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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3 (월)

진태옥 “지구 살리는 옷 입히고 싶다, 블랙핑크 연락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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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세 거장의 새 꿈 ‘리사이클 패션’

재킷 해체·재조합하며 행복감

“썩지도 않는 수백만 벌 재생운동

K팝 스타들 함께하면 파급력 클 것”

중앙일보

데뷔 55주년을 맞은 진태옥 패션 디자이너가 브랜드 ‘래코드’와 협업한 리사이클 패션 전시. 견고한 디자인의 남성재킷과 부드러운 벨벳을 조합시켜 특유의 중성적 감성을 표현했다. 우상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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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대표하는 1세대 패션 디자이너 진태옥(86). 요즘 그가 푹 빠진 일이 있다. 바로 패션 리사이클 작업이다.

“전 세계에서 수백만 벌의 옷이 새로 만들어지고 또 그만큼 버려지고 있어요. 지구를 살리기 위해 패션 디자이너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 중입니다.”

진 디자이너는 코오롱FnC의 브랜드 ‘래코드(Re;code)’와 협업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래코드는 자사 내 재고 의류들을 해체한 후 재조합해 전혀 색다른 제품을 만들어내는 업사이클링 브랜드다. 지난 2월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 초청받아 진 디자이너와 함께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준비했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전시가 취소되면서 서울 이태원의 남성복 매장 ‘시리즈코너’로 전시 공간을 옮겼다.

“처음 함께하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는 낯설지만 해볼 만하다 생각했어요. 있는 옷 뜯어서 이리저리 다시 붙이면 되겠지 했는데 아니더라고요. 면도칼로 청재킷 하나를 해체하는 데 온종일 걸리는 거예요. 어느 순간 ‘내가 얼마나 바쁜 사람인데 이걸 뜯고 있나’ 짜증이 나더라고요. 하하.”

올해로 데뷔 55년째인 백전노장은 “결국 청재킷 해체는 너무 어려워서 포기했다”며 “훈련을 더 해서 다시 도전하겠다”고 했다. 그가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주재료로 선택한 건 검은색 남성재킷과 검정·파랑 벨벳이다. “견고한 분위기의 남성재킷에 부드러운 벨벳 소재를 얹어서 극과 극의 감성을 만나게 한 거죠.”

무거운 코트 재킷의 옆단을 터 A라인의 흰색 셔츠를 붙이고, 심플한 라인의 검정 재킷에 벨벳 리본과 술 장식을 달았다. 남성과 여성, 그 극단 사이 어디엔가 존재하는 중성의 느낌. 진태옥 디자이너가 평생을 천착해온 주제다. 말씨와 행동은 소녀 같지만 평소 옷차림과 디자인에선 강한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진 디자이너다운 콘셉트다. 그의 작품 10개는 이달 말까지 전시·판매되며 내달엔 중국의 유명 패션 편집숍이자 복합문화공간인 ‘더리퍼블리크’의 초청으로 청두에서도 전시된다.

그는 옷을 해체하고 다시 조합하는 과정에서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전율과 행복을 느꼈다고 했다.

“재킷 소매를 툭 뜯었을 때 안감·심지·계심지 등의 속살이 한꺼번에 주르륵 드러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옷과 대화를 하고 있더라고요. ‘얘, 넌 너무 예쁘게 생겼다’라고 말이죠. 하하. 그렇게 한 조각씩 자르고 특징을 관찰하면서 퍼즐을 맞추듯 새 옷을 만드는 과정이 너무 재밌었어요.”

늦은 나이 제2의 인생 주제로 고민할 만큼 리사이클 작업에 빠졌다는 진 디자이너는 “K팝 스타들이 한국 디자이너가 만든 리사이클 옷을 입고 무대에서 공연하는 걸 보는 게 꿈”이라고 했다.

“지구 전체를 몇십 겹 에워싸고도 남을 만큼의 옷이 버려져 땅에 묻히는데, 썩지도 않아요. 리사이클 패션은 전 세계 인류의 숙제입니다. 누군가는 이 심각성을 큰 목소리로 알려야죠. 저 같은 디자이너 한 명의 힘으론 어렵겠지만 BTS·블랙핑크 같이 영향력 있는 가수들이 함께 글로벌 캠페인을 벌인다면 파급력이 크겠죠. 사실 내 머릿속에는 이미 블랙핑크 멤버들에게 어떤 옷을 어떻게 입힐지 다 계획이 서 있어요. 이제 연락만 오면 되는데. 하하.”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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