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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민족문학과 세계문학 1 - 백낙청 [한영인의 내 인생의 책 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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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이 잃어버린 것

[경향신문]

경향신문

가장 적은 수의 독자를 거느리고 있는 장르는 무엇일까. 문학평론가가 되기 전엔 잘 몰랐는데 이제는 그게 ‘문학평론’이 아닐까 생각한다. 문학이 죽었다고 아우성을 치지만 시와 소설의 독자는 비교적 건재한 편이다. 하지만 평론은 아니다. 평론가 지망생이나 자신의 작품이 거론된 작가 외에 평론집의 독자를 자처하는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다.

그 이유를 분석하자면 이 제한된 지면으론 턱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여기서는 문학 비평이, 그러니까 시와 소설에 대한 분석과 평가가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읽히고 그 평문의 이념으로부터 새로운 삶의 이상을 구축해가던 시대가 우리에게도 있었다는 사실을 짚는 데서 멈출 수밖에 없다.

백낙청의 첫 평론집인 <민족문학과 세계문학 1>은 문학평론이 시대의 새로운 사유를 선도하던 풍경을 대표하는 저작이다. 이 책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시민 문학의 덕목을 역사적 안목으로 고찰한 <시민문학론>(1969)과 계간지 ‘창작과 비평’의 창간호 권두논문으로 쓰인 ‘새로운 창작과 비평의 자세’(1966)가 책 시작과 끝을 감싸는 형태로 배치되어 있다. 시작과 끝에 배치된 이 두 글만 정성들여 읽더라도 오늘날 비평이 무엇을 상실했는지 여실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민족(문학)과 세계(문학)의 관계는 앞서 소개했던 최인훈에게도 중요한 화두였다. 최인훈은 <회색인>에서 “보편과 에고의 황홀한 일치, 그것만이 구원이다”라고 말했지만, 백낙청의 비평은 민족(에고)과 세계(보편)의 관념적인 일치를 추구하는 대신 민족-지역-변방의 시각에서 보편-세계-중심의 위상을 해체적으로 재구성한다. 한국문학은 백낙청이 선도한 민족문학의 이념을 통해 비로소 스스로에 대한 자조와 한탄 없이, 그리고 그 자조와 한탄의 짝패라 할 순진한 동경과 환상 없이, 세계와 접속할 계기를 마련했던 것이다.

한영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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