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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이슈 '베를린 소녀상' 철거 위기

독일 교수도 “일 ‘소녀상 철거’ 압박 굴복한 베를린에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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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쟁범죄 부인’ 비판한 독일 교수 2인 인터뷰

한겨레

슈테피 리히터 라이프치히대 교수. 라이프치히대 누리집


“일본 정부의 압력에 대응하는 독일 연방외무부와 베를린 책임자의 태도에 충격을 받았다. (과거사를 두고 기억투쟁을 벌이는) 우익적 네트워크에 맞서, 시민사회 또한 초국가적 네트워크로 대응해야 한다. 이러한 목표를 위해서라도 소녀상은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

슈테피 리히터(64) 독일 라이프치히대 일본학과 교수는 11일(현지시각) <한겨레>와 한 전자우편 인터뷰에서, 일본의 ‘평화의 소녀상’ 철거 압박에 굴복한 독일 외무부와 베를린시 미테구청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리히터 교수는 일본 역사교과서 문제를 비롯해 일본 신우익 수정주의에 정통한 독일의 일본학자다.

리히터 교수는 “일본에서는 1990년대 중반부터 일본군이 저지른 전쟁범죄를 부인하는 여러 우익단체가 등장했는데 이들은 주로 정치·외교 영역에서 활동한다. 2011년부터 전세계 여러 곳에서 위안부 동상을 철거하려는 시도들, 최근 베를린의 소녀상에 압력을 행사한 것 등은 이 반동적 네트워크와 관련이 있다”고 지적했다.

리히터 교수뿐 아니라 독일의 많은 일본학자는 소녀상을 둘러싼 싸움이 전세계적으로 신우익세력들이 과거사를 두고 벌이는 ‘기억투쟁’의 하나라는 점을 지적한다. 지난 10월5일 라이프치대 일본학과 누리집에 박사과정 도로테아 믈라데노바가 소녀상 철거를 비판하며 올린 글도 그런 인식을 반영한다. “위안부 문제를 두 나라 사이 외교정치적 문제라고 주장하는 것은 여성들에게 가해졌던 폭력의 문제를 무시해버린 잘못된 사고다.”

한겨레

일제 렌츠 전 보훔대 사회학과 교수. 본인 제공


나치 미화가 금기시된 독일에서도 극단적 우익세력은 끊임없이 비슷한 시도를 하고 있다. 일제 렌츠(72) 전 독일 보훔대 사회학과 교수는 11일 <한겨레>와 한 전자우편 인터뷰에서, 왜 소녀상이 독일에 있어야 하느냐는 질문에 “식민주의와 전쟁 폭력의 역사를 가진 독일은 일본과 비슷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고 설명했다.

렌츠 교수는 “소녀상은 전쟁 성폭력과 식민주의를 기억하려는 기억운동의 상징”이라며 “이 폭력적인 식민지 시대의 과거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동유럽과 러시아에서 벌어진 무수한 성폭력을 파악해야 하는 것이 우리 과제”라고 말했다. 그는 또 “소녀상 승인 취소는 일본 정부의 외교적 압력에 더해, 베를린시가 위안부 문제와 전쟁 성폭력 문제를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용납할 수 없는 사건”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렌츠 교수는 다만 일본 보수 정부의 책임과 과거사를 바로잡으는 일본 시민사회의 노력은 구분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중요한 것은 한-일 갈등이 아니다. 전쟁 성폭력에 맞서 정의를 지키려고 한 일본인도 많다. 우리는 전쟁 성범죄에 대한 논쟁을 억압하는 현재의 일본 정부와 전쟁과 성폭력을 지지하지 않는 일본 사람들을 구별해야 한다.” 베를린/남은주 통신원 nameunjoo1@gmail.com



법원으로 간 ‘베를린 소녀상의 운명’

독일 베를린시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 철거 논란이 결국 소송으로 가려지게 됐다.

소녀상 설치를 주도했던 독일의 코리아협의회는 12일(현지시각) 행정법원에 소녀상 철거 명령 효력 집행정지 신청을, 미테구에는 행정이의를 제기할 예정이라고 11일 <한겨레>에 밝혔다.

소녀상이 자리한 미테구청은 지난 7일 허가 취소 공문을 보내 14일까지 시민단체 스스로 철거하지 않으면 시가 철거에 나선다고 통보했다. 이례적으로 빠른 행정 처분에 제동을 걸기 위해 시민단체의 대응도 숨가쁘다. 구청과 법원 결정까지 몇주에서 몇달까지도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돼, 당장 임박한 철거는 막을 수 있을 것으로 코리아협의회는 기대하고 있다.

한정화 코리아협의회 대표는 “슈테판 폰 다셀 미테구청장은 보도자료에서 소녀상을 승인한 도시공간 및 건축예술 심사위원회가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한-일 갈등은 전혀 알지 못했던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으나 신청서에도 여러 장을 할애해 설명했다. 최초 허가 절차에 문제가 없는 만큼 그대로 둘 것을 주장할 법률적 근거가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소녀상 설립 당시 시위원회가 우선 1년 설치를 허가하면서 “공공의 이익에 위배될 때는 언제든 철거할 수 있다”는 단서를 붙였기 때문에 소송에서는 이 점이 가장 큰 쟁점이 될 전망이다. 그러나 한 대표는 “소녀상은 지역공동체 커뮤니티 레우니온의 후원으로 세워졌으며, 지금까지 일본인들을 포함한 지역주민 누구 하나 반대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독일 온라인신문 <베를리너 차이퉁>은 “일본 정부가 이런 기념비를 철거해달라고 요구하는 이런 상황 자체가 왜 이 동상이 있어야 하는지 이유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또 다른 온라인 대안언론 <타츠>는 한 시민의 기고문에서 “외무부가 미테구의 시정에 개입했다”고 비판했다. 지방자치가 확고한 독일에서는 행정부가 지자체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점도 논란거리다.

코리아협의회를 비롯한 독일의 여성·시민단체들이 미테구 앞에서 시위를 벌일 예정인 가운데, 소녀상 철거에 반대하는 독일 시민사회의 청원도 시작됐다. 11일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 철거 반대 청원’이 올라온 독일어 서명운동 누리집(www.petitionen.com)을 보면, 이날 오후까지 1555명이 철거 반대 청원에 서명했다.

한국의 정의기억연대(정의연)도 유엔 표현의 자유·여성폭력·문화권 특별보고관에게 서한을 보내는 한편, 미테구청 주소와 전자우편 주소를 공개하며 ‘소녀상 철거 반대’ 편지·전자우편 보내기 운동을 시작했다.

베를린/남은주 통신원, 채윤태 기자 nameunjoo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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