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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건희 삼성 회장 별세...향년 78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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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행 : 김영수 앵커, 박상연 앵커
■ 출연 : 김태민 경제부 기자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앵커]
경제부 김태민 기자와 함께 관련 소식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앵커]
먼저 오늘 이건희 회장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경위부터 정리를 해 주실까요?

[기자]
굉장히 갑작스러운 소식이었습니다. 오늘 오전 9시 50분쯤에 최초로 별세 소식이 보도가 됐고요. 10분 뒤쯤에 삼성그룹 측에서 이건희 회장의 사망을 공식적으로 발표했습니다.

서울 일원동 서울 삼성병원에서 2014년 5월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이후에 6년 투병 끝에 별세하게 됐습니다. 당시 저희가 확인 절차를 거치면서 삼성그룹 관계자들에게 전화를 했는데요.

당시 일부 관계자들에게는 관련 내용이 공유하지 않을 정도로 갑작스러운 소식이었고요. 일부 핵심 관계자만 보고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아까 말씀 전해 드린 것처럼 가족장으로 고인과 유족장의 뜻에 따라 간소하게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다고 삼성 측이 발표했습니다.

[앵커]
지금 저희 취재기자도 병원에 나가 있는데 삼성서울병원에서 장례가 치러지는 거죠?

[기자]
그렇습니다. 앞서 현장에서 전해드렸듯이 장례식장 17호실에서 가족장으로 일반 조문과 조화는 정중히 사양한 채 장례가 치러지게 되고요. 그룹 관계사 사장단 등은 내일 오전 10시 이후에 조문 예정이라고 합니다.

아시겠지만 코로나19 상황 때문에 수도권 집합금지명령으로 장례식장이 50명 이내로 통제를 해야 되기 때문에 삼성은 전현직 사장만 조문을 하게 되고요.

정치인 등 외부 조문은 찾아오면 받기는 하겠지만 전해드린 것처럼 외부에서 줄을 서서 기다려야 되는 상황이 연출될 것 같습니다.

[앵커]
이건희 회장, 우리나라 재계를 대표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어떤 인물이었는지 다시 한 번 정리를 해 주시죠.

[기자]
이건희 회장의 생애와 업적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먼저 1942년 대구에서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8남매 중에는 7째고요. 남자 중에는 막내입니다.

3남이고요. 1987년 11월에 삼성그룹 회장에 취임하게 됩니다. 그리고 1993년 유명한 프랑크푸르트 선언으로 기술 위주의 경영을 선언하고요. 이후에는 지금 우리가 모두 아는 것처럼 글로벌 브랜드 삼성을 일구어낸 게 바로 이건희 회장의 핵심적인 성과입니다.

[앵커]
김태민 기자가 지금 내용 전해주고 계신데 저희 현장에 취재기자가 한 명 더 나가 있어서 관계 소식 알아보겠습니다. 이건희 회장이 별세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건희 회장이 살던 한남동 주택 앞은 정막한 분위기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 회장이 자택을 떠난 지 오래 된 만큼 근처 주민들도 차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현장의 취재기자 연결합니다. 홍민기 기자!

[기자]
서울 이태원동 이건희 회장 자택 앞에 나와 있습니다.

[앵커]
현장 분위기 어떻습니까?

[기자]
제가 나와 있는 곳은 고 이건희 회장이 살던 집 앞입니다. 보시는 것처럼 집 주변은 높은 담으로 둘러쳐져 있습니다.

담 곳곳에 외부와 통하는 문이 나 있지만이 역시 굳게 잠겨 있는 상황입니다. 조금 전 보안업체 관계자로 보이는 직원이 내부로 들어가기도 했는데요.

이 회장의 별세 소식을 들었냐는 질문에는 답을 아꼈습니다. 주변을 지나다니는 주민들도 아직은 적어골목은 적막한 분위기입니다.

현재는 이곳에 나온 취재진들만 간혹 볼 수 있는 상황인데요. 경찰도 현재까지 이곳 주변에서 예정된 집회나 시위는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 회장은 지난 2014년 이 집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이 회장이 집을 떠난 지 6년이 넘은 만큼주변 주민이나 자택 주변이 크게 동요하지는 않는 상황입니다.

이곳 경비원도 평소 지나다니는 주민이 적고, 오늘 언론 보도를 통해 이 회장의 별세 소식을 알았다고 전했습니다.

지금까지 서울 이태원동 이건희 회장 자택 앞에서 YTN 홍민기입니다.

[앵커]
다시 김태민 기자와 함께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이건희 회장 가족관계도 살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기자]
앞서 말씀드리려다가 끊겼는데요. 유족으로는 부인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이 있고요. 장남으로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차녀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그다음에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그리고 사위가 있고요. 유족들은 빈소로 향하고 있거나 이미 도착한 상태로 보여집니
다.

[앵커]
삼성그룹에 대해서 계속 얘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어떻게 이건희 회장이 글로벌 기업으로 키웠는지에 대해서도 얘기를 해 주실까요?

[기자]
가장 우리나라 재계의 중요한 분기점이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1993년 프랑크푸르트 선언에서 마누라와 자식 빼고는 모두 바꿔라 그러면서 신경영을 선언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만드는 제품은 국내에서는 좋은 반응을 얻었을지 모르겠지만 세계 시장에서는 사실 삼류 취급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런 조악한 품질을 보고 이건희 회장이 모든 걸 바꿔봐라, 그리고 기술 위주의 제품을 선보여라, 이런 주문을 했고요.

실제로 삼성은 이후에 가전, 그다음에 지금 삼성을 이끌고 있는 두 축이죠, 반도체와 스마트폰 부분에서 눈에 띌 만한 성장을 하면서 현재는 글로벌브랜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초일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게 됐습니다.

[앵커]
이렇게 양보다 질을 우선시하는 이건희 회장의 경영 철학은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이끈 주된 동력이 됐습니다.

이 회장은 변화를 끌어내기 위해서 불량제품 200억 원어치를 불태워버리기도 했습니다.

한상욱 기자의 리포트 보시겠습니다.

[기자]
이건희 회장은 취임 때부터 많이 만들기보다는 잘 만들기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고 이건희 / 삼성그룹 회장 : 삼성은 좋은 제품을 싸게 만들어 사회에 공급하고.]

하지만 뜻대로 안 됐습니다.

오히려 아귀가 맞지 않는 불량 세탁기 뚜껑 부품을 칼로 깎아서 대충 조립하는 충격적인 모습이 사내 방송 전파를 타기까지 했습니다.

이 회장은 삼성을 3만 명이 만들고 6천 명이 고치러 다니는 집단이라고 혹평합니다.

[고 이건희 / 삼성그룹 회장 : 회장이 되고 만 5년 몇 개월간 계속 불량 안 된다, 불량 안 된다, 질을 향해라. 그런데도 아직까지 양을, 양을, 양을 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래도 고쳐지지 않자 1995년에는 충격 요법을 사용합니다.

[당시 삼성 사내 방송 : 다시는 불량제품을 만들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결의대회 현장입니다.]

품질 불량으로 수거된 무선전화기와 팩시밀리, 키폰 등 200억 원어치에 달하는 제품 15만 대를 불태워 버린 겁니다.

이후 삼성은 1994년 4위이던 무선전화기 시장에서 1995년 1위로 올라서며 변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세계 시장 점유율 1위 제품이 20개가 될 정도로 품질을 인정받는 기업이 됐습니다.

그 뒤에는 양보다 질을 앞세운 이건희 회장의 경영철학이 있었습니다.

YTN 한상옥입니다.

[앵커]
대한민국 재계를 이끈 이건희 회장이 삼성그룹을 대표를 하면서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안 좋은 일들도 많았죠?

[기자]
그렇습니다. 이건희 회장이 이렇게 우리나라 재계 역사상 가장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훌륭한 경영 행보를 보였지만 그 이면에는 그림자라고 불릴 만한 어두운 이면도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2008년 삼성 특검이 있습니다. 삼성의 전 법무팀장인 김용철 변호사와 삼성 비리와 관련해 폭로를 하게 되고요. 차명계좌 적발 이런 것들이 이어지면서 2008년 4월에는 임원들과 함께 불구속 기소가 됐습니다. 당시에는 양도소득세 456억 원에 대한 조세포탈 혐의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 원이 선고되기도 했습니다. 2009년 8월, 이듬해죠. 2009년 8월에 유죄가 확정이 됐고요.

그 같은 해 12월에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특별 단독사면을 발표하면서 이듬해 1월 경영 일선으로 복귀하게 됐습니다. 물론 경영 일선에 복귀해서도 훌륭한 경영 행보를 보였지만 당시에 보여줬던 이런 우리나라 재벌 기업들의 고질적인 윤리적 문제는 지금까지도 이건희 회장이 비판을 받게 되는 주요 요인 중의 하나로 꼽히게 됩니다.

[앵커]
전해 드린 것처럼 삼성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운 고 이건희 회장은 어두운 면도 많았습니다. 3세 경영 승계 과정에 논란을 남겼고 야심차게 시작했던 자동차사업에서는 실패했습니다. 김도원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기자]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를 싸게 발행해 편법으로 이재용 씨에게 넘겼다는 의혹.

또 삼성SDS 주식 역시 신주인수권부사채를 이용해 재용 씨에게 헐값에 넘겼다는 것은 편법 경영권 승계 의혹의 핵심이었습니다.

결국 의혹의 정점에 있던 이건희 회장은 특별검사의 수사를 받았습니다.

[고 이건희 삼성회장 / 특검 출석 당시 : 특검 수사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겠고, 앞으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겠습니다.]

여기에 삼성 법무팀장이었던 김용철 변호사가 폭로한 비자금 의혹까지.

이 회장은 조세포탈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2008년 회장직에서 전격 사퇴했습니다.

[고 이건희 삼성회장 / 2008년 사퇴 기자회견 : 삼성 국제회의장 할 일 많고 갈 길 멀지만, 지난날의 허물을 모두 제가 떠안고 가겠습니다.]

좀처럼 실패를 모르던 이 회장은 자동차 사업에서는 고배를 마셨습니다.

1995년 삼성자동차를 설립한 뒤 1998년 SM5를 선보였지만, 외환위기로 어려움을 겪게 되고 사재까지 털어 넣었지만 결국 회사는 2000년 프랑스 회사 르노에 매각됐습니다.

반도체 공장 직원들의 백혈병 발병과 사망은 무노조 삼성의 그림자로 불렸습니다.

또 형 이맹희 씨와 유산배분 소송을 하면서 불거진 가족 간 불협화음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YTN 김도원입니다.

[앵커]
큰 경영 성과를 이룬 동시에 힘든 시간도 있었고요. 또 건강 문제도 늘 거론이 돼왔습니다. 한 6년여간 투병생활을 해 왔었죠?

[기자]
그렇습니다. 2014년 5월이었죠. 이건희 회장이 자택에서 급성 심근경색으로 가까운 순천향대병원 서울병원 응급실에 입원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당시도 이건희 회장의 생사에 대한 굉장한 관심이 쏟아졌고요. 당시에 그러나 심폐소생술로 심장 기능이 돌아온 다음에 삼성그룹 산하인 삼성서울병원에 이송돼서 심장 혈관을 넓히는 스텐트 시술을 받고 VIP 병실에 입원해 있었고요. 6년 5개월 동안 투병생활을 했습니다.

아무래도 6년 5개월 동안 이건희 회장의 건강 상황이 재계를 출입하는 기자나 다른 모든 전반적인 사회에서 굉장히 큰 관심이 됐습니다.

이건희 회장의 생사는 단순히 개인의 생사가 아니라 앞으로 삼성그룹의 경영권, 이런 문제에도 굉장히 예민하게 작용할 수 있는 문제라서 저희도 굉장히 유심하게 봤던 상황인데요.

예를 들면 삼성 관계자들을 만나게 되면 항상 빠지지 않는 질문이 이건희 회장의 건강을 저희가 항상 확인을 했는데 당시에도 삼성 관계자들은 정보에 대한 접근은 쉽지 않다. 하지만 의사소통만 어려울 뿐 정상적으로 생활을 하고 있다 이렇게 항상 저희에게 전달을 했는데 오늘 이렇게 사망이 공식적으로 확인이 이와 관련해서는 2016년 6월에는 이건희 회장이 사망했다, 이런 루머가 돌아서 한때 삼성 주가가 폭등하고 이런 해프닝까지 있었습니다.

[앵커]
그만큼 중요하고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은데 국내 언론은 물론이고 외신들도 많이 관심을 가지고 있죠?

[기자]
그렇습니다. 지금 이건희 회장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외신에서 굉장히 긴급하게 관련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관련 내용에 대해서 저희가 정리를 해 봤는데요.

지금 하나씩 짚어보면 AP통신에서는 이건희 회장의 사망 소식을 전하면서 지금 중소형 TV을 만들던 소규모 가전업체였던 삼성을 글로벌 브랜드로 키워낸 이건희 회장이 사망했다라고 했고 지금 비교적 사회적인 비판 강도가 높은 프랑스 언론 같은 경우에는 이건희 회장이 두 번의 기소에도 불구하고 별탈 없이 경영을 했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 비판적 시각을 내기도 했고요. 중국 언론도 우리나라 언론들의 소식을 인용해서 이건희 회장의 사망 소식을 긴급하게 타진하고 있습니다.

[앵커]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일류 기업으로 꼽히는 만큼 외신도 많은 관심을 갖고 보도를 하는 모습입니다. 이제 관심은 또 앞으로 삼성그룹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가 이 부분에 초점이 맞춰지지 않겠습니까?

[기자]
그렇죠. 가장 초미의 관심사가 바로 앞으로의 삼성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가일 겁니다. 2014년 5월 이후 사실상 이재용 부회장 체제로 삼성이 오랜 시간 자리를 잡았고요.

현재도 뚜렷한 성과를 낸 만큼 이재용 부회장의 입지가 흔들릴 거다, 이런 우려는 사실상 크지 않은 상황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발목을 잡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건희 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삼성그룹 주식이 시가로만 18조 원 규모가 되거든요. 우리나라 주식 여전히 1위인데요. 하지만 이건희 회장이 사망함으로써 상속을 해야 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상속세가 최고 상속세인 65%에 해당하기 때문에 상속세만 약 10조 원 규모입니다. 이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 지금 이재용 부회장이나 이런 자녀들의 경영권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런 리스크가 있고요.

이렇기 때문에 지배구조 개편이 아직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안정적 지배구조를 개편하는 것이 앞으로 삼성그룹의 가장 큰 과제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경영권 승계 문제가 삼성그룹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건 이전에 문제가 됐던 부분을 살펴보면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에버랜드 전환사채, 국정농단 특검, 그리고 최근에 삼성바이오로직스 사태까지 모두 다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작업이 문제가 돼서 나타났던 법정 다툼이거든요.

그래서 앞으로 아직도 이재용 부회장의 재판은 진행 중이고요. 그렇기 때문에 상속세 부분, 그리고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합법적인 것을 법원으로부터 받아내야 앞으로 삼성그룹이 안정적으로 지금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꾸준히 성장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될 것으로 보입니다.

[앵커]
앞으로 상황에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입니다. 고 이건희 회장은 평소 과묵한 것으로 소문이 나 있습니다. 하지만 한번 발언을 하면 재계는 물론 한국 사회 전체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이건희 회장이 했던 주요 발언들을 정리해 봤습니다. 이강진 기자입니다.

[기자]
1987년 이건희 회장의 취임 일성은 초일류였습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취임식 / 1987년) : 미래지향적이고 도전적인 경영을 통해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으로….]

이때부터 삼성은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는 화두를 내걸고 변화를 꾀합니다.

[이건희 (삼성 신경영 선언 / 1993년 프랑크푸르트) : 극단적으로 얘기해서 농담이 아니야,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봐.]

1993년 프랑크푸르트 발언에서도 이건희 회장의 의지는 확고하게 드러납니다.

[이건희 (삼성 신경영 선언 / 1993년 프랑크푸르트) : 잘해봐야 1.5류까지는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일류는 절대, 내 말에 절대라는 용어는 여간해서 잘 안 써요. 절대 안 된다는 얘기야, 지금 안 변하면….]

삼성뿐 아니라 한국 사회에도 끊임없이 숙제를 던졌습니다.

쫓아오는 중국과 앞서 가는 일본 사이에서 한국은 샌드위치 신세다, 우리나라 전체가 정신 차리지 않으면 5~6년 뒤 큰 혼란을 맞을 거라는 발언으로 끊임없는 위기의식을 강조했습니다.

[이건희 (2010년 12월) : 옛날 10년과 달라서 앞으로 21세기의 10년은 굉장히 빠르게 온다….]

정부 정책에 대해서 과감하게 쓴소리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건희 (전경련 회장단 회의 / 2011년 3월) : (MB정부 경제 정책에 점수를 매긴다면?) 참 어려운 질문인데 흡족하다기보다는 낙제는 아닌 것 같다.]

정치인은 4류, 관료 행정은 3류, 기업은 2류 수준이라는 말로 우리 정치권을 거침없이 비판한 적도 있었습니다.

"놀아도 좋으니 뛰는 사람 뒷다리 잡지 마라." (1993년 6월)

"천재 한 사람이 10만 명을 먹여 살린다." (2003년 6월)

인사에 관해서는 항상 신상필벌을 강조했습니다.

[이건희 (삼성그룹 서초사옥 출근 / 2011년 12월) : 잘하는 사람은 더 잘하게끔 발탁을 하고, 못하는 사람은 과감하게 무르고….]

평소의 지론대로 변화와 혁신을 통해 삼성을 일군 이건희 회장의 어록은 우리 기업사에 의미 있는 자취를 남겼습니다.

YTN 이강진입니다.

[앵커]
이건희 회장 별세 관련 소식 계속 전해드리도록 있습니다. 김태민 기자, 이건희 회장 지금까지 살아온 생애를 저희가 계속해서 소개해드리고 있는데 이에 대한 평가는 어떻습니까?

[기자]
이건희 회장은 우리 재계 역사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인물로 기록이 됐습니다. 이미 생전에도 그런 평가를 받아왔고요. 사실상 우리나라 기업이 이렇게 세계에서 큰 가치를 지닌 적이 역사상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걸 키워낸 사람이 이건희 회장인 만큼 이건희 회장의 성과는 아무도 무시할 수 없는 업적입니다. 하지만 그만큼 그 뒤에 우리 재벌, 이른바 재벌이라고 불렸던 기업의 고질적인 윤리적인 문제나 또 개인적인 여러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그 부분은 암이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평가는 앞으로 시간이 지나봐야 좀 더 정립이 될 것 같고요. 앞으로 삼성그룹이 이건희 회장의 부재 속에 어떻게 더 성장해나갈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으로 될 것 같습니다.

[앵커]
그렇습니다. 경제부 김태민 기자와 함께 이건희 회장 별세 관련 소식 나눠봤습니다. 고맙습니다.

[저작권자(c) YTN & YTN plu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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