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0.07 (월)

"덩치 못 키우고 정부 지원 끊기면, 韓항공사들 생존 불투명"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앨런 슐트 베인앤드컴퍼니 대표 단독 인터뷰



중앙일보

글로벌 컨설팅 기업인 베인앤드컴퍼니의 아시아-태평양 항공, 물류, 운송 분야 총괄인 앨런 슐트 대표. 사진 베인앤드컴퍼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세계 항공산업은 향후 2~3년간 극심한 ‘보릿고개’를 경험할 것이다. 글로벌 수준의 '규모의 경제'를 갖추지 못하면 한국 항공산업은 경쟁에서 낙오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인 베인앤드컴퍼니의 아시아-태평양 항공ㆍ물류 및 운송 분야 총괄인 앨런 슐트 대표(사진)는 11월29일 중앙일보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태국 방콕에 주재하고 있는 그는 "백신 개발 등 긍정적 신호도 포착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진이 꽤 오래갈 것"이라며 "이 보릿고개 동안 정부 지원이 유지된다면 현재 상황에서의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양사 모두 생존은 가능하지만, 일부라도 정부 지원이 줄어들면 살아남는 것을 장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규모의 경제가 지배하는 글로벌 항공 산업 속성상 코로나19가 종식되더라도 현재 한국 항공사의 규모로는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 어느 한쪽도 글로벌 경쟁력 확보가 어려울 것"이라면서 "해운 산업과 유사하게 항공 산업도 글로벌 수준의 '규모의 경제'를 갖추지 못하면 경쟁에서 낙오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전망했다. 슐트 대표는 15년 동안 글로벌 항공사 이사회와 항공 분야 투자자에게 컨설팅해 온 항공산업 전문가다.

중앙일보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측과 경영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KCGI(강성부펀드) 주주연합 측이 대한항공 모회사인 한진칼의 산업은행 대상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막기 위해 신청한 신주발행금지 가처분과 관련한 법원의 판단이 곧 나온다. 사진은 지난달 25일 인천국제공항의 아시아나·대한항공 항공기 모습. 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Q :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 추진을 어떻게 보나.

A : "항공사 간 통합은 분명한 장점을 갖고 있다. 첫째, 노선 네트워크 측면에서 보면 비행 스케줄의 조율이 보다 효율적으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하루 중 선택 가능한 비행 탑승 시간 옵션이 늘어나고, 도시 간 연결 항공편이 늘어나는 것 등이다. 에어 프랑스와 KLM의 합병 사례를 보면 두 회사는 서로의 노선 네트워크를 공유할 수 있어 경쟁으로 인한 공급 대비 수요가 낮은 노선의 비행편을 줄였다. 이로 인해 기항이 어려웠던 새로운 도시로 진출도 가능했다. 두 번째 장점은 항공업이 기재(항공기)에 소요되는 비용이 큰 사업이란 점이다. 규모가 커지면 항공기 제조업체나 엔진 제조업체와 같은 글로벌 공급사와의 협상에서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지난 15년 사이 있었던 대부분의 항공사 통합 사례는 인수 전후의 경쟁력을 비교했을 때 모두 성공을 거뒀다. 가장 성공적이고 빠르게 통합을 이뤄낸 항공사는 세간의 우려와 달리 고객의 선호도 차원에서 가장 높은 성과를 달성했다. 미국의 델타와 노스웨스트 통합이 대표적이다."
중앙일보

지난 3월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출국장 대한항공 및 미주·유럽 항공사 체크인 카운터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제2터미널은 대한항공·델타항공·에어프랑스항공·KLM 네덜란드항공 등 4개사 전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Q : 통합으로 인한 시너지가 분명하단 의미인가.

A : "현재 베인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취항하고 있는 노선 가운데 20%가 초과 공급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평가한다. 이런 노선의 항공기와 항공편을 재편성해서 새로운 기항지를 추가한다면 항공사는 매출을 늘리고, 고객은 편리한 직항편을 이용할 수 있다. 흔히 항공사 통합은 단순히 비용 절감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항공 산업은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고, 통합을 통해 항공기 구매나 기술 플랫폼에 대한 투자 측면에서 중복 투자를 줄이고 규모의 경제를 달성할 기회가 있다는 것은 맞다. 하지만 우리 분석에 따르면 통합을 이룬 항공사는 매출이 늘어 더 높은 투자자본수익률(ROI)을 달성했다."
중앙일보

김상도 국토교통부 항공정책실장이 지난달 16일 정부세종청사 국토부에서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과 관련된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Q : 양사의 통합 리스크에 대한 우려도 크다.

A : "시장 관점에서 가장 큰 리스크는 가격 책정과 같은 반독점 행위일 것이다. 규제 당국이 시장 행위를 모니터링 할 규정을 갖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항공산업은 성격상 글로벌 경쟁이 벌어지는 사업이다. 국적기 간 경쟁뿐 아니라 외항사와의 경쟁 등 다양한 시각이 필요하다. 변치 않는 것은 항공은 경쟁이 가장 치열한 산업 중 하나라는 것이다. 한국 국내선을 보면 저가 항공사가 다수 존재하기 때문에 국내선에서도 여전히 경쟁이 심한 시장으로 남는다. 세계적으로 볼 때 비행이 빈번한 국내 노선에 취항하는 항공사는 2~3개뿐인 곳이 많다. 국제선에서도 양대 항공사가 취항하는 거의 모든 항로에 외항사가 취항하고 있다. 최근엔 외항사가 공격적으로 한국과 연결된 국제 장거리 운항을 늘리고 있다. 중·단거리 국제선 노선에서 외항사와 저가 항공사는 이미 60% 이상의 시장 점유율을 보인다. 두 항공사의 독점 운항 노선이 있지만, 극소수에 불과하다. 여기에 수요가 있고 매력적인 노선이라면, 다른 항공사가 곧 운항을 시작할 것이다. 또 2~3개 이상의 대형 항공사(FSC)가 운영되고 있는 나라는 한국 외에 일본, 중국, 미국 등 몇 개 국가뿐이다. 반면 한국은 다른 국가 대비 지리적으로나 인구 측면에서 이들 국가 중 소규모에 속한다. 이는 매우 불리한 경쟁 상황에 노출된 것을 의미한다."

Q : 한국 항공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구조란 뜻인가.

A : "한국은 오랜 시간 항공 부문에서 독특한 경쟁력을 가진 시장이었다. 북미와 중국, 동남아시아를 연결하는 주요 허브 역할을 했다. 항공 운임 비용이 낮고, 화물 용적량이 높으면서 복잡하지 않은 출입국 및 관세 정책을 지니고 있는 것이 이유다. 이점이 한국 항공사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하지만 경쟁 우위가 줄어들고 있다. 글로벌 항공 업계에선 규모가 경쟁력의 제1 지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과 일본의 항공사는 한국 항공사와 겹치는 항로에 더 많은 직항편을 제공하면서 규모의 효과로 인한 비용 우위를 점해 경쟁력을 높여 가고 있다. 중국이나 일본 항공사 대부분이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보다 규모가 크다. 일례로 일본 ANA는 지난해 기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를 합친 것보다 많은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다(KE+OZ 201대 vs. NH 233대). 지난해 영업이익 기준으로 봤을 때 수익성 측면에서도 우위다(KE 2%, OZ -6%, NH 8%). 두 항공사가 합병한다면 규모의 경제를 확보할 기회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나라의 항공사 입장에선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게 어려운 일이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



글로벌 항공산업 2023년 돼야 회복



Q : 코로나19로 항공 시장에 큰 변화가 일고 있다.

A : "현재로써는 수요 측면에서 내수 시장의 경우 2021년 후반, 아시아 역내 및 국경 간 여행은 2023년 회복할 것으로 전망한다. 미국이나 유럽으로의 장거리 여행은 2024년은 돼야 가능할 것으로 본다. 물론 최근 효과적인 백신이 나오고 있어, 이로 인해 경제 회복이 가속하는 시나리오도 예상할 수 있다. 그럴 경우 항공 수요 회복 시점은 앞서 언급한 시기 대비 6~18개월까지 당겨질 수 있다. 다만 불확실성이 많다는 부분에 있어 항공사 입장에선 보수적인 관점에서 대응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중앙일보

정부와 산업은행이 지난달 16일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공식화했다. 국내 1, 2위를 합친 '글로벌 톱 10' 통합 국적항공사 출범을 추진하는 것이다. 지난달 16일 인천국제공항 계류장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항공기들이 서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Q : 앞으로 글로벌 항공 시장 전망은.

A : "경쟁 관점에서 보면 현재 코로나19 상황은 보다 적은 수의 항공사를 중심으로 통합될 것이다. 최근 캐세이드래곤(홍콩 캐세이퍼시픽 자회사)이 영업을 중단한 것이 예다. 힘 있는 항공사가 더 강해질 것이고, 지난 몇 년간 어려움을 겪던 항공사는 다급한 어려움에 부닥칠 것이다. 지난 20년간 항공사 간 통합이 세계적으로 항공산업 내 주요 트렌드였다. 유럽이나 미국, 남미 내 주요 항공사는 각각 4~5개에 그친다. 현재 살아남은 항공사는 재무적으로 안정돼 있어 정부의 개입 필요 요소가 적다. 반면 아시아에선 빠른 성장과 보다 엄격한 국가 규제로 인해 미국이나 유럽 시장보다 통합이 훨씬 느리다. 하지만 결국 시간의 문제다. 코로나19 상황으로 아시아에서도 통합의 물결이 빠르게 닥칠 것이고, 이로 인해 지속 가능한 성장이 이루어질 전망이다."

곽재민 기자 jmkwak@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