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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ESC] 20대 뜨개 중독 왜? “이보다 성취감 큰 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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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뜨개로 이름난 ‘바늘이야기’

한때 어려웠으나 20대 감성으로 헤쳐 나가

미니멀라이프 접목한 도안·‘톱다운’ 도입이 성공 요인

조회수 165만 유튜브 운영도 한몫


‘뜨개질 회사 직원은 업무 시간에 뜨개질해도 되나요?’ 업무와 관련된 뜨개질은 오케이란다. 유튜브 채널 ‘바늘이야기 김대리’의 김보겸(26)씨가 구독자들 질문에 한 답변이다. 그의 어머니 송영예(53)씨는 피시통신 하이텔 주부동호회에서 손뜨개 강사로 이름을 날린 이다. 1998년 국내 최초 손뜨개 전문 사이트 ‘바늘이야기’을 연, 온라인 손뜨개 커뮤니티의 첫 세대이기도 하다. 작은 수예점으로 시작한 회사는 이제 뜨개 카페, 아카데미 등도 운영할 정도로 성장했다. “가업을 잇고 싶었다”는 생각에 3년 전 입사한 김보겸씨(이하 김대리). 영상세대와 소통하는 그를 지난 5일 경기도 파주에서 만났다.

커다란 털실 한 덩어리로 근사한 브이넥 스웨터를 뚝딱 떠내는 동영상이 업로드 8개월 만에 조회수 165만(2020년 10월 초 기준)을 넘었다. 손뜨개 관련 영상으론 기록적인 숫자다. 브이로그 형식의 손뜨개 영상이 뜨개질에 무관심했던 이들에게까지 가닿았다. 구독자 13만명의 뜨개질 유튜버이자 뜨개질 실과 도안 판매 회사 ‘바늘이야기’의 직원 ‘김대리’의 뜨개 라이프를 들여다봤다. 그는 요즘 가장 힙하다는 <에스비에스> 스브스뉴스의 <문명특집>에 ‘뜨개질러 김대리’로 출연한 바도 있다.

―송 대표가 지난 20년보다 최근 뜨개질 분야의 변화가 컸다고 말한 바 있다.

“회사 주요 고객이 50대 중반, 어머니 또래였다. 어머니는 ‘나와 함께 늙어가는 고객님들’이라며 소중하게 여겼다. 10~20대 고객은 거의 없었다. 내 또래가 좋아할 만한 기획을 고민했다. 요즘은 다들 동영상으로 손뜨개를 배운다는 게 생각났다. 손뜨개 키트를 만들 때 동영상을 제작하고 내 또래들이 좋아할 만한 디자인도 만들었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반응이 왔다.”

―김대리의 손뜨개 스웨터는 특히 간결하다. 판매 옷 중엔 별로 없다. 예부터 뜨개질 의류는 무늬와 기법이 복잡해서 초보가 접근하기 부담스러웠다.

“고등학생 때부터 어머니의 사이트에 올릴 뜨개옷의 사진 모델을 했다. 내 나이에 맞지 않는 화려한 옷을 입었다. 내 취향은 심플한 디자인이다. 입사해 니트 디자이너들에게 내 취향의 뜨개옷 사진을 내밀었더니 그들 스타일로 변형된 프릴과 단추 등이 추가된 완성품이 탄생하더라. 결국 내가 해야겠다 싶어서 뜨개질을 시작했다.”

―디자이너들은 단순한 문양이면 굳이 뜰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 거 같다.

“디자이너들과 어머니가 ‘왜 이렇게 아무것도 없느냐, 이런 걸 누가 사겠느냐, 무늬를 더 넣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기존에 없었으니까 하나 정도는 괜찮지 않겠느냐며 밀어붙였다. 해외 젊은 뜨개질 전문가들의 디자인도 간결한 게 추세다. 고집한 데는 그 영향도 컸다. 미니멀라이프가 떠오르고 있으니 뜨개옷도 그런 분위기를 반영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젊은 뜨개 문화의 맨 앞줄에 서 있는 그는 지난 5월께 몇 가지 도안들을 묶어 <쉽게 뜨는 탑다운 니트>를 출간했다. 목부터 아래로 뜨개질하는 ‘톱다운’(하향식) 방식을 소개하는 책이다. 패턴에 맞춰 평면 조각들을 아래서부터 위로 뜨고 나중에 이어붙이는 ‘보텀업’(상향식) 방식과 비교하면 과정이 단순한 톱다운 방식은 뜨개 초보들이 접근하기 좋다. 톱다운 방식은 이미 해외에선 20년 이상 전수되어온 방법이다. 한국에 소개된 시점은 5~6년 전 즈음. 스웨터를 쭉 떠온 이들 사이에선 생소한 방식은 아니나 최근 1~2년, 뜨개 초보자까지 바늘을 잡게 된 데는 쉬운 이 방식을 대중화한 김대리의 역할이 컸다.

―기존 방식과 톱다운 방식 스웨터의 차이점은?

“맨 아랫단부터 위로 올라가는 보텀업 방식은 완성도가 높지만, 길이나 폭을 조정하는 것이 어렵다. 바꾸려면 실을 다 풀어야 한다. 하나 어긋나면 옷 모양이 틀어지기도 해서 고려할 것이 많다. 그런 스트레스를 받자고 뜨개질하는 게 아니다. 비교적 쉬운 톱다운 방식은 성취감도 크다. 단계가 확실히 나뉘어 있는데, 단계마다 해야 할 게 분명하다. 이것까지만 하면 몸통이 완성되고, 다음은 소매 차례 식이다. 유독 20대가 이 방식에 빠지는 데는 이유가 있다. 성취감뿐만이 아니다. ‘조금 틀려도 괜찮다. 입어봤는데 나쁘지도 않다. 내 마음대로 크기 조정도 할 수 있다’ 등이 매력 포인트다.”

―나도 해보니까 알겠더라. 뜨다 지루하면 중간에 입어보는 재미가 있더라.

“옷 형태에 가까워질수록 스스로 뿌듯하다. 그 과정을 에스엔에스에 올리면 반응도 좋다. 이런 요소가 요즘 시대와 잘 맞아떨어진 것 같다. 회사의 장점은 옷 뜨기 좋은 실과 디자인을 두루 갖춘 것이었는데, 2018년 겨울엔 가방 뜨기가 유행이어서 어려웠다. 물론 그 전 기성복이 대세가 되면서도 어려웠다. 다시 옷 뜨기가 유행해서 다행이다. 매출이 2017년에 견줘 세배가 올랐을 정도로 옷 뜨는 이들이 늘었다.”

―영국 뜨개 교실 체험 유튜브 영상에서 ‘야심’을 솔직하게 드러냈다. 욕심, 야망 등을 드러내는 걸 개의치 않는 ‘90년생’인가? 보통 그러는 게 쉽지 않다.

“제 이름의 한자가 ‘겸손할 겸’인데.(웃음)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타입이다. 숨기면 숨길수록 사람들한테 알려줄 정보가 없어진다. 그래서 자신감 있게, 솔직하게 전달한다. 회사를 더 크게 키울 거라고 말하면 욕심이 있는 이구나 하면서 힘을 실어주는 이들도 있다.”

―뜨개질하다가 클라이밍을 하러 가기도 하던데, 에너지가 넘치는 편인가? 정적인 일을 하는 이와는 안 어울리는 듯하다.

“스노보드, 익스트림스포츠를 좋아한다. 스피드를 즐기는 편이다. 사람은 여러 가지 면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유독 뜨개질하는 이들을 한 가지 틀로만 보려는 사람이 많다. 뜨개질은 게임과 비슷하다. 어릴 때부터 게임을 즐겼는데, 게임에서 퀘스트(게임 유저의 임무)를 깨면 보상이 생긴다. 어려운 도안을 만나서 내 힘으로 해결하면 스스로 감탄한다. 완성품이 보상이다.”

―누군가를 위해 뜨개질하는 여성의 모습이 대중문화에서도 오랫동안 반복되어왔다.

“뜨개질을 여성이 많이 하는 수공예 따위라고 폄하하는 경향과 연결된다. 뜨개질하는 이는 게임 유저와 다를 바 없다. 성취감이 생긴다. 요즘 남자들도 뜨개질에 빠진 이가 많다. 열심히 하는 내 유튜브 남성 독자도 많다. 아마도 이런 세태를 반영해 대중문화도 바뀌지 않겠는가.”

―김대리는 뜨개질 선물을 하지 않는다고?

“‘나 하나 떠줘’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막상 받으면 안 입고 다닌다. 제작한 이의 노력은 생각도 안 하고 쉽게 달라고 한다. 실례다. 얼마나 공이 들어갔는지 모르니까. 가볍게 던진 빈말이어도 뜨개질하는 사람들은 진심으로 받아들인다. 자신의 작품이 소중하게 다뤄지길 바란다. 하지만 서로 마음가짐이 어긋나게 마련이다. 달라고 하면, 뜨는 방법을 알려준다. 떠봐야 아니까.”

글 유선주 객원기자 oozwish@gmail.com,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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