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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8 (목)

    이슈 텔레그램 n번방 사건

    [연합시론] '박사방' 일당 판결, 유사 범죄에 경종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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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연합뉴스) 한동안 우리 사회를 충격과 분노에 빠트렸던 이른바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4)이 징역 40년을 선고받는 등 가담자 전원이 중형에 처해졌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이현우 부장판사)는 26일 미성년자 대상 성착취 영상을 제작하고 유포해 아동청소년보호법 위반과 범죄단체조직 등 혐의로 기소된 조씨와 공범 5명의 혐의 대부분을 인정해 전원 유죄로 판결했다. 조씨에 대해서는 징역 40년과 함께 신상정보 공개·고지 10년, 취업제한 10년,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 30년, 1억여 원 추징 등을 명령했고 나머지 피고인들에게도 최대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이들의 악랄한 범행으로 영혼까지 파괴된 피해자들에게는 아무리 무거운 형벌도 위로가 될 수 없겠지만, 최근 웬만한 흉악 살인범에게도 징역 30년 이하의 형이 내려지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생각하면 '박사방' 일당에 대한 판결은 이 같은 범죄를 엄단하겠다는 사법부의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조씨는 지난해 5월부터 올해 2월까지 아동·청소년을 포함한 여성 피해자 수십 명을 협박해 성 착취 영상물을 촬영하고 인터넷 메신저 텔레그램 '박사방'을 통해 판매·유포한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조씨에 대해 "다양한 방법으로 다수의 피해자를 유인·협박해 성 착취물을 제작하고 오랜 기간 여러 사람에게 유포했다"며 "특히 많은 피해자의 신상을 공개해 복구 불가능한 피해를 줬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부분은 범죄단체조직·가입·활동 혐의가 유죄로 인정된 것이다. 조씨와 공범들은 일부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박사방'은 범죄집단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박사방 조직은 피고인 조주빈과 공범이 아동·청소년 등을 협박해 성 착취물을 제작하고 배포한다는 사실을 인식한 구성원들이 오로지 그 범행을 목적으로만 구성·가담한 조직"이라고 판시했다. 물론 이들의 조직 체계와 활동 양상은 기존의 범죄조직과는 여러모로 다르지만, 재판부는 "구성원들이 각자에게 부여된 역할을 수행했으며, 여러 텔레그램 방에서 대부분 유사한 역할과 지위를 유지했던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박사방 조직은 범죄집단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박사방' 이외에도 성착취 영상물을 제작, 유포하는 집단이 적지 않다. 이들은 나름의 조직 체계를 갖추고 있으나 익명으로 활동하는 데다 해외에 서버를 둔 메신저 프로그램을 사용하기 때문에 수사기관이 추적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박사방'을 범죄집단으로 인정한 1심의 판결이 확정된다면 앞으로 법집행 당국은 날로 고도화되는 디지털 성범죄를 척결하는 데 유용한 수단을 확보하게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제작 범죄의 법정형은 징역 5년 이상 무기징역 이하지만, 폭이 넓고 양형 기준이 없다 보니 선고 형량이 재판부에 따라 들쑥날쑥하다는 평이 많았다. 그나마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최근 새로 마련한 양형 기준을 적용하더라도 최대 징역 29년 3개월에 불과하다. 이에 비해 범죄단체조직은 최고 사형까지 선고할 수 있는 중범죄다. 특히 이 같은 영상물의 제작, 유포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않은 단순 가담자들의 경우에도 범죄단체조직죄를 적용한다면 더욱 무겁게 처벌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독버섯처럼 번지는 성착취 영상물 범죄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다른 차원의 적극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일부 국회의원이 입법을 추진 중인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잠입수사 허용 방안을 예로 들 수 있다.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갈등 와중에 거론돼 정치적 논란을 야기했던 '휴대전화 비밀번호 강제 공개' 방안도 아동·청소년 대상 성착취물 범죄에 적용하는 것은 검토할 만하다고 본다. 이날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가 지적한 대로 "잡히지도, 처벌받지도 않는다"는 조주빈의 말은 틀린 것이 됐다. '제2의 조주빈', '제3의 조주빈'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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