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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이슈 미술의 세계

로비가 미술관…메세나는 코로나에도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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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서울 반포동 이수그룹 본사에 개관한 로비 미술관 `스페이스 이수`에서 관객이 호르헤 파르도, 토비아스 레베르거, 메리 코스 작품 등을 감상하고 있다. [한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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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란한 옷장에서 미세한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 문을 열자 이별 영화들이 상영중이었다. 2009년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받은 독일 작가 토비아스 레베르거의 예측불허 설치작품 'Sleeping Room Cabinet(침실 옷장)'이 의외 장소인 서울 반포동 이수그룹 본사 로비에 있었다. 회의실과 은행 지점이 있던 자리 495㎡(150평) 규모를 예술공간 '스페이스 이수(space isu)'로 바꿨기 때문이다. 김상범 이수그룹 회장의 부인 김선정 광주비엔날레 대표의 아이디어로 로비 미술관을 열게 됐다고 한다.

건축가 서승모가 철재와 유리로 분리돼 있던 로비 공간을 하나로 만든 후 이수진 홍익대 교수가 빛을 주제로 기획한 개관전 '레조넌스(resonance·공명)'가 11월 중순까지 펼쳐진다. 참여작가들은 모두 세계 미술계 주류다. 미국 작가 제임스 터렐과 메리 코스, 캐나다 출신 안젤라 블로흐를 비롯해 서도호, 쿠바 출신 호르헤 파르도 작품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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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터렐 영상 작품 Pelee(펠리),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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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빛의 마술사'로 불리는 터렐의 영상 작품 'Pelee(펠리), 2014'는 유명 미술관에서나 감상할 수 있는 규모다. 가로 2m가 넘는 대형 LED(발광다이오드) 화면에서 하늘빛과 분홍빛 등 100가지 색채 변화가 2시간 30분 동안 진행된다. 천변만화하는 빛은 어두운 공간을 부드럽게 채우며 관객의 몸과 마음까지 압도한다. 빛의 삼원색인 빨강, 초록, 파랑 원형 램프들이 붙어있는 블로흐 설치 작품 'RGB Spheres(RGB 구)'도 로비 미술관의 한 벽면을 차지하고 있다. 각기 다른 속도로 어두워졌다 밝아지는 램프들이 일제히 환해지면 흰 빛을 뿜는다.

서도호가 수십만 개 플라스틱 인형으로 만든 '청록교(Blue Green Bridge)'와 '도어매트: 웰컴(Doormat: Welcome)'은 무수한 인력이 만들어내는 파동을 떠올리게 한다. 코로나19에도 기업의 메세나(문화예술 후원)가 이 작품처럼 파동을 치며 대한민국 전체로 뻗어나가기를 기대해본다. 예술가들의 생존이 막막해진 시기에 이수화학 로비 미술관 '스페이스 이수'가 개관한 데 이어 내년 3월에는 삼성미술관 리움이 3년간 긴 침묵을 깨고 기획전을 재개할 예정이다. 지난 9월 코오롱그룹이 마곡산업단지에 개관한 미술관 '스페이스K 서울'과 더불어 미술계에 '가뭄의 단비' 같은 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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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미술관 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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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그룹이 운영하는 디뮤지엄도 연말에 한남동 미술관 시대를 끝내고 내년 상반기에 성수동 서울숲 인근에 지어놓은 더 큰 규모 미술관으로 이전할 계획이다. 톡톡 튀는 전시로 젊은이들의 성지로 자리매김한 디뮤지엄이 서울숲 시대를 열면서 대규모 전시를 준비하고 있어 내년 미술계가 모처럼 활기를 띨 것으로 기대된다.

먼저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이 공들이고 운구행렬까지 들렸던 리움은 국내 유명 디자이너를 영입해 로비를 리모델링하고 있다. 1일 미술계에 따르면 리움은 내년에 기획전과 더불어 젊은 작가를 발굴하는 '아트스펙트럼'도 재개할 것으로 보인다. 2001년부터 격년으로 한국 미술의 다양성을 보여주고 국제 무대에서 성장 가능성이 큰 젊은 작가를 발굴해왔지만 2016년 아트스펙트럼 작가상에 박경근을 선정한 뒤 올스톱 상태였다. 리움 관계자는 "내년에 기획전과 아트스펙트럼 재개를 준비하고 있지만, 아직 정확한 날짜가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2004년 개관한 리움은 독보적인 전시로 한국 미술계 중심으로 떠올랐지만 2017년 3월 홍라희 전 관장과 홍라영 전 총괄부관장이 전격 사퇴하면서 기획전을 중단하고 상설전만 열어왔다. '개점 휴업'이나 다름없던 중에 2018년 12월 이 회장의 차녀인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이 리움 발전을 논의할 '운영위원회' 초대위원장으로 위촉되면서 정상화에 대한 기대를 키워왔다. 운영위원장이라는 직함의 한계로 어머니 홍 전 관장이 리움을 진두지휘했던 것에 비하면 행보는 제한되겠지만, 삼성 오너일가의 복귀로 미술관 운영은 나름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돼 왔다. 홍 전 관장 시절 리움은 화랑들 사이에 연간 100억원 대 작품을 구매하는 초대형 컬렉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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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 이수에 설치된 알젤라 블로흐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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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스페이스 이수'는 '레조넌스'에 이어 12월 3일부터 내년 1월 30일까지 배은아 큐레이터가 기획한 전시 '궤도공명(welcome back)'을 열 예정이다. 로와정, 손현선, 써니킴, 함양아, 기 드 크왕테, 케이티 패터슨 등 작가 10여명이 자기만의 진동수를 가지고 서로 다른 궤도를 돌면서 울리는 공명의 공간을 보여주는 전시다. 내년 봄에는 한지를 활용한 공예작품들을 선보여온 권중모 작가 개인전이 기다리고 있다. 이와 더불어 젊은 작가와 기획자들에게 전시공간을 개방하는 방안도 모색 중이다.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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