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가 발표되는 순간 이건희 IOC 위원이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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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석무 기자] 한국 스포츠계의 큰 별이 떨어졌다.
한국 재계를 대표하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서울 일원동 서울삼성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78세.
이 회장은 한국이 세계적인 스포츠 강국으로 발돋움하는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한국을 넘어 세계 스포츠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지도자로 이름을 알렸다.
이 회장이 스포츠와 본격 인연을 맺은 것은 서울사대부고 재학시절이었다. 당시 레슬링 선수로 2년간 활동했고 1959년 전국대회에서 입상한 경력도 가지고 있다. 고교 시절 맺어진 레슬링과의 인연은 대한레슬링협회 회장직을 맡으면서 계속 이어졌다. 이 회장은 1982년 제21대 대한레슬링협회 회장에 선출된 이후 1997년 IOC 위원에 선출돼 물러날 때까지 15년간 회장직을 맡았다.
이 회장은 1996년 7월 애틀랜타올림픽 기간 중 열린 제 105차 IOC총회에서 IOC위원에 선출된 뒤 20년 넘게 스포츠 외교 무대에서 한국 스포츠 발전을 위해 앞장섰다.
2012년 런던올림픽 자유형 400m 예선에서 박태환이 실격 해프닝을 겪었을 때 마침 현장에 있던 이 회장이 탁월한 외교력을 발휘해 극적으로 상황을 반전시킨 일은 체육계의 유명한 일화다.
이 회장이 이끈 삼성그룹은 IOC와 올림픽 공식후원사로서 올림픽의 성공과 함께 했다. 올림픽 현장 곳곳에 이 회장과 삼성의 흔적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도 직접 현장에서 발로 뛴 이 회장의 헌신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다. 이 회장은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부터 2011년 남아공 더반 IOC 총회까지 1년 반 동안 무려 11차례나 해외 출장을 다니며 유치활동을 벌였다. 날짜로는 170일이나 됐다..
이 회장이 일군 삼성스포츠단은 한국 스포츠의 뿌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야구, 축구, 배구, 농구 등 인기종목은 물론 탁구, 레슬링, 테니스, 럭비, 배드민턴, 태권도, 육상 등 비인기 종목에도 아낌없는 투자와 관심으로 세계 최고의 선수를 키워냈다. 한국 스포츠 구석구석에 삼성의 흔적이 묻어있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남다른 야구 사랑은 유명한 내용이다. 일본 와세대 대학 유학 시절부터 야구를 좋아했다는 이 회장은 1982년 삼성 라이온즈 창단 당시 초대 구단주를 맡아 직접 구단 운영을 챙겼다.
이 회장이 구단을 이끌던 당시 1985년 삼성은 프로야구 최초로 미국 전지훈련을 떠났다. 최초의 2군 전용훈련장인 경산볼파크도 건립했다. 이 회장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선진시스템을 일찌감치 구축한 삼성은 단숨에 명문구단으로 발돋움했다. 이는 곧 한국 야구 전체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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