겐마 히사 작 `서울 해방촌` 캔버스에 유채 97x194cm(2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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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요 미술기행-58] 서울 녹사평역에서 마을 버스를 타고 이태원 경리단길 오르는 중턱쯤에 건물이 위치해 있었다. 옥탑방을 개조한 작업실에서는 서울의 원경 및 동네 전경을 내려다 볼 수 있다. 풍경화 작가이기에 가능한 선택이다. 이처럼 작업실 탐방은 작가 및 작품을 이해하는 첫걸음이다.
2007년 일본 도쿄 자신의 모교인 무사시노 미술 대학 인근 갤러리에서 가진 첫 개인전 주제는 도시 내 풍경이다. 전시 타이틀은 '회향(懷鄕)의 풍경을 찾으며'이다. 도시 변두리에 어정쩡하게 자리 잡은 나무와 숲을 그렸다. 원래 나무와 숲이 있는 자리에 사람들이, 건물이 들어설 수도 있었다. 연필을 재료로 한 소품들이다.
풍경을 자신의 장르로 선택하게 된건 작가의 성장 과정과 직접 관련이 있다. 서양화가 겐마 히사(Gemma Hisataka)의 고향은 나가노현 스와시(諏訪市) 가미스와(上諏訪)이다.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에서 여자 주인공인 미츠하가 살던 마을인 이토모리가 스와시에 위치한 스와호(諏訪湖)를 모델로 한다. 호수를 가운데에 두고 산이 둘러싸고 있다. 초등학교 4학년까지 삼나무가 군락을 이루는 신비스럽기조차 한 산골 가미스와에 살다 스와호 주변 도심지로 거주지를 옮겨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 진학을 위해 도쿄로 터전을 옮겼다. 교사자격증 취득 공부를 포함, 6년간의 도쿄 생활을 마치면서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다. 지금은 케이팝으로 대별되는 한류가 도쿄에 불어닥쳤다. 한국 문화 전반에 걸친 성장 가능성이 보였다. 동적 문화인 공연 중심의 대중 문화가 그 확장성으로 인해 정적인 문화, 즉 시각 예술로 확대될 것으로 보았다. 대륙과 해양에 걸친 반도 문화와 한국인들의 기질도 알고 싶었다. 2011년 한국으로 유학 왔다.
겐마 히사 작 `홍도-기억의 고도` Mix media on canvas 40x53cm(20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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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혜의 산악 지방에서 성장했기에 한국에서는 산보다는 해경(海警)에 끌렸다. 바다를 끌어안고 사는 대도시 부산과 부산 사람들이 좋았다. 한국에서는 2014년 '이어지는 삶-풍경을 걷다'를 타이틀로 첫 전시를 가졌다. 부산의 전경과 해안 풍경 작품들이 주로 걸렸다. 작업의 소재가 되는 풍경은 그저 재현과 묘사의 대상이 아니다. 그가 그리는 풍경은 스스로의 삶의 흔적들이다. 그의 작품 제목은 『기억으로의 동경』, 『부산 봉래산』, 『제주도 성산일출봉』, 『제주도 우도』 등이다. 그는 실재하는 장소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자신의 추억 속 모티브들을 결합하여 작품을 완성시킨다.
겐마 히사의 풍경은 소품이 많다. 집중력과 밀도가 높다. 붓터치는 수묵을 바탕으로 한 남도풍도 보인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화풍이 비슷하지 않냐고 말한다. 한국의 서양미술은 일본에서 건너왔다. 식민지 시대에도 많은 이들이 일본에 건너가 배웠고, 이들이 귀국해 가르쳤고, 작품 활동을 했다.
중간 크기의 작품들은 구상과 비구상이 병존한다. 그는 한 작품에서 구상과 비구상이 조화를 이루기 힘들다는 것을 잘 안다. 실제 이미지와 추상 이미지를 같은 화면에 표현할 때는 서로 다른 형태 사이의 긴장감과 힘에 대한 조율을 중요하게 여긴다. 겐마 히사는 본래부터 인간의 내면적인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길 좋아했다. 본질은 인간의 내면이다. 눈에 보이는 형상은 본질을 표현하기 위해 빌려왔을 뿐이다. 구상과 비구상은 어떤게 먼저인지 구분의 의미가 없다.
겐마 히사 작 `백도-바다의 궤적` Mix media on canvas 40x53cm(20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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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경남 거제 '갤러리 거제'에서의 '심경(心憬)의 풍경(風景)'전을 열었다. 작품들은 화선지 위에 아크릴 작업이다. 제주도 바닷가의 파도가 튀듯 비구상을 넘어 추상으로 넘어가기 전 단계의 작품들로 보였다. 작가가 바다와 섬을 여행하며 키워왔던 심상(心象) 안에서 다양한 형태로 커지고 축소되어 변주되며 창작의 모티프를 발화시킨 작품들이다.
겐마 히사는 동양 전통 수묵화에 기반한 현대 작가들의 작품을 좋아한다. 중국계 프랑스 작가 자오우키(Zao Wou-Ki, 1920~2013)의 수묵 산수 추상이 좋은 예이다. 재료적인 것은 서양에 기반하지만 감성의 바탕에 있는 동양의 사유와 정신성을 좋아한다.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작가인 샘 프란시스(Sam Francis, 1923~1994)는 여백을 화면 구성에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그의 풍경 작업은 현장에서의 사생(寫生)을 원칙으로 한다. 대상을 미리 정해진 장소에서 스케치한 것을 작업실에 가지고 와서 채색한다. 현장에서 수묵이나 연필, 유화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기도 한다.
많은 섬들을 돌아다녔다. 섬 근처 바위에 캔버스를 이젤 삼아 테이프로 고정시키고 작업하기도 한다. 야외 작업 위주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계절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작업하기 좋은 장소를 물색하는 과정은 힘들지만 작업의 일부로 즐겁게 받아들인다. 몸으로 체험한 감정들이 그림을 그릴 때 붓질이라든가 색으로 표출된다. 현장에서의 바람, 습도의 느낌도 작품에 구현된다. 그는 회화와 더불어 영상 작업도 병행한다. 거문도의 경우 육지에서 보는 각도, 섬 내해(內海)에서 보는 각도에 따라 바람과 햇볕, 풍경이 다르다.
그의 동양화에 대한 관심은 문자와 기호를 소재로 한 추상으로 옮겨가고 있다. 서양에는 문자와 기호 추상이 없다. 관심 갖는 작가는 동양화가 김호득이다. 그림에 '산산산 나무나무나무 물물물'이라는 글씨로 산과 나무와 물을 채우거나, 글자를 반대 방향으로 쓴 <거꾸로-미음> 등의 작품도 있다. 한글을 조형화해서 그 자체로 실존감을 드러낸다. 겐마 히사는 작가이면서도 미술학도로서의 자세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작가로 살아가기가 만만치 않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그는 여느 한국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작품을 팔아 생활한다. 일주일에 사흘 이상을 서울의 일본 미술대학 입시학원 강사로 나선다. 코로나19로 인해 학생들의 일본 유학이 중단되었다. 학원에 나갈 일도 많지 않아 더욱 작업에 열중한다.
[심정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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