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4 (토)

[사설]법무부가 난민 심사 면접조서 허위 작성을 부추겼다니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법무부의 난민 신속심사 제도가 남용되면서 난민 신청자들의 면접조서 허위 작성 등 졸속 심사가 이뤄졌다고 국가인권위원회가 지적했다. 심사 적체를 해소하기 위해 도입한 신속심사 제도가 난민 신청자들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하고 난민을 차단하는 용도로 악용된 것이다. 난민 수용에 지나치게 인색한 한국 난민 정책의 부끄러운 현실을 보여주는 사례다.

법무부는 2015년 9월 전체 난민 신청 중 신속심사 처리 비율을 10%에서 40%로 상향해 심사 절차를 간소화하기 위한 ‘난민적체 해소방안’을 마련해 시행했다. 하지만 이때부터 진술하지도 않은 내용이 면접조서에 포함됐다는 진정이 이어졌고, 인권위는 지난 15일 이에 대한 조사 결과를 내놨다. 인권위에 따르면 신속심사 처리 목표 비율은 40%였지만 서울출입국사무소는 2016년 68.6%를 신속심사로 처리했다. 이집트 등 아랍어권 난민 신청자들은 94.4%가 신속심사를 받았다. 신속심사 담당 공무원에게는 월 40~44건의 처리 목표를 할당하고, 이를 달성하지 못하면 경위서까지 내도록 했다고 한다. 법무부가 무리한 할당을 부과하며 졸속심사를 부추긴 셈이다.

빠른 처리만 강조하다 보니 난민 신청자들은 면접 과정에서 정치·종교적 박해 등에 대해 상세히 설명할 시간이 부족했다. 게다가 신속심사 공무원들은 신청자들의 개별 사유는 무시한 채 ‘돈 벌러 왔다’는 틀에 박힌 문구를 면접조서에 포함시켰다. 이 문구는 난민 불인정 이유가 됐다. 경제적 이유로 난민 신청을 남용하고 있다는 예단을 갖고 떨어뜨리기 위한 심사를 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난민 신청자들을 도와야 할 사람들이 거꾸로 행동한 것이다. 이러고도 난민 신청을 받는다고 국제사회에 말할 수 있나.

한국은 1992년 유엔 난민협약에 가입했고 2013년에는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난민법을 제정한 나라다. 하지만 지난해 난민 인정률은 0.4%에 불과했다. 유럽연합의 난민 인정률 23.1%에 비하면 난민 보호국으로 불리기 무색할 정도다. 난민 인권보호 정책은 없고 ‘난민거부 정책’이 난민 정책이 됐다는 비판까지 제기된다. 법무부는 면접조서를 조작한 공무원들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더불어 난민심사 인력의 전문성과 공정성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면접심사 녹음·녹화를 의무화하고 난민 신청자들의 열람권도 보장해야 함은 물론이다. 법무부는 인권위 지적을 계기로 국제적 위상에 걸맞은 정책을 펴야 한다.

▶ 인터랙티브:위력,보이지않는힘
▶ 경향신문 바로가기
▶ 경향신문 구독신청하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