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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이슈 미술의 세계

꿈과 신비의 여인에 빠진 화가 선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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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꽃.꿈 72.7×36.5cm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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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요미술기행-57] 서양화가 선종훈은 2014년 가톨릭에서 영세를 받았다. 세례명은 프라 안젤리코다. 안젤리코는 가톨릭에서 복자의 지위에 오른 초기 르네상스 시대 화가다. 그는 캐릭터화한 지금의 여인이 작품 주인공으로 들어가기 전, 도상(圖像)으로 보이는 십자가 등을 그려 이미 여느 종교화처럼 영성을 추구하고 있었다.

종교화는 그 신앙을 가진 자만이 그린다는 것은 편견이다. 일본계 프랑스 화가인 후지타 쓰구지(Fujita Tsuguji·1886~1968)의 "아기와 함께 있는 성모"는 그가 세례받기(1959년) 훨씬 전의 것이다. 후지타 작품은 이콘 형태의 금색 바탕에 마리아 입술엔 루주를, 손톱엔 매니큐어를 바른 현대 여성으로 그렸다. 중세 이콘 마에스타(아기를 안고 옥좌에 앉은 마리아)를 연상시킨다. 한국화의 대가 소산 박대성은 젊은 시절 가톨릭 신자가 되었으나 실제 작품은 불성이 물씬한 작업을 한다.

작가에게 신앙은 그 신앙이 가진 이성적 요소보다는 감성과 서정성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선종훈은 자신의 작품 속 여인은 성모 마리아라고 말한다. 종종 여인 옆에는 남성이 서 있다. 마리아와 혼인한 요셉이다. 요셉은 '침묵과 노동, 은둔'의 상징이다. 동정으로 잉태한 약혼녀의 임신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던 요셉의 인간적 번민과 고통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매일경제

나의 당신 My Beloved 109×78cm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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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종훈 작품의 특징중 하나는 인물의 배경인 장의자 패브릭 소재를 표현한 데서 출발한 패턴이다. 2010년께부터 등장한 이 패턴은 삼각형을 요소 단위로 하며 작품의 구도와 색면을 지배한다. 패턴 작업 과정은 명상에 든 기도와도 같다. 무의식중에 붓질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작업은 최종적으로는 사람의 얼굴에 집약되면서 몽환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몽환은 잠재의식과 무의식의 표현이다. 몽환은 애매모호성이다. 여인은 성모이면서 어머니, 부인이기도 하다. 눈 감은 여인의 표정은 꿈과 신비를 간직하고 있다. 몽환은 마치 분장한 듯한 여인의 얼굴로 나타난다.

캔버스에 얹은 아크릴 물감을 이리저리 기울여 만든 거친 마티에르의 바탕과 고랑을 판 듯한, 또는 패턴만으로 둘러쳐져 선이 된 안쪽 컬러가 대조를 이룬다. 이러한 기법은 인물의 선과 피부 톤을 살려낸다.

매일경제

완전한 펑온 60.6×50cm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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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종훈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인생의 목표를 화가로 정한다. 대상도 이미 정했다. '인간의 존재=인물'을 그리기로 했다. 미술반 학생은 누구나 그리는 석고상은 사람이라는 존재와 그 음영들을 그리는 모델이 되었다. 전남 화순 출신인 그는 광주를 거쳐 선화예고 1기로 입학하면서 서울로 이주한다. 부인은 고교 동기 동창이다.

대학 졸업 후 모교에 강사로 재직하면서 작업을 계속했으나 큰 변화가 필요했다. 작업을 계속할지, 어떤 작업을 할지 방향을 정해야 했다. 1994년 전 가족을 데리고 프랑스로 이주했다. 파리 남쪽, 중부 소도시 오를레앙에서도 20여 ㎞를 더 들어가는 곳이었다.

어느 날 산책을 하다 보니 베어져 쓰러진 나무 밑동의 단면에 석양이 들면서 사람 얼굴이 나타나는 듯 했다. 고향인 화순 운주사의 천불(千佛) 중 남아 있는 100여 구의 석불상이, 경주 남산의 마애불(마애석가여래좌상) 모습도 보였다.

3년여 프랑스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1997년 양평 대금리, 남한강이 내려보이는 경사지에 집을 짓기 시작했다. 돈이 모이면 짓고 없으면 중단하고를 반복하여 3년여 만인 2000년에 입주했다. 작업실 외피는 마치 비 맞은 녹슨 철판처럼 보이지만 합판을 덧댄 것이다. 20년이 지났지만 건축 과정의 어려움이 묻어난다.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한 10여 년 만인 2007년 학교를 그만두었다. 드로잉 등 작업에 매진하였다. 양평에 들어온 후 자연을 접하면서 무리와 군상으로서 인간이 아닌 개별 인간의 존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어느 누구와 비교 대상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간은 어디서 왔는가? 인간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에게 여인은 모성이며 생명을 낳은 모태이며,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수태고지(Annunciation·受胎告知 또는 聖母領報) 받은 10대 중·후반의 성모 마리아다. 빛나는 시절이면서도 두려움 가득한, 인간으로서는 감내하기 힘든 그런 짧은 시간 고뇌하는 마리아다.

여인이 가슴에 안고 있는 것은 빛이다. 빛은 변하지 않는다. 인간 누구나 스스로 변하지 않을 빛을 가지고 있다. 선종훈은 자연스럽게 가톨릭 영성을 받아들였다. 자신이 그려낸 주인공으로부터 절대자에게로 이끄심을 받은 것이다.

가톨릭 조각가인 장동호(1961~2007)와는 고교, 대학 동기 동창이다. 작품으로는 명동 성당 사제관 앞 '사형선고 받으심'(1994)이 많이 알려져 있다. 눈을 감은 예수의 머리엔 가시 면류관이 씌워져 있고, 얼굴엔 피를 흘리고 있는 모습이다. 그와는 2000년께 강원도 태백 지역에서 집짓기 사회 운동을 하던 비오 신부와 같이 활동한 경험이 있다. 하루 일과가 끝나고 주위가 사위어진 산속 허름한 작은 집에서 사제와 수도자, 봉사자 몇 명이 둘러 앉아 드리는 미사는, 전례를 잘 알지 못하는 선종훈에게 영성적 예술혼을 불어넣기에 충분했다. 장동호가 선종훈과 선종훈의 딸을 모델로 한 브론즈 작품이 그의 마당에, 작업실에는 철 십자고상이 늘 그와 함께한다.

매일경제

완전한 평온 90.9×72.7cm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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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성모 신심은 강력하다. 삼위일체인 하느님은 엄하고 무섭다. 예수를 낳은 성모는 모성으로 상처 입은 나약한 인간을 품어 안는다. 그러한 성모를 그림의 주제로 삼는 건 중세 이래 오래되었다. 그가 그리는건 성화(聖畵)가 아니다. 성화는 가톨릭의 전통과 엄격한 전례와 격식에 따른다. 그는 인간 탐구의 대상으로서 마리아에 빠져 있다. 양평 군립미술관에서 전시를 시작한 '포스트 양평'전에 나온 모 작가의 소녀상을 언급하며, 인물 캐릭터가 작품 중심에 자리 잡으면 벗어나기 쉽지 않다고 넌지시 말했다.

2010~2014년 전시를 갖지 않은 공백기가 있다. 이 기간에는 꽃이 눈에 들어왔다. 자녀들의 결혼을 돕기 위해 작업을 했다. 패브릭에서 시작한 패턴은 옷을 거쳐 최근에는 주인공의 후광으로 옮겨가고 있다. 후광은 자연으로부터 오는 빛이고 또한 생명이다. 자녀들이 결혼 후 낳은 손자들을 돌보는 즐거움 또한 크다. 유한적 존재인 인간과 새로운 생명의 성장을 지켜본다.

[심정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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