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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서 전사한 터키군 966명... 한국의 아들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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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 대사들이 '똑같이 6·25전쟁에 참전했는데 왜 한국은 유독 터키만 형제의 나라로 부르냐’고 자주 묻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터키가 한국에 남아 한국인을 지켰고, 그들을 가족처럼 대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하죠.”

에르신 에르친 주한 터키 대사는 최근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본지 인터뷰에서 “일부 학자는 한국과 터키가 1000여년 전부터 교류했고, 두 국가가 비슷한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가까워진 것이라고 하지만, 형제의 나라로 불리게 된 건 결국 6·25전쟁 때문”이라고 했다. 에르친 대사는 “터키는 6·25전쟁이 끝난 뒤에도 1971년까지 군인들을 한국에 보냈다”며 “수백 명의 전쟁 고아에게 쉼터와 식량을 제공했고, 여러 인도적 교류까지 제안했다”고 했다. 그는 “터키인들은 가족을 중시한다”며 “전쟁에서 부모를 잃은 고아들에게 가족과 같은 연민을 느꼈다”고 했다. 함께 피를 흘리며 싸웠을 뿐 아니라 전후 참상을 복구하는 과정에서 한국과 터키가 형제·가족이 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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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신 에르친 주한 터키 대사가 최근 서울 한남동의 터키 대사관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에르친 대사는 “6·25 전쟁이 끝난 뒤에도 터키는 한국인을 가족처럼 지켰다”고 했다. /박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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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는 6·25전쟁 당시 참전국 중 넷째로 많은 2만1500여 명의 군인을 파병했다. 이 중 966명이 숨지고 1155명이 부상했다. 터키군이 치른 대표적 전투인 ‘군우리 전투’는 백병전을 불사한 터키군이 중공군의 공격을 저지해 유엔군의 철수를 이끌어낸 전투로 평가받는다. 터키군은 이 전투에서만 767명의 사상자를 냈다.

에르친 대사는 터키의 6·25전쟁 참전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순교(martyrdom)’라는 단어를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터키에서는 순교에 신성한 의미가 있다”며 “조국을 위해 싸우고 목숨을 잃은 순교자들은 터키에서 큰 존경을 받고 있다”고 했다. 에르친 대사는 “숨진 군인들, 순교자들은 신성한 대의를 위해 싸웠고 신의 곁으로 갔다”며 “그들은 한국 군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싸웠고, 싸우다 죽어 한국의 아들이 됐다”고 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지난 6월 25일 6·25전쟁 70주년 영상 메시지를 통해 “순교자들에게 자비와 감사를 표한다. 한국 땅의 영원한 휴식처에 나란히 누워있는 영웅들의 성스러운 기억에 경의를 표한다”고 했는데, 이는 6·25전쟁 당시 함께 싸우다 숨진 한국과 터키의 순교자들에게 존경을 보인 것이라고 에르친 대사는 밝혔다.

북한 대사이기도 한 에르친 대사는 여전히 분단·대립 중인 남북한의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북한은 한국에 상당히 관심이 많다”며 “북한 사람들은 서울과 이스탄불의 항공편이 일주일에도 여러 편 있다는 말에 상당히 놀라워했다”고 말했다. 에르친 대사는 “북한 사람들은 6·25전쟁 당시 터키는 미 제국주의의 편에 서서 자신들과 싸웠지만 이를 용서한다는 말도 했다”며 “6·25전쟁을 북침으로 기술한 북한 역사책도 읽었는데 북한이 흥미로운 곳이라는 걸 느꼈다”고 했다. 에르친 대사는 "통일이 된다면 남북한이 경제적으로 더욱 크게 성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서로 간의 신뢰를 회복하는게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공동 기획 : 6·25전쟁 70주년 사업추진위, 조선일보

[양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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