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 구조 파악하는 프로그램
‘시냅스 빈센트’ 국내 첫선
CT·MRI보다 정확도 높은
‘간섬유화스캔’ 도입해 진단"
[특성화센터 탐방] 아주대병원 간센터
간은 ‘침묵의 장기’로 불린다. 간암이 발병해도 3기까지 진행하고 나서야 증상을 느낀다. 간암이 암 중에서도 사망률이 높은 이유다. 우리나라에서 간암 발생률은 전체 암 중 여섯 번째지만, 사망률은 2위다. 간암은 조기 진단 못지않게 어떤 치료법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수술 후 생존율과 삶의 질이 좌우된다. 아주대병원 간센터는 진단부터 치료, 수술 예후까지 전 과정에서 ‘환자 중심주의’를 표방한다. 간이식 및 간담도외과, 소화기내과, 영상의학과, 방사선종양학과, 병리과 의료진 18명과 연구 전문의 10여 명이 환자 중심의 진료 시스템을 갖췄다.
아주대병원 김봉완 간센터장(왼쪽 둘째)이 간암을 동반한 간경변증 환자의 간이식을 집도하고 있다. 이 센터는 700건 이상의 간이식 경험과 가상수술로 수술 시 위험도를 낮췄다. [사진 아주대병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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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기내과 교수가 복부 초음파검사
‘환자 중심주의’ 진료는 우선 검사 단계부터 적용된다. 복부 초음파검사를 영상의학과 의료진이 주도하는 여느 병원과 달리 아주대병원 간센터에서는 소화기내과 교수가 직접 한다. 1995년 개원 초창기부터 자리 잡은 이곳만의 진료 전통이다. 이 센터의 소화기내과 정재연 교수는 “소화기내과 교수가 복부 초음파검사를 직접 하면 환자 상태를 고려해 자세히 검사할 부위를 주의 깊게 들여다볼 수 있어 놓치기 쉬운 조기 간암까지 찾아낼 수 있다”며 “환자 입장에서도 자신의 상태를 가장 잘 아는 주치의가 초음파검사를 시행하는 데 대해 신뢰도와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이 센터가 2006년 간섬유화의 비침습적 진단 장비인 ‘간섬유화스캔(파이브로스캔)’을 국내에서 두 번째로 발 빠르게 도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간섬유화는 간암으로 이어질 수 있어 조기 진단이 중요한데, 과거엔 침습 방식의 조직 검사를 시행해야 해 통증과 감염 위험이 뒤따랐다. 정 교수는 “간섬유화스캔은 피부 속에 초음파를 보내고 돌아오는 데 걸리는 시간을 측정해 간섬유화를 진단한다”며 “통증·위험 없이 CT·MRI보다 더 정확하게 간섬유화를 진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간암 환자의 치료는 크게 수술(절제·이식)과 항암 치료로 나뉘는데, 특히 수술의 성패는 환자의 생사를 가른다. 수술 성공 여부는 의료진이 수술 전 환자의 ‘간 구조’와 ‘간 기능’을 얼마나 정확하게 파악했느냐에 달려 있다. 이 센터는 ‘간 구조’의 평가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시냅스 빈센트’라는 프로그램을 2016년 국내 최초로 도입했다. 이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2차원의 컴퓨터단층촬영(CT) 자료를 3차원의 입체 지도로 재구성해 수술 전 모니터상에서 의료진이 가상수술을 시연할 수 있다. 환자마다 혈관·종양의 위치가 다른데, 수술 전 시냅스 빈센트로 최상의 치료법을 찾을 수 있다. 매주 화요일 오전에 외과 의료진 10여 명이 모여 환자별 가상수술 결과를 공유한다.
또 이 센터는 세계 외과계에 없던 ‘간 기능’ 평가법을 자체 개발했다. 혈액검사, 인도시아닌 색소 주입법 등 간 기능 평가 자료를 조합해 센터만의 ‘간 기능 평가 공식’을 만든 것이다. 이 공식은 2016년 외과계의 가장 권위 있는 저널인 ‘애널스 오브 서저리’에 실렸다. 이 논문은 “개별적인 혈액검사로는 간 기능을 파악하는 데 정확도가 떨어질 수 있지만, 여러 혈액 검사를 종합하면 환자의 간 기능을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다”는 내용과 함께 세계 외과계의 주목을 받았다.
5년 새 간 절제술 후 사망한 환자 전무
환자를 중심에 둔 진료 철학은 수술법에도 녹아 있다. 이 센터는 2004년 국내 ‘복강경 간 절제술’을 선제적으로 도입했다. 복강경 간 절제술은 배를 절개하지 않는 대신 배에 뚫은 구멍 5~7개를 통해 간을 절제하는 방식이다. 당시 개복수술에서 복부를 약 35㎝(현재는 15~17㎝) 절개해야 했던 것과 비교하면 감염·출혈 위험이 적고 수술 흉터를 최소화할 수 있는 데다 입원 기간도 10~14일에서 일주일로 단축할 수 있어 환자 입장에선 반가운 일이다. 최소침습 수술 원칙으로 현재 이 센터는 간암 환자의 70% 이상, 생체 간 이식 공여자의 80% 이상을 복강경으로 안전하게 수술한다.
환자 중심주의의 진료는 치료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아주대병원 간센터의 간 절제술, 이식술의 수술 건수는 세계적인 수준이다. 우선 간 절제술의 경우 병원 개원 이후 현재까지 3000건 이상 시행했고, 최근 수년간 연 200건 이상 집도했다. 간 절제술의 3분의 2가량은 간암 환자인데, 이들의 수술 후 누적 사망률은 0.4% 미만에 불과하다. 최근 5년만 조명하면 이 기간에 간 절제술을 받은 간암 환자의 수술 후 사망률은 0%다.
이 센터는 향후 맞춤형 치료를 도입하기 위해 연구에도 주력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인체유전체자원센터 운영이다. 환자 1만 명에게서 채취한 간 조직 2500건, 혈액 자원 2만 건 등 인체 자원을 수집해 공동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환자의 혈액을 분석해 간섬유화가 진행될 때 나타나는 혈청 특정 단백을 발견한 것은 연구 성과 중 하나다.
■ “간암 치료 반응 예측 연구에 주력, 환자 맞춤형 정밀의료 실현이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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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봉완 아주대병원 간센터장
아주대병원 간센터는 전통적으로 ‘수술 잘하는 병원’으로 인정받는다. 이 센터를 이끄는 김봉완 센터장(49·사진)은 국내 간 수술 1세대인 왕희정 명예교수와 함께 이곳에서 진행한 간암 수술에 참여하며 간이식 수술법을 개선하는 등 새로운 수술법 연구에 매진해 왔다.
Q : 간이식술의 패러다임을 바꿨는데.
A : “과거엔 혈액형이 간이식의 걸림돌이었다. O형 환자는 O형 공여자에게서만 간을 받을 수 있는 식이다. 혈액형이 적합하지 않으면 급성 항체성 거부반응이 생길 수 있다. 이식돼도 간 기능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거나, 혈관이 막혀 담도 합병증 등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간이식술을 기다리다가 병세가 악화하기 일쑤였다. 우리 센터는 2007년 국내 최초로 혈액형 부적합 생체 간이식에 도전해 성공했다. 혈액형이 간이식에 ‘부적합’이어도 항체, 항체를 만드는 세포를 미리 사멸시켜 항체성 거부반응이 생기지 않게 하는 방법이다. 우리 센터는 이 방법을 발전시킨 이후 1년간 더 개선해 2009년부터 국내에서 보편화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혈액형과 관련 없이 간을 이식받는 시대를 연 것이다.”
Q : 연구가 활발한데, 향후 목표는 뭔가.
A : “아주대병원 간센터가 95년부터 쌓아온 풍부한 치료 실적을 바탕으로 조만간 논문이 국제학술지에 실릴 것으로 기대한다. 간 기능이 좋은 초기 간암 환자의 경우 간 절제·이식 가운데 어떤 치료가 좋을지 그간의 수술 결과 데이터를 바탕으로 비교 검토한 연구다. 앞서 2018년엔 국제학술지인 ‘간이식’지에 간이식 후 대표적인 합병증인 담도합병증을 장기간 추적한 결과 및 이에 대한 대비책을 실은 논문을 발표했다. 최근엔 혈액검사로 간암의 치료 반응을 예측하는 바이오마커를 발굴하는 연구에 주력한다. 향후 바이오마커를 이용해 환자마다 최적화한 치료법·치료제를 선택할 수 있는 정밀의료를 실현하는 게 목표다. 다른 병원을 따라 하지 않고, 전통을 만들어 가는 병원이라고 자부한다.”
Q : 진료 철학이 궁금하다.
A : “환자에게 좀 더 안전한 수술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수술받은 모든 환자가 건강하게 걸어나가는 게 1차 목표다. 지금까지는 수술 기법을 개발하는 데 주력해 왔다면 향후에는 분자생물학·유전적 경향 분석에 집중하려고 한다. 암의 재발과 암 환자의 생존율은 암의 특성에 달려 있다. 조기암이라도 고약한 암은 따로 있다.
암 특성에 따른 예측 연구도 진행할 예정이다. 인체유전체자원센터와의 협력으로 예측 연구에 힘을 실을 것이다. 다학제 회의도 환자 안전을 위해 실시한다. 매주 목요일 오전 8시30분에 다학제 회의를 연다. 환자에게 최상의 치료법을 결정하기 복잡할 때 간센터 내 각 진료과가 모여 진단부터 치료까지 모든 단계를 상의한다.”
정심교 기자 simk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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