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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정부가 던진 세금폭탄에… 90억 최고가 아파트 싸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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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0 부동산대책으로… ‘나인원한남’ 사업자·세입자 갈등

반(半)전세 보증금만 최소 33억원, 월세가 높게는 250만원에 달하는 서울 한남동의 초고가 임대 아파트 ‘나인원한남(옛 외인아파트)’에서 최근 임대 사업자와 세입자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당초 4년 임대 후 분양하기로 약속했던 사업자 ‘디에스한남’이 갑작스레 분양 시점을 내년으로 앞당기겠다고 지난달 세입자들에게 통보한 것이 발단이 됐다.

조선일보

2020년 10월 30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나인원 한남. 한채에 40억~50억원씩 하는 초고가 임대아파트인 나인원 한남(옛 미군아파트)의 분양전환 시점을 두고 종부세 부담에 최근 사업자와 임차인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김연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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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입자들은 “부동산 보유세를 전가하기 위한 꼼수”라고 반발하며 단체 행동에 나섰다. 반면 디에스한남은 “정부가 법인 임대사업자의 종합부동산세를 갑자기 대폭 인상하면서 분양을 늦추면 회사가 파산할 지경”이라고 항변하고 있다. 정부의 일관성 없고 반(反)시장적인 부동산 정책 때문에 당초 사업 계획이 예상과 달리 어그러졌고, 국민이 편을 갈라 싸우는 사태가 벌어지게 된 것이다.

◇조기 분양되면 有주택 세입자들 보유세 폭탄

나인원한남 세입자들은 최근 조기 분양에 반대하며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이다. 비대위에 따르면 전체 341가구 중 약 160가구가 동참 의사를 밝혔다.

이들이 조기 분양에 반대하는 것은 세금 때문이다. 비대위에 소속된 세입자는 대부분 집을 한 채 이상 보유하고 있다. 만약 나인원한남이 내년 상반기 중 분양되면 이들은 다(多)주택자가 돼 종합부동산세 중과(重課)를 적용받게 된다. 1주택자의 종부세는 최대 3.2%지만 서울 등 조정대상지역에 집을 두 채 이상 가진 다주택자는 종부세율이 최대 6%로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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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원한남 분양가는 평형에 따라 42억~9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세입자 대부분 분양을 받으려는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의무 임대 기간이 끝나는 2023년 11월에 맞춰 기존 주택 처분 및 자금 조달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분양 시점이 앞당겨지면 이 같은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비대위 관계자는 “본인 소유의 집을 전세 주고 나인원한남에 살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최근 임대차법 개정 후 전세 낀 집은 제값 받고 파는 게 불가능한 상태”라며 “이런 상황에서 나인원한남 소유권까지 갖게 되면 세금 폭탄을 맞게 된다”고 말했다.

디에스한남도 상황이 급하긴 마찬가지다. 올해 정부가 7·10 대책을 통해 법인의 종부세율을 ‘최고 3.2%’에서 6%로 일괄 인상하면서 내년부터 종부세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올라가기 때문이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나인원한남 전체의 보유세가 올해 450억원에 달하고 내년엔 700억원을 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금융 비용에 세금까지 겹치면서 디에스한남은 최근 2년 사이 약 20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올해 적자는 더 커질 전망이다.

디에스한남은 합의를 보기 위해 개별 세입자들과 협상을 진행 중이다. 종부세 명목으로 분양가를 좀 깎아주거나, 내년으로 분양 시점을 당기더라도 6월 이후로 잡아 내년 종부세 부담은 디에스한남 측이 지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세입자들은 두 가지 다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디에스한남 관계자는 “세입자와 회사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합의점을 찾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모두가 피해자

나인원한남 사태의 배경에는 정부의 일관성 없는 부동산 대책이 자리 잡고 있다. 당초 디에스한남은 2017년 하반기 나인원한남을 분양하려 했지만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분양가가 비싸다는 이유로 보증 발급을 거부하면서 일정이 꼬였다. 분양가 통제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임대 후 분양’이었다. 당시에도 보유세가 부담되긴 했지만 분양가를 제값으로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 방법을 선택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입주가 시작되고 8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인 지난 7월 정부는 ‘법인이 투기의 원흉’이라며 정상적인 임대 사업 법인까지 종부세를 대폭 끌어올렸다. 그러면서 한때 장려하던 등록 임대사업자 제도도 없애버렸다. 정부가 아파트 임대사업자 제도 폐지와 함께 의무 임대 기간을 채우지 않고 분양할 수 있게 하면서 디에스한남이 분양 시점 앞당기기에 나선 것이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나인원한남 사태는 정부의 일관성 없고 시장 상황을 무시한 정책이 낳은 촌극”이라며 “사업자도, 세입자도 모두 피해자”라고 말했다.

[정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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