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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기자메모]강력범죄 공포에 가려진 ‘우범자 정보수집’의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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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경향신문

경찰이 최근 범죄 우려가 있는 ‘우범자’에 대한 첩보(정보) 수집 규칙 개정안(경찰청 예규)을 잠정 확정했다(경향신문 11월30일자 1면 보도). 정보수집 대상을 ‘우범자’에서 ‘주요 강력범죄 출소자 등’으로 바꿨다. 정보수집 목적을 ‘죄를 범할 우려가 있는 사람의 재범 위험을 방지하고 수사자료로 활용한다’는 현행 조항에서 ‘재범 방지를 위한 정보를 수집함으로써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서의 복귀를 도모한다’로 개정했다. 강력범죄자의 재범을 예방하기 위해 정보수집을 유지해야 한다는 게 경찰 입장이다.

이 개정안에는 세밀하게 논의돼야 할 지점이 많다. 첫째 정보수집 대상의 광범위성이다. 대상이 되는 주요 강력범죄에는 절도라는 경범죄도 포함된다. 정보수집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질 가능성이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9월 기준 살인 등 9개 범죄 경력자 중 우범자로 규정된 사람이 1만7382명이나 된다.

둘째 인권침해 가능성이다. 우범자 구분 자체가 낙인찍기가 될 수 있다. 형을 마친 출소자에 대해 또다시 정보수집 등 일종의 수사 행위를 하는 것은 이중처벌이 될 수 있다. 경찰의 탐문 등 정보수집 과정에서 출소자의 전과 사실이 주변에 알려져 출소자의 재사회화를 더욱 어렵게 한 경우가 실제로 있었다. 이는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서의 복귀를 도모한다’는 목적에 반한다. 사생활의 자유 등 기본권을 침해하는 조치이지만 정보수집 근거가 되는 건 법률이 아닌 예규뿐이다.

셋째 우범자 정보수집 활동이 범죄 예방 효과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경찰은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 사건을 벌인 안인득에 대해 사건 발생 전 범죄첩보를 작성해 보고했지만 범행을 막지 못했다.

경찰은 4차례나 주민 신고를 받아 출동했지만 신변보호 요청 등 현장 조치가 이뤄지지 못하면서 참혹한 결과가 발생했다. 정보수집보다 적절한 현장 조치가 더 필요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법무부가 지난달 27일 입법예고한 ‘스토킹 처벌법’처럼, 경찰이 범죄 우려가 있을 경우 법원의 판단을 거쳐 접근금지·유치소 유치 등 현장 응급조치를 취할 수 있는 제도가 우선해야 하지 않을까. ‘유명’ 강력범죄자를 빌미로 우범자 정보수집에 관한 다양한 논의를 놓치는 건 아닐지 우려된다.

이보라 | 사회부 purp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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