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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검댕 투성이 현대차 비정규직 얼굴, 그 뒷이야기를 풀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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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기자(ama@pressian.com)]
지난 12일, 마스크를 쓰고 일했는데도 검은 분진으로 뒤덮인 현대자동차 전주공장 하청 비정규직의 얼굴 사진이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들이 월 200만 원가량의 기본급을 받고 일하고 있다는 사실과 제대로 된 안전장비 지급 및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19일에는 현대차 울산공장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가 움직이는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제대로 된 안전장비 없이 나무판 한 장을 깔고 일하는 모습이 찍힌 사진이 보도됐다. 이들 역시 월 200만 원가량의 기본급을 받고 일하고 있다. 제대로 된 안전장비 지급 및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싸움도 준비하고 있다.

현대차는 2019년에만 105조 원 가량의 매출을 올리고 3조 2700억 원의 순이익을 남긴 기업이다. 그런데 왜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는 제대로 된 안전장비가 지급되지 않는 걸까. 이들이 저임금 상황에 놓인 이유는 또 뭘까. 현대차 하청 노동자를 찍은 두 장의 사진 뒤에 있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프레시안>이 현대차 전주공장과 울산공장 노동자를 만났다.

박준수 씨(가명)는 현대차 전주공장의 보전업무(공장 설비를 유지하고 보수하는 일) 하청 노동자다. 2018년 7월 호우테크(호우)라는 업체에서 일을 시작했다. 2020년 1월부터는 마스타씨스템이라는 업체로 소속이 바뀌었다.

박 씨가 입사하기 전 현대차 전주공장의 보전업무는 전주공장 안에 사무실을 둔 '사내' 하청업체 승원기업(승원)이 맡고 있었다. 승원은 2018년 3월 폐업했다. 승원에서 일하던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현대차 불법파견 대법원 판결'에 따라 2017년 정규직이 되면서였다.

보전 하청 노동자가 정규직이 됐다고 보전업무가 정규직 담당 업무로 바뀐 건 아니었다. 현대차는 보전업무를 전주공장 밖에 사무실을 두고 있는 '사외' 하청업체 호우에 도급했다. 승원에서 일하다 정규직이 된 노동자들은 기존 정규직의 퇴직 등에 따라 생긴 빈자리로 옮겨갔다.

현재 박 씨는 2017년 이전 승원 노동자들이 하던 보전업무를 하고 있다. 단, 박 씨와 같은 보전 하청 노동자의 상황은 승원 때보다 나빠졌다. 현대차가 호우에 보전업무를 도급하며, 불법파견의 성격이 있는 몇 가지 외형을 바꾸려 한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프레시안

▲ 분진을 치우는 일을 하며 마스크를 썼는데도 얼굴이 시커메진 현대차 전주공장 비정규직 노동자와 안쪽에 분진이 묻어있는 마스크. ⓒ현대자동차 현장제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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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증을 방문증으로 바꾸고 임금도 저하

현대차는 먼저 하청 호우 노동자를 '완전한 외부인'으로 취급했다. 기존 승원 노동자에게는 출입증이 지급됐지만 호우 노동자에게는 방문증이 지급됐다. '외부인의 설비 유출을 막는다'며 호우 노동자의 핸드폰 카메라에 '보안 스티커'가 붙기도 했다. 출퇴근 시에는 핸드폰 사진 검사가 이뤄졌다.

치사하다 싶을 만큼 '소소한' 외부인 취급도 있었다. 승원 노동자 사물함에는 '직원 이름표'가 붙어 있었지만 호우 노동자 사물함에는 '업체 이름표'가 붙었다. 승원 노동자가 쉬는 공간에는 '휴게실' 명패가 붙어 있었지만 호우 노동자가 쉬는 공간에는 '창고' 명패가 붙었다.

보전 하청 노동자의 임금과 안전장비 등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되는 변화도 있었다. 도급비 책정 기준을 '보전업무 담당 인원 수'가 아닌 '장비 대수 등에 따른 보전업무의 양'으로 바꾼 것이다. 이른바 '인(人)도급 계약'에서 '총액 계약'으로의 변화다.

이렇게 하면, 현대차는 보전 하청 노동자에 대해 불법파견 논란이 일 때 '우리는 인력을 제공받은 것이 아니라 서비스를 제공받은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를 하나 갖게 된다. 반면, 하청 노동자의 처우는 악화하기 쉽다. 총액 계약 하에서 원청인 현대차가 지급한 도급비를 실제로 어떻게 집행할지는 하청업체 마음이기 때문이다.

오민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은 "총액 계약을 하면 원래는 5명이 하던 일을 4명에게 줘도 계약상 문제가 없다"며 "하청업체는 안전비용을 삭감하거나 최소 인력만 고용하는 식으로 이익을 극대화할 유인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현 호우 노동자들은 과거 승원 노동자가 받던 성과급, 상여금, 휴가비 등을 받지 못하고 일한다. 실제 박 씨 월급은 200만 원이 되지 않는 기본급에 유류비 15만 원이 전부다. 게다가 박 씨는 "전주공장에는 고소작업에 필요한 엑스밴드 등 안전장비가 사람 수대로 구비되어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울산공장 상황도 전주공장과 마찬가지

현대차 울산공장에서도 보전업무 사내하청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이 있었던 2017년 이후 전주공장과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공장 안에 사무실을 두고 보전 업무를 맡던 '사내' 하청업체 창진에프티와 연보테크는 2017년 6월 폐업했다. 이후 현대차 울산공장 보전업무는 공장 밖에 사무실을 둔 '사외' 하청업체 (주)창진에프티와 (주)연보테크로 넘어갔고, 2018년 7월부터는 '마스타씨스템'과 '성진'이 맡고 있다.

이 과정에서도 현대차는 보전 하청 노동자에 대한 '외부인 표지'를 강화하려 애썼다. 2018년 7월 마스타씨스템이 울산공장 보전업무를 맡은 뒤 한동안 이중출입체계가 운영됐다. 원래 울산공장 보전 하청 노동자는 정문에서 한 번만 하던 출퇴근 체크를 했다. 이를 공장 밖에 있는 마스타씨스템 사무실에서 한 번, 공장 정문에서 또 한 번 체크하는 식으로 바꾼 것이었다. 노동자들이 이에 반발하자 회사는 이중출입체계를 폐지했다.

지난해 8월에는 현대차가 보전 하청 노동자 휴게실을 빼겠다고 한 일도 있었다. 외부인인 하청 노동자가 현대차 공간을 무단 점거하고 있다는 논리였다. 이 역시 보전 하청 노동자들의 저항으로 겨우 되돌렸다.

하청업체가 바뀌며 인원 수에 따른 인(人)도급 계약이 장비 대수 등에 따른 총액 계약으로 바뀐 것도 전주공장과 마찬가지였다. 울산공장 보전 하청 노동자 역시 월 200만 원이 되지 않는 기본급을 받고 일한다. 창진에프티와 연보테크 시절 보전 하청 노동자에게 지급되던 수당, 상여금, 성과급 등은 없어졌다.

프레시안

▲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컨베이어 벨트와 그 위에 나무 판 하나를 깔고 급유작업을 하고 있는 하청 노동자. ⓒ금속노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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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형 몇 가지 바꾼다고 불법파견 판결 바뀌지 않을텐데….

현대차가 전주공장과 울산공장에서 이러한 일을 벌이는 이유로는 '간접고용 유지'가 지목된다. 2012년 이래 대법원은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해 수차례 불법파견 판결을 내렸다. 이후 전과 같은 형태로는 간접고용을 유지할 수 없게 된 현대차가 하청업체 사무실 위치, 휴게실 여부, 계약 내용 등 하청 노동자와 관련해 몇 가지 외형을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의 업무는 바뀌지는 않았다. 하청업체의 사업경영 독립성이나 인사노무 독립성이 강화되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전주공장과 울산공장 하청 노동자들은 공통적으로 하청업체 관리자가 '보전업무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지 않다'고 증언했다.

지난 13일 이후 현대차 전주공장이 산업안전 문제로 근로감독을 받았을 당시 일어난 일도 하청 노동자들의 증언에 힘을 더한다. 박 씨는 "근로감독관과 현대차 직원, 하청업체 관리자가 배석했는데 근로감독관의 질문에 답하거나 자료를 찾아 제출한 것은 현대차 직원이었다"며 "하청업체 관리자는 '업체에서 일하는 직원이 몇 명이냐'는 질문에도 제대로 답을 못했다"고 전했다.

현재 현대차 울산공장과 전주공장 하청 노동자들은 불법파견 소송에 들어가 있다. 법적으로는 현대차가 하고 있는 것처럼 외형 몇 가지를 바꾸는 정도로는 불법파견 소지가 없어졌다고 보기 어렵다.

송영섭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불법파견의 본질적 요소나 업무 성격은 그대로인 상태에서 외형적인 요소를 바꾸었다고 해서 법률적으로 불법파견이 아니라는 결과가 나오지는 않을 것"이라며 "과거에도 외형적 요소를 바꾸는 것만으로는 불법파견이 아니라고 볼 수 없다는 판결이 있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전례에 비춰보면,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까지는 7, 8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해당 기간 현대차는 간접고용을 통해 인건비 삭감 등 이득을 볼 수 있다. 하청업체도 꼬박꼬박 이윤을 챙겨갈 것이다. 이 기간 소송을 제기한 현대차 보전 하청 노동자들은 현대차와 하청업체가 자신들의 고용구조를 왜곡해 이익을 보는 모습을 눈앞에서 지켜보며 판결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

[최용락 기자(ama@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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