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투표 시스템이 '사회적 약자' 차별
미국 대선 사전투표 첫날인 12일 조지아주 매리에타 카운티에서 수백명의 시민들이 투표를 위해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매리에타=A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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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3일 대선을 앞둔 미국 내 투표 열기는 치열한 선거전 때문인지 과거 어느 때보다 뜨겁다. 아직 투표일이 일주일이나 남았는데도 25일(현지시간) 기준 누적 투표자(5,870만명) 수는 4년 전 대선의 사전투표 규모를 훌쩍 넘어섰다. 그러나 축제 분위기에 가려진 그늘도 분명 있다. 백인 중산층을 위해 만들어진 미국의 투표 시스템은 소수인종과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이 맞닥뜨리는 차별적 현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미 지역 일간 애틀랜타저널(AJC)은 24일(현지시간) 투표소마다 길게 늘어선 ‘줄’을 통해 다층적인 차별 지점을 들여다 봤다. 올해 미 대선 투표에서 ‘시간’은 가장 큰 기회비용이다. 매체는 “2020년 투표의 최대 장애물은 8시간 넘는 인내를 요구하는 긴 줄”이라고 했다. 투표율은 높아진 반면, 선거 시설은 여전히 노후화한 탓에 조지아주(州)의 한 투표소에서는 사전투표 첫날에만 20명 이상이 권리 행사를 포기했다고 한다. 여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란 보건 악재까지 겹쳐 투표 시간은 훨씬 늘어났다.
저소득층에 충분한 시간적 여유는 허락되지 않는다. 미국의 선거일은 연방 공휴일이 아니어서 투표 시간이 길어질수록 생계 유지가 급급한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자는 어쩔 수 없이 기권할 수밖에 없다. 최근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 직원 6,500여명이 “선거일을 유급휴가로 해달라”고 요구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들은 31일 일일 파업까지 예고해 어떻게든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했다.
누구나 똑 같은 시간을 기다리는 것도 아니다. 긴 줄은 소수인종과 장애인에게 더욱 가혹하다. 미 ABC방송은 “인종은 미국인의 투표 대기 시간을 예측할 때 가장 중요한 고려 요인”이라며 “지난해 기준 흑인들은 백인보다 투표를 위해 29배나 더 오래 기다렸고, 투표가 30분 이상 걸릴 가능성도 74% 더 높았다”고 분석했다. 신분증 제시 의무화 등 2010년 이후 22개 주에서 투표 절차를 강화했지만, 소수인종과 빈민층 유권자는 신분을 입증하는 운전면허증이 없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재소자 투표를 불허하는 정책에도 인종차별 요소가 숨어 있다. 미국 내 흑인은 전체 인구의 13%에 불과하나 재소자 비율은 40%가 넘어 흑인 표심이 선거에 반영될 여지가 그만큼 줄어든다는 얘기다.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감옥에 있는 이들의 선거권을 박탈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약화시킨다”며 “단순히 보석금을 내지 못해 갇혀있는 무죄추정 미국인이 50만명에 이른다”고 전했다.
또 야외에서 장시간 오래 서 있는 것 자체가 노약자ㆍ장애인에게는 거대한 장벽이다. 올해 미 대선 투표자 중 장애인은 3,830만명이나 된다. 유권자 등록 사이트 보트닷오르그(Vote.org)는 이를 “어떤 이들에게는 투표가 ‘허들을 뛰어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여러 불편과 차별을 떠나 원활한 선거를 가로막는 최대의 적은 대선 투표 방식이 정쟁의 대상으로 전락해 신뢰를 잃었다는 점이다. 코로나19로 부재자 외 우편투표가 가능한 주가 지난 대선의 31곳에서 42곳으로 증가하는 등 투표 절차는 상당 부분 간소화됐지만, 양당의 기싸움에 가시적인 효과가 보이지 않는다. WP 집계에 따르면 유권자 약 1억명이 우편투표 대상인데도, 불신이 커 60% 이상은 사전투표를 계획하고 있다. 영국 BBC방송은 “현재 44개주에서 우편투표 집계 방법, 사전투표 대상자 관련한 소송이 300건 넘게 진행 중”이라며 “공화당은 ‘투표 사기’에 대한 단속을 강조하는 반면, 민주당은 시민권을 제한하지 말라며 맞서고 있다”고 전했다.
장채원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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