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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슈 차기 WTO 사무총장 선출

“유명희, WTO 결선 오른 것만으로도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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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최초로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이 탄생할까.

지난 수 개월 간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이 WTO 사무총장 경선에서 막판 결선까지 올라 나이지리아 장관 출신 후보와 접전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최종 선출 일주일여를 앞두고 유럽대륙에서 26일(현지시간) 뼈아픈 뉴스가 들려왔다.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이 나이지리아의 응고지 오콘조 이웨알라 후보를 지지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세계 최대 경제블록인 EU 회원국들이 나이지리아 후보 지지를 택했다는 것은 WTO 결선에서 유 본부장에게 대단히 불리한 상황이다.

WTO 회원국들을 대륙별 블록으로 보면 △아시아·대양주 47개국 △아프리카 44개국 △유럽 39개국 △아메리카 34개국 순이다.

이 중 유럽의 27개 EU 회원국과 아프리카 국가들의 집단적 지지가 나이지리아 후보에게 몰리면 단순 계산으로도 과반에 육박하는 유리한 고지를 형성하는 상황이다.

WTO 회원국들의 사무총장 선출은 투표가 아닌 집단적 합의(컨센서스)를 이루는 방식으로, WTO는 지난 19일부터 164개 회원국을 상대로 유 본부장과 응고지 오콘조 이웨알라 나이지리아 후보에 대한 최종 선호도 조사를 진행 중이다. 이 결과를 취합해 새 사무총장 선출시한인 내달 7일 전까지 회원국 간 컨센서스를 도출, 발표한다.

유명희 본부장의 출마 선언 이후 문재인 대통령까지 가세해 지원사격에 나섰지만 EU 회원국들의 집단 지지를 얻지 못한 것은 치명적이라는 분석이다.

한국 외교가에서는 "희망을 놓지 말고 내달 최종 결과를 봐야겠지만 유 본부장이 최종 결선에 오른 것만으로도 기적에 가까운 성공"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사실 유 본부장과 오콘조 이웨알라 후보의 글로벌 커리어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불릴만큼 비교가 되지 않았다.

오콘조 이웨알라 후보는 세계은행(WB)에서 25년간 일하며 아프리카 최대 경제대국인 재무장관과 외무부 장관을 지냈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대학원에서 지역경제 개발학 박사학위를 받은 국제개발 전문가다.

반면 유 본부장은 한국 외교부에서 최고의 여성 통상관료로 성장했지만 국제기구 업무경험이 풍부하지 않다. 직위 역시 한국정부는 대외적으로 통상장관 대우를 받는다고 주장하지만 정부 직제 상 차관급의 정무직 공무원이다.

전직 외교부 고위 인사는 27일 매일경제와 통화에서 "유 본부장이 최고의 통상 관료이지만 본부장직 재임 기간도 워낙 짧고 국제무대에서 잘 알려져 있지 않다"라며 "이는 '예측가능한 후보'를 원하는 다른 회원국들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8명의 후보가 모인 경선에서 최종 결선까지 오른 것 자체가 대단한 결과"라고 덧붙였다.

외교가에서는 또 미·중과 삼각 관계에서 신중한 행보를 보이는 문재인 정부의 입장이 결과적으로 유 본부장의 결선에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냉정한 평가도 나온다. 한국에서는 "나이지리아 후보가 WTO 사무총장이 되면 아프리카에 영향력이 큰 중국의 입김이 세 질 것"이라는 보도가 쏟아지지만 정작 WTO 회원국 사이에서는 "한국 문재인 정부의 친중 외교를 고려할 때 한국 후보가 이 문제에서 특별한 변별력을 갖지 않는다"는 상반된 분위기가 나온다는 것이다.

전직 고위 외교 관료는 "출마 후보 자체에 대한 전문성 평가 못지않게 회원국들은 후보가 소속된 국가의 경제·외교안보적 백그라운드를 보게 된다"라며 "나이지리아 후보의 국적이 미합중국이라는 점은 오히려 한국 후보보다 장점으로 부각되는 요소"라고 전했다.

아울러 한국 정부는 유 본부장을 홍보하면서 국제사회에 한국의 코로나19 성공대응( 'K방역')을 장점으로 부각시켰지만 오콘조 이웨알라 후보는 전세계 백신 개발과 공평한 분배를 위해 노력하는 세계백신면역연합(GAVI) 이사회 의장으로 본인이 직접 뛰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극복을 실천하는 그녀의 커리어를 EU회원국들이 이번 집단 지지 결정 과정에서 높게 평가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주변 여건이 갈수록 불리해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많은 한국민들이 유 본부장의 선전을 응원하며 내달 WTO에서 낭보가 들려오기를 바라고 있다.

[이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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