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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사이언스] 화학물질 합성 자유자재로…`꿈의 촉매`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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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연구진이 전극에 가하는 전압의 미세한 차이를 이용해 '작용기'의 화학반응 특성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작용기란 유기화합물의 전기적 성질을 결정짓는 원자단을 말한다. 이번에 개발한 기술을 이용하면 하나의 작용기를 여러 작용기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만능 작용기'로 활용할 수 있어 산업적 측면에서도 파급 효과가 클 것으로 보인다.

백무현 기초과학연구원(IBS) 분자활성 촉매반응 연구단 부연구단장(KAIST 화학과 교수) 연구팀과 한상우 KAIST 화학과 교수팀은 지난 9일 전압을 가하는 것만으로 분자 반응성을 조절할 수 있는 만능 작용기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이번 성과는 이날 세계 최고 권위의 학술지인 사이언스(Science, IF 41.845)에 게재됐다.

작용기는 전자를 끌어당기거나 밀어내는 효과를 통해 분자의 전기적 특성을 조절한다. 전자밀도 분포를 조절해 분자의 반응성을 결정하는 것이다. 작용기에 따라 전기적 성질이 달라 적절한 작용기를 선택하면 화학반응에서 원하는 반응성을 얻을 수 있다. 반응성은 물질이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성질을 일컫는데, 연구나 산업 분야에서 원료를 반응시켜 필요한 화학물질을 만들어내려면 반응성을 조절해야 한다.

1937년 미국 화학자인 루이스 하메트 박사가 작용기 종류에 따른 분자의 전기적 성질 변화를 정량화한 공식을 만든 후 80년간 화학반응을 이해하는 학문으로 활용돼 왔다. 하지만 기존에 밝혀진 작용기는 한계가 있었다. 하나의 작용기는 정해진 특정 전기적 효과만 줄 수 있어 분자의 전기적 성질을 세밀하게 조절하기 어려웠다. 또한 복잡한 분자는 여러 단계를 거쳐 합성되는데, 반응마다 최적 효과를 줄 수 있는 작용기를 활용하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를 통해 여러 종류의 작용기 대신 하나의 작용기만으로 분자의 반응성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했다. 연구진이 제작한 작용기는 금 전극에 분자를 부착한 형태다. 금은 화학적으로 안정하기 때문에 화학반응에 쉽게 참여하지 않아 다른 간섭 없이 금 전극 위에 부착된 유기 분자를 관찰하기 좋은 소재다. 금 전극에 음(-) 전압을 걸게 되면, 전극이 기존 '전자 주는 기' 효과를 내 전극에 부착된 유기 분자의 반응 부위 주변 전자밀도가 높아진다. 반대로 금 전극에 양(+) 전압을 걸게 되면, 전극이 '전자 끄는 기' 효과를 내 전극에 부착된 유기 분자의 반응 부위 주변 전자를 당겨온다. 즉, 전자밀도가 낮아지는 효과를 주는 것이다. 기존에는 서로 다른 종류의 작용기를 가지는 분자들을 각각 합성해야 가능했던 작업을 전압을 조절하는 것만으로 간단하게 대체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연구진은 이를 대표적인 유기화학 반응에 적용해본 결과 전극에 전압을 걸어주는 것만으로도 여러 작용기의 효과를 낼 수 있어 기존 작용기의 효과적인 대체재로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특히 두 단계에 걸쳐 이뤄지는 화학반응에서는 기존 방법을 뛰어넘는 장점을 확인했다. 여러 단계로 구성된 화학반응에서는 각 단계에 필요한 분자의 전기적 성질이 다르다. 기존에는 고정된 작용기로 화학반응이 조절됐기 때문에 최적의 조건을 끌어내기에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전극으로 기존 작용기를 대체하게 되면 반응 단계별로 전압을 바꿔주는 것만으로도 분자의 반응성을 변화시켜줄 수 있기 때문에 효율적으로 화학반응이 진행되도록 할 수 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는 80여 년간 널리 사용돼 온 전통적인 화학적 실험법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했다는 학술적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새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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