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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이슈 정치권 보수 진영 통합

"저출산 대책에 돈 많이 썼다고?…천만에, 밀린 숙제 조금 했을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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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담 = 채수환 정치부장

매일경제

헌정 사상 첫 여성 국회부의장이 된 김상희 부의장이 인터뷰하며 국회 운영과 여성 정책 등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김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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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인권을 외치던 시민운동가에서 국회의원으로 변신한 지 12년. 이제 그는 헌정 사상 첫 여성 국회 부의장으로 한국 여성사를 새롭게 쓰고 있다. 김상희 국회 부의장(66·더불어민주당)은 "국회에 여성 부의장이 탄생했다는 것 자체가 커다란 변화이자 개혁"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면서 야당과 소통하는 적극적인 부의장상을 정립해보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야당 부의장이 공석이라는 이유로 인터뷰를 고사하던 김 부의장이 최근 매일경제신문과 만나 21대 야당과 협치, 부의장의 역할, 여성 관련 입법 등에 대한 구상을 밝혔다.

―헌정 사상 첫 여성 부의장인데 여성의 사회 진출 변화를 실감하나.

▷각계각층에서 예전에 비해 여성의 진출이 두드러지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 사회를 주도하는 중심은 남성이다. 국회를 봐도 알 수 있다. 많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여성 의원 비율 19%밖에 되지 않는다.

―여성 정책은 여야가 단일 목소리를 낼 수 있는데.

▷17대 때는 전근대적인 여성 이슈들이 있어서 보수나 진보나 입법에 차별성이 없었다. 엄청나게 봉건적인 가족법도 있었다. 당시 여야를 넘나들면서 연대하고 보수와 진보가 함께할 수 있는 여성 의제가 많았다. 지금은 시대가 바뀌면서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 양상이나 인권과 관련된 의제도 변화해 여야가 경쟁적으로 입법하고 있다. 또 여성들의 정치 진출과 관련해 여성 할당이나 비례대표 확대에 대해선 보수나 진보나 큰 차이 없이 반대하더라. 여성 인권, 폭력 문제는 여야가 연대해서 논의할 만한 사항이라고 본다.

―야당 몫 국회 부의장이 공석이다.

▷의장단은 헌법기구다. 헌법에 명백하게 국회의장 한 명, 부의장 두 명을 선출하도록 돼 있다. 지금 야당이 어떤 이유에서든 공백을 두는 것은 고의적으로 헌법을 위반하고 있는 것이다. 기약이 없지만 계속 기다리고 나름대로 얘기도 하고 있다.

―국회 부의장도 초당적 관점에서 당적을 버리는 것은 어떤가.

▷국회 부의장이 두 명인 이유는 국회의장 권한을 대행하는 것도 있지만 여야 균형을 맞춰 협치와 소통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국이) 꽉 막혀 있을 때 부의장이 여야 지도부가 계속 소통하게 만들고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의장은 당적을 갖고 있지 않지만 부의장은 당적을 갖고 있기 때문에 당과 긴밀히 소통하고 공유하면서 대화하기 수월하다. 국회에서 소통과 협치, 상생이 가능하도록 부의장들이 여러 방안을 생각할 수 있는데 상대방이 없어서 안타깝다. 연말 이전에 전환점이 있으면 좋겠다.

―낙태죄는 여성계가 완전 폐지를 요구한다.

▷형법에 낙태죄를 두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결국 제일 중요한 것은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재생산 건강권이다. 형법에서 이래라저래라 할 일이 아니다. 태아 생명권으로 접근해도 문제 해결이 어려워진다. 주수가 높은 아이를 낙태하면 산모에게도 엄청난 위험이다. 이를 모두 고려해 산모가 신중하게 결정하도록 하고 어떤 결정이든 존중해야 한다. 낙태하든, 아이를 낳든 우리 사회에서 산모와 아이가 건강하게 출산하고 잘 자랄 수 있도록 지원해줘야 한다. 다행히 국회에서 활발하게 관련 법안이 나오고 있다.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 예산도 많이 썼는데 큰 변화는 없다.

▷돈 많이 썼다고 말하는 것을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국가가 젊은 사람들에게 염치가 없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니까 밀린 숙제 하듯 보육에 투자하느라 돈이 많이 들어갔다. 너무 늦게 출발했다. 차곡차곡 투자했어야 했는데 지금도 전적으로 부족한 단계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까지 졸업해서 자아실현 욕구가 강한 여성들이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엄청난 결단이다. 낳아도 맡길 데가 없다. 육아휴직이 끝나고 복직하지 못하고 퇴사하는 사례가 태반이다. 주택·교육 문제도 심각하다.

―여성가족부는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보나.

▷노동, 가정, 보육 등 여성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해선 모든 부처가 힘써야 한다. 여가부가 담당하는 업무는 한정돼 있기 때문에 여성들 삶에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사회적으로 갈등적인 이슈만 여가부 업무가 되다 보니 여가부가 공격도 많이 받고 실질적으로 여성 삶의 질을 높이는 의제를 주도하지 못한다. 여성들이 직장에서 차별 없이 일하며 아이를 낳고도 직장을 잘 다녀야 한다. 이런 것들은 주로 보건복지부와 고용노동부 소관인데 성인지 관점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유럽에서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뿐 아니라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 등 젊은 여성 정치인들이 활약하고 있다.

▷유럽의 오랜 정당정치 발전이 현재 여성들 참여가 두드러진 배경이라고 생각한다. 서유럽 국가들은 오래전부터 의원 여성 할당제도를 도입해 대부분 전체 의석 중 40%를 넘는다. 정당정치가 발전했음에도 그런 토양에서 여성이 더 적극적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과 배려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유럽 정당에서 배울 점은.

▷예전에 노르웨이에 갔더니 어렸을 때부터 정치를 익숙하게 접하더라. 우리는 정당들마다 청년이라고 영입해서 그냥 청년 공천을 한다. 그런 방식으로는 사실 청년도 그렇고, 여성도 그렇고 정치적 자원으로 성장하기 어렵다. 10대 때부터 정당정치를 직접 배우고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부의장 임기 동안 원칙이나 목표는.

▷여성 최초 부의장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회 개혁이다. 여성 국회 부의장 탄생 자체가 개혁적 흐름이다. 그다음은 성평등 국회를 만들고 싶다. 곧 태스크포스(TF)도 출범시킬 것이다. 국회에 여성 의원 참여도 대폭 늘어나고 성차별이나 인권 문제 등이 발생할 수 있지만 국회 사무처에 상담원은 한 명뿐이다. 국회 내 성차별, 성폭력, 갑질, 불합리한 관행 등을 개선할 수 있도록 하겠다.

―정치에 입문하는 후배 여성 정치인들에게 선배로서 충고를 한다면.

▷정치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가장 좋은 무기이자 수단이다. 비전을 가졌으면 좋겠다. 내가 원하는 세상에 대한 비전과 자기 철학이 굳건해야 정치를 바르게 하고 지속적으로 하게 된다. 또 국회의원이 됐다고 하는 것은 국민이 무거운 책임을 지워준 것이니까 힘을 잘 행사해야 한다. 특히 여성이라서 선택받은 의원들이 많다. 비례대표 중 여성을 50% 공천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성을 대표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사명을 부여받은 것이다. 여성들 지위와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 故이희호여사 가장 존경…첫 '여성 광역단체장' 탄생 기대


매일경제

지난 6월 취임한 김상희 국회부의장의 첫 번째 일정은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인 고(故) 이희호 여사의 묘소를 참배한 것이었다. 김 부의장은 국내 1세대 여성운동가로서 여권 신장에 큰 족적을 남긴 이희호 여사를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는다. 김 부의장 자신도 1983년 국내 최초 진보 여성운동단체 여성평우회를 조직하고 여성민우회 상임대표를 역임하는 등 30여 년간 여성운동을 해왔다. 김 부의장은 젊은 시절을 회고하며 아이 낳을 엄두가 안 나 결혼을 망설였다고 술회했다. "친정 부모님이 아이를 키워주셨기 때문에 활동이 가능했다. 지금은 며느리를 보면서 요즘 젊은 사람들이 아이를 낳고 키우고 일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여성운동계 원로이고, 4선 국회의원이지만 현실에서는 그도 평범한 시어머니로 돌아간다. "며느리가 손주를 낳고 육아휴직 중인데 복직하기 어려울 듯해서 고민하고 있다."

내년 4월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재보선을 앞둔 가운데 그는 여성 최초 광역단체장 배출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지금까지 지방선거에서 여성 광역단체장이 한 번도 배출된 적 없었다. 광역단체장도 얼마든지 여성들이 잘해낼 수 있다." 민주당에서는 과거 한명숙 전 국무총리,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이 서울시장에 도전해 고배를 마신 바 있고, 이번 선거에서는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출마설이 나온다. 김 부의장은 최초의 여성 국회 부의장이라는 이정표에 그치지 않고 개혁 성과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여성이 국회 리더십으로 서니까 국회가 바뀌었다고 하는 체감을 줬으면 좋겠다. 국회 개혁에 역할을 하고, 정치권에서 여성이 주류가 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선 휴머니즘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는 "북한 인권 문제를 정치적 협상이나 압박용으로 삼는 것은 피해야 한다"면서 "인권 개선을 위해선 민간 교류가 중요하고 정부가 이를 지원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또 과거 평양과 금강산을 방문했을 때 경험을 언급하며 "북한 여성들과 얘기해보면 말이 잘 통했다"고 전했다.

▶▶She is…

△1954년 충남 공주 출생 △공주사대부고, 이화여대 제약학과 △1987년 여성환경연대 대표 △2005년 여성민우회 상임대표 △2006년 대통령자문 지속가능발전위원장 △2008년 통합민주당 최고위원 △18·19·20·21대 국회의원(경기 부천병) △2020년 6월~현재 21대 국회 전반기 부의장

[정리 = 박만원 기자 / 최예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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