작품을 다수 소장하는 컬렉터로 손꼽힌다. 이번 전시에 나온 작품가만 1조원에 달하고, 전시장 보험료만 5억원이다. 작품은 모두 뉴욕에서 비행기를 타고 단독 화물 운송으로 태평양을 건너왔다.

전시를 기획한 구혜진 롯데뮤지엄 큐레이터는 "바스키아는 대중문화의 다양한 이미지를 즉흥적이면서도 감각적으로 조합해 시각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놓은 작가"라며 "함축적 은유와 상징으로 점철된 이미지와 탁월한 색채 감각은 지금 보아도 탄성을 자아낼 만큼 세련돼 관람객들을 매료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2월 7일까지.

롯데뮤지엄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시간별 관람 인원을 제한하고 있으며,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6시30분까지 30분 간격으로 예약을 받고 있다.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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