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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할 수 있다”는 어머니 격려…38세 시각장애인 판사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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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아들 곁에서 ‘할 수 있어’ 격려한 어머니

“30세에 얻은 장애… 훈련 거치면 뭐든 할 수 있어”

세계일보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건물에 ‘자유’, ‘평등’, ‘정의’ 세 단어가 새겨져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우리 아들이 시각장애인이 되니 지하철에 (그동안 모르고 지나쳤던) 시각장애인이 참 많더구나.”

20일 대한민국 법관으로 정식 임용돼 법복을 입은 김동현(38) 판사가 과거 한 매체를 통한 전한 어머니의 이야기다. 김 판사는 대학을 졸업하고 군복무까지 마친 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2학년에 재학 중이던 2012년 의료사고로 시력을 잃고 시각장애인이 되었다. 당시 그의 나이 30세였다.

‘세상이 모두 끝났다’는 생각에 김 판사는 로스쿨을 휴학했다. 병원에 오갈 때를 제외하고는 집에 틀어박혀 지냈다. 그를 다시 세상 밖으로 이끈 건 다름아닌 어머니였다.

◆30대 시각장애인 아들 곁 지키며 ‘할 수 있어’ 격려한 어머니

“어머니는 늘 제 곁을 지키며 ‘할 수 있다’고 힘을 실어 주셨어요. 실의에 빠져 누워 있는 아들에게 최영 판사의 사연이 담긴 기사를 찾아 읽어주고 동영상 강의도 들려주셨죠. 어머니의 정성에 제 마음도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김 판사)

세계일보

국내 시각장애인 ‘2호’ 법관인 김동현 판사. 뉴스1


어머니가 아들에게 새로운 ‘롤모델’로 제시한 최영 판사는 국내 ‘1호’ 시각장애인 법관이다. 2012년 장애를 딛고 법관으로 임용돼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안겼다.

‘어차피 시력은 돌아오지 않는다. 같은 장애를 갖고 이겨낸 분이 있으니 나도 열심히 하면 된다.’ 김 판사는 법조계 대선배인 최 판사가 먼저 걸은 험난한 길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이를 악물고 일단 로스쿨부터 졸업하기로 했다. 당연히 변호사시험도 응시해 합격해야만 했다. 돌아보면 어머니의 헌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부산에 살던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서울로 옮겨 와 2015년까지 2년간 뒷바라지를 했다. 수시로 ‘내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하고 의심하는 아들의 귀에 희망의 숨결을 불어넣었다. “아들아, 넌 반드시 할 수 있을 거야.”

2015년 우등생으로 로스쿨을 졸업한 김 판사는 변호사시험 합격 후에는 서울고법에서 재판연구원(로클럭)으로 2년을 근무했다. 이어 서울시 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서 3년을 활동한 뒤 ‘법조 경력 5년 이상’ 법조인을 대상으로 한 법관 임용에 지원할 자격을 얻었다.

◆“한창나이 30세에 얻은 장애… 훈련 거치면 뭐든 할 수 있어”

대법원은 그가 장애를 딛고 각고의 노력 끝에 로스쿨 졸업 및 변호사시험 합격이란 성과를 일군 점, 법조인이 되고 나서 사단법인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접근성 위원으로 활동하며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의 목소리를 대변해 온 점 등에 후한 점수를 줬다. 당당히 법관으로 임용된 그는 이날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으로부터 임명장을 받고 정식 판사가 되었다.

세계일보

2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에서 열린 법관 임용식에 참석한 신규 판사들이 손뼉을 치고 있다. 뉴스1


“많은 장애인들이 저처럼 중도에 장애를 얻습니다. 장애인이 되었다고 하고 싶은 것, 예전에 할 수 있던 것을 모두 포기해야 할까요. 어쩔 수 없는 것도 있겠지만 장애인을 둘러싼 환경이 뒷받침되고 장애인 자신이 적응하는 훈련을 거치면 많은 일들을 다른 사람들처럼 할 수 있습니다.”(김 판사)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는 김 판사의 법관 임명을 반겼다. 앞서 그가 연합회의 접근성 위원을 맡아 시각장애인의 권익 옹호에 앞장선 것처럼 앞으로는 법관으로서 단지 장애인이란 이유로 겪어야만 하는 억울함을 조금이나마 풀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연합회는 이날 논평에서 “50만 시각장애인과 함께 판사 임용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며 “김 판사가 다양한 경험을 통해 얻은 시각을 바탕으로 공정한 재판을 수행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최영 판사에 이은 ‘2호’ 시각장애인 판사 임용을 계기로 꿈과 희망을 안고 살아가는 전국 시각장애인들이 다양한 공직활동의 길로 나아가게 되기를 바란다”고 소망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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