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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1 (금)

이슈 끝나지 않은 신분제의 유습 '갑질'

코로나에 학습지업체 갑질까지… 태블릿PC 강매당하는 방문교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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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지업체 ‘갑질’에 이중고

비대면 수업 위한 학습 도구 필요

업체, 처음엔 빌려줬다 반납 요구

“없으면 수업 못해” 결국 사비 구매

재계약 등 우려에 ‘울며 겨자먹기’

“학습지 업체서 판매 수익 가져가”

업체 “구매는 선택… 강요 안 했다”

“특수고용직 신분 맹점 악용” 지적

세계일보

서울 중구 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 마련된 긴급고용안정지원금 상담 창구에서 시민들이 상담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태블릿PC를 빌려줬다가 반납하게 하고 교사들 사비로 사라고 하니 화가 나죠.”

대교 눈높이 교사로 일하는 A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초기 비대면 학습관리를 위해 회사에서 대여받은 태블릿PC를 최근 반납했다. 대신 그는 ‘울며 겨자 먹기’로 회사를 통해 24개월 할부로 새 태블릿PC를 샀다.

A씨는 “회사에서 지정한 태블릿PC가 없으면 진행할 수 없는 수업이 있어 어쩔 수 없이 사게 됐다”며 “남은 계약기간보다 할부기간이 훨씬 긴데 재계약이 되지 않으면 일도 못하고 기기값만 내게 될 수도 있다”고 토로했다.

학습지교사들이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수업 등을 진행하기 위해 고가의 태블릿PC를 반강제로 구매해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학습지교사들은 코로나19 확산으로 대면 수업이 어려워지면서 학생이 줄고, 이미 받은 회비를 환불해 주는 등 경제적 타격을 입은 상황에서 태블릿PC 구매로 생활고가 가중되고 있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학습지교사들은 전국 1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들은 학습지 회사와 계약을 맺고 자신이 맡은 과목 수에 따라 회비의 일정 부분을 수수료로 받는 특수고용직 노동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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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이들의 월평균 소득은 152만6000원으로, 절반 이상(55.9%)의 월소득이 100만원에서 200만원 사이였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2일 발표한 긴급고용안정지원금(긴급지원금) 수급자 통계 분석 결과를 살펴보면 학습지교사 약 2만3000명이 긴급지원금을 신청했다. 긴급지원금을 받은 학습지교사 2만여명의 30.4%는 소득 하위 20%에 속했고, 이들의 월평균 소득은 49.1% 줄어들었다. 이들의 생활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수치다.

이런 상황에서 학습지교사들은 고가의 태블릿PC와 이에 따른 통신비까지 사비로 부담해야 하는 처지다.

교원구몬 교사로 일하고 있는 B씨는 “비대면 수업을 하려면 태블릿PC를 자기 돈을 내고 사야 하고, 회원들에게 태블릿PC를 사도록 영업도 해야 한다”면서 “회사는 태블릿PC로 판매수익을 올리지만 교사들 월급은 줄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구몬 교사 C씨는 “회사에서는 회원 집에서 와이파이가 되니 통신비를 (별도로) 지급할 필요가 없다고 하지만, 교사 입장에서는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알려 달라고 하기 어려울 때도 있고 그런 문제로 마찰을 겪기도 한다”고 말했다.

눈높이 교사 D씨는 “새로운 제품이 출시되면서 기존 비대면수업을 할 때 쓰던 태블릿PC와는 다른 태블릿PC가 필요하니 사라고 한다”며 “중간 관리자와 이런 문제로 부딪히면 재계약이 안 되는 등 여러 불이익이 돌아오니 살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억울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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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전주 시내 한 가정에서 초등학교 3학년생이 태블릿 PC로 수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학습지 업체들은 태블릿PC 판매로 회사가 얻는 이익은 전혀 없으며 구매는 어디까지나 선택사항이라는 입장이다.

대교 관계자는 “태블릿PC를 의무적으로 사게 한 적이 없고, 특정 제품을 관리할 시 태블릿PC를 활용한 제품임을 안내했다”며 “올해 초에는 코로나19로 방문학습이 어려워져 한시적으로 태블릿PC를 대여해 줬던 것으로, 태블릿PC가 필요한 제품과는 별개”라고 말했다.

교원구몬 관계자는 “태블릿PC를 활용하는 제품의 회원관리 애플리케이션은 자사 태블릿PC가 아닌 개인 스마트폰 등에서도 사용 가능하다”면서 “태블릿PC 구매를 희망하는 교사들이 정상가보다 38.3% 할인된 금액으로 구입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교사들이 많이 사면 회사 부담이 커지는 구조다. 회사가 손실을 보면서까지 구매를 강요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학습지업체에서 태블릿PC를 대여하거나 제공해야 할 법적 의무는 없다. 학습지교사가 특정업체의 업무를 수행함에도 근로계약을 맺는 대신 사업자등록을 한 특수고용직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맹점이라는 지적이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은 “근본적으로는 회사에서 학습지교사들을 근로자로 인정하지 않기 위해 태블릿PC를 대여나 지급해 주지 않는 것”이라며 “아무리 특수고용직이라고 해도 학습지교사들이 회사의 핵심업무를 하기 위해 고가의 장비(태블릿PC)가 있어야 한다는 점과 최근 소득이 급감하는 상황을 고려해 최소한 대여라도 해주는 등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유지혜 기자 kee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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