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5일 서울 일원동 서울삼성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78세. 28일 고인은 삼성전자 본사가 있는 수원 선영에 안장됐다.(뉴스1 DB)2020.10.25/뉴스1 © News1 이동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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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강호병 편집인/전무 =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오랜 투병 끝에 영면에 들었다. 그의 행적을 관찰해온 언론인으로서 다시 저런 위대한 경영자를 만날 수 있을까하는 아쉬움이 먼저 앞선다. 지정학적으로 피곤한 대한민국 경제에 그가 있었다는 것은 커다란 행운이었다. 초일류의 씨앗을 뿌리고 마침내 일구어낸 그의 공적은 쉽게 복제되기 어렵고, 경영과정에서 불거졌던 몇 가지 허물로 결코 깎아내릴 수 없다.
돌이켜 보면 한국경제사에서 고인처럼 초일류라는 키워드에 처음부터 끝까지 고도로 집중한 경영자는 없었다. 짐 콜린스는 그의 베스트셀러 ‘좋은 기업을 넘어...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에서 ‘좋은 회사에서 위대한 회사로의 전환은 결코 한 번의 혁신이나 행동에 의해 진행되지 않았다’며 위대한 기업을 만드는 일을 엄청나게 크고 무거운 플라이휠을 최대한 빠르고 오래가게 돌리는 것과 같다했다. 일관된 방향으로 가해진 힘이 누적되고 누적되어야 제법 원하는 정도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현실에 대한 냉정한 직시,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통찰, 원하는 수준에 갈 때까지 만족을 모르는 집요함이 없이는 그런 동력을 만들 수 없다.
고인이 딱 그 모습이다. 1987년 고인이 삼성그룹 회장에 취임할 때 던진 한마디부터 ‘초일류 기업’ 이었다. 2014년 고인의 마지막 신년사도 ‘한번 더 바꾸자’ 였다. 고인이 회장 취임 훨씬 전부터 방향을 이 키워드로 정리했던 것 같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자’는 말로 요약되는 1993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도 고인이 초일류를 향한 플라이휠을 가속시키는 하나의 과정에 불과했다. 세계 곳곳에서 삼성제품이 천대받는 서늘한 현실을 목격한 후 쏟아냈던 말들이니 호통 반, 설득 반이었을 것이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한국 주력 수출제품은 일본과 경쟁이 안됐다. 당시 세계시장을 석권한 일본기업의 경쟁력은 국내 기업에게 ‘넘사벽’이었다. 한국사람이 일본 여행이나 출장 가면 일본 전자상가 가서 워크맨이나 코끼리 전기밥솥 사오는 것이 일과였던 시절이다. 그러한 때에 초일류에 대한 꿈을 꾸고 병마에 쓰러지는 그날까지 초지일관 혁신의 바퀴를 돌리며 삼성제품을 세계 일류의 반석위에 올려놓은 그의 집요함과 담대함은 다른 경제영웅들과 구분되는 고인만의 위대함이다.
강호병 뉴스1 편집인© News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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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진격의 거인이었다. 장작불이 사그라들기 전 장작을 집어넣는 과정의 연속이었다고 할까. 아니, 고인 스스로 장작이었다. 그는 초일류 전쟁속에서 전사했다. 승리했지만 만끽할 처지가 못됐다. 하려고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단순한 일등이 아니라 남들이 따라잡을 수 없는 초격차 일등을 원했다.
쉼없이 떨어지는 고인의 추상 같은 초일류 행보 주문은 임직원에게는 가혹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전략사업 투자, 기술혁신, 인재등용 등 경영의 모든 면에 걸쳐 콕 집어 이뤄지는 포인트 레슨형 주문에 임직원들은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을 터이다. 다행히도 삼성은 고인의 경영무게를 잘 받아냈다. 하나씩 하나씩 혁신 기세를 만들면서 메모리 반도체에서 TV, 휴대폰에 이르기까지 전자분야 세계 1위로 등극하는 기적을 일궈냈다. 그런 삼성의 성취는 한국경제가 세계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하는 주축이 됐고 우리 국민들이 해외에서 뿌듯하게 활보할 수 있는 긍지가 됐다. 고인이 뿌린 초일류 DNA는 경제 곳곳으로 침투했다.
개인적으로 고인의 경영자로서의 업적과 달리 인간적인 모습을 깊이 느낄 기회가 별로 없었던 점은 아쉽다. 몇가지 일화와 삼성의 여러 가지 사회공헌활동을 통해 고인이 애국적 사명감과 따뜻한 인간미를 넉넉히 갖고 있었음을 짐작하는 정도다. 삼성에 비판적인 언론에 대해서도 홀대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대승적 면모는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는 생각도 했다.
이건희 회장과 삼성이 지금까지 이룩한 거대한 성취는 고인의 특별한 신념과 강력한 통솔적 리더십에 거의 의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사이 세상은 변화했고 삼성과 많은 소통을 원하고 있다. 그런 만큼 고인이 펼친 경영리더십이 후대의 삼성 경영자가 그대로 답습해야 할 것이라고 감히 말하기 어렵다. 고인이 남긴 초일류, 초격차 정신은 계승하되 방법론과 스타일은 후대 경영자가 선택해야 할 몫이다.
역사적 인물에 대해 공(功) 과(過)를 함께 논하는 것은 좋다. 누구도 흠결없는 완벽한 삶을 살다간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는 과 자체로 평가해 교훈과 개선의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공적이 눈앞에 크게 쌓여 있음을 알면서도 굳이 작은 과를 추출하여 과장하고 공격하는 세태가 나타나는 것은 매우 경계해야할 일이다. 본말이 전도되지 않도록 우리 사회가 그런 엇나간 세태를 정화하는 성숙함을 보여줄 때가 됐다.
공에 주목해 그 정신을 새기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다. 고인을 보내는 시점에서 더 그렇다. 삼성이 경쟁자와 더 격차를 벌리며 앞서가고, 더 많은 초일류기업이 나오도록 힘을 실어주는 것이 경이로운 업적을 남긴 경제영웅에 합당한 예우다.
이건희 회장님, 진격의 불호령이 벌써 그립습니다. 편히 영면하소서.
tigerkang@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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