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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트럼프와 바이든이 탐낸 도시, 클리블랜드의 '포스트 젠트리피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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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파우저 독립학자]
지난 미국 대선에서는 매우 흥미로운 변화를 볼 수 있었다. 1900년 이후 치러진 역대 선거 중 세 번을 제외하면 오하이오 주에서 승리한 후보가 막판 승리를 거머쥐었다. 2016년 도널드 트럼프 역시 오하이오 주에서 승리했고, 대통령이 되었다.

그런데 이번 대선에서 오하이오 주의 승리는 트럼프 차지였지만, 조 바이든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벌써부터 다음 대선에서 오하이오 주의 결과가 최종 승자를 가리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을 갖는 이들이 많긴 하지만, 이미 오하이오 주가 미 전역을 대표하던 오랜 시대가 끝났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오하이오 주에는 알파벳 'C'로 시작하는 세 개의 큰 도시가 있다. 동부의 클리블랜드(Cleveland), 중부의 주도인 콜럼버스(Columbus), 그리고 서남쪽에 있는 신시내티(Cincinnati)다. 교외를 포함해 세 도시의 인구만 모두 200만 명을 초월하고, 그만큼 산업 구조 역시 다양하다. 미국의 지역을 살펴보면 역사적으로 북쪽은 동부의 영향을 많이 받고, 남쪽은 남부의 영향을 많이 받아 왔는데, 19세기 전쟁을 치르던 두 지역 문화의 영향을 함께 받은 오하이오 주는 오랜 시간 미국의 가장 대표적 주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세 도시 가운데 오늘 주목할 곳은 클리블랜드다. 이곳은 도시 재생 관점에서 특히 흥미로운데, 나와의 인연은 2018년 출범한 '프런트 인터내셔널'(FRONT International)의 미술 전시로 시작했다. 이 전시는 독일 카셀(Kassel)에서 5년마다 열리는 '도큐멘타'(documenta)를 모방한 것으로, 관람객이 도시 여러 곳에 전시된 작품을 보면서 그 도시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 수 있게 하는 형식이다. 당시 <뉴욕 타임스>를 비롯해 주요 언론에서 이 전시를 소개하면서 국제 미술전과 도시 재생의 관계까지 함께 다뤘던 것으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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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 지구에 있는 프런트 인터내셔널 조각 작품. ⓒ로버트 파우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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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자 도시 중 가장 큰 클리블랜드에는 시내와 교외를 합쳐 약 280만 명의 인구가 거주하지만, 시내 인구는 39만 명 남짓이다.

1796년 등장한 이후 19세기 전반 동부 지역과 당시 한창 개척 중이던 오대호 지역을 연결하면서 그 규모가 커지더니, 1865년 남북 전쟁 이후 급속도로 성장했다. 1870년 존 D. 록펠러(1839-1937)는 이곳에 스탠더드 오일을 설립했고, 이후 다양한 중공업이 발달했다. 19세기 말부터 1920년대까지 유럽, 특히 동유럽에서 온 이민자들과 남부 흑인이 유입하면서 1920년 클리블랜드의 인구는 미국 내 5위까지 올라갔다. 20세기 초에 들어서면서부터는 부유한 도시답게, 미술관을 세우거나 관현악단 같은 공공기관을 설립, 오늘날까지도 그 명성이 대단하다. 이후 20세기 중반 들어 튼튼한 경제를 바탕으로 인구가 계속 늘어나 교외의 개발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는데, 그 당시 흑인과 이민자 차별로 교외의 개발은 주로 여유 있는 백인 중산층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1960년대로 접어들면서 미국의 많은 공업도시들이 그랬듯, 클리블랜드 역시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백인 중산층들이 새로 개발한 교외로 이동하면서 시내의 인구는 감소하기 시작했고, 상업 지구 역시 활기를 잃었다. 더 빠른 속도로 쇠퇴하고 있던 인근 오대호 지역의 디트로이트에 비해 나을 것도 없었다.

이 도시의 변화가 시작된 건 1990년 무렵부터였다. 비록 미국의 다른 도시보다 늦긴 했지만 이때부터 도시 재생이 활발해지기 시작했는데, 그 첫 걸음은 유명한 건축가 I. M. 페이(1917-2019)가 1995년 설계한 로큰롤 명예의 전당(Rock and Roll Hall of Fame) 건물이다. 이 건물을 기점으로 오랫동안 공사가 멈췄던 도심에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시 정부가 2000년대 들어 도심의 오래된 건물을 주택으로 재생하자 점차 인구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시는 문화, 교육, 의료 분야에서 명성이 있는 공공기관을 재생의 토대로 활용해왔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클리블랜드가 아닌 다른 도시에서도 이루어지는 방식이어서 차별성이 뚜렷하지 않았고, 인구 감소세와 빈곤, 범죄 등 사회적 문제 역시 쉽게 개선되지 않았다.

'프런트 인터내셔널'은 바로 이런 고민에서 비롯되었다. 미국의 다른 도시에서 시도하지 않았던, 미국판 도큐멘타를 시도함으로써 클리블랜드의 지명도를 높이는 동시에 오하이오 주 'C'자 도시 중 하나라는 평범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창의적이고, 나아가 '힙한' 도시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프런트 인터내셔널 주제는 '미국의 한 도시'(An American City)였다. 프런트 인터내셔널은 이 주제에 맞춰 클리블랜드 전역은 물론, 가까운 애크런과 오벌린까지 약 28곳에 111명 작가의 작품을 전시했다.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부터 클리블랜드의 ‘지역 작가’ 까지 다양한 이들이 전시에 참여했다. 2018년 프런트 인터내셔널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전시 공간이었다. 말끔한 공공 건물 만이 아닌, 쇠퇴한 주택가 빈 땅 또는 교인이 사라진 교회에도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런 공간을 찾아가노라면 자연스럽게 있는 그대로의 클리블랜드를 만날 수밖에 없다. 한 작가는 서민들이 주로 사는 지역의 창고 시설, 인근에 방치된 작은 교회와 갤러리 두 곳에 작품을 설치했다. 이를 다 보려면 근처 동네를 다 걸어야 한다. 자연스레 골목 구석구석을 살피게 된다. 물론 클리블랜드 미술관, 클리블랜드 현대미술관, 클리블랜드 도서관, 그리고 클리블랜드 연방준비은행 같은 권위 있는 공공 기관에도 작품은 전시되어 있었다. 사흘 동안 머물며 전시를 둘러보았는데, 오래된 도심의 동쪽부터 서쪽까지 클리블랜드를 잘 살펴본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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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런트 인터내셔널 전시장 지도. ⓒ로버트 파우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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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가 빈 땅에 있는 조각 작품. ⓒ로버트 파우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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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감상한 전시 작품 중 가장 인상적인 건 클리블랜드 작가인 조니 콜맨(Johnny Coleman)의 오디오 작품(☞작품 감상하기)이다. 흑인들이 주로 사는 동네의 오래된 교회 앞에서 그 지역에 살고 있는 노인과 인터뷰한 뒤 이를 음악과 섞은 것인데, 바로 그 교회 의자에 앉아 그 지역의 역사부터 자신이 사는 곳에 대한 주민의 마음을 듣고 있자니 무척 감동스럽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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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앞 조니 콜맨의 설치 작품. ⓒ로버트 파우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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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런트 인터내셔널은 3년에 한 번씩 열리는데, 2021년 전시가 궁금해 홈페이지를 찾으니 코로나19 때문에 2022년으로 연기한다는 공지사항이 떠 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그렇군, 생각하면서 한편으로 2022년 전시에서는 클리블랜드, 그리고 도시 그 자체에 대해 어떤 논의를 이어나갈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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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블랜드 공립도서관 설치 작품. ⓒ로버트 파우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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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도시에 비해 클리블랜드의 도시 재생은 비교적 늦게 시작한 편이어서 이미 1970~80년대 유행한 호텔이나 컨벤션 센터 등의 인프라 중심 도시 재생과는 모양이 다르다. 말하자면 1990년대 이후 오늘날까지 유행하는 문화 예술 중심의 도시 재생을 추진하고 있다.

수많은 사례를 통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도시 재생과 문화 예술 활동과의 관계는 결코 편안하지 않다. 젊은 문화 예술인들이 오래된 동네로 들어오면 조니 콜맨이 인터뷰했던, 그 동네에서 평생 살았던 주민들은 떠날 수밖에 없다. 문화 예술인들의 다양한 활약을 통해 점차 도시의 유명세가 퍼져나가면, 이번에는 바로 그 유명세의 원천인 문화 예술인들이 떠나게 된다. 바로 젠트리피케이션이다.

클리블랜드 역시 젠트리피케이션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하지만 이 도시의 도시 재생 활동은 프런트 인터내셔널처럼 문화 예술인의 정착보다 이벤트 중심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아울러 사람이 살지 않던 도심 지역에 개발한 주택가에는 처음부터 도시를 소비하려는, 젠트리피케이션을 만들어내는 젊은 화이트 칼라층이 주로 살고 있다는 점 역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즉, 클리블랜드는 젠트리피케이션이 불가피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는 도시 재생 모델이 아닌, 문화 예술 시설과 이벤트를 중심으로 삼은 '포스트 젠트리피케이션'의 모델을 선보이려 노력 중이다. 비록 다음 프런트 인터내셔널은 코로나19로 인해서 1년 연기되었지만, 2022년 만나게 될 그곳은 과연 어떤 변화를 내게 보여줄 것인가. 나는 그것이 몹시 궁금하고, 한편으로 기대가 된다.

필자 소개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를 역임하고, 지금은 미국에서 독립학자로 활동하고 있는 로버트 파우저가 <프레시안>에 '좋은 도시를 위하여'라는 연재를 진행 중이다. 그는 <미래 시민의 조건>, <서촌 홀릭>, <외국어 전파담>, <로버트 파우저의 도시탐구기> 등 인문사회 분야 베스트셀러를 쓴 작가이기도 하다. 현재는 외국어 학습에 대한 책을 집필 중이다. 편집자.

[로버트 파우저 독립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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