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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가덕도 신공항 추진, 야권 분열·영남권 갈라치기 초래할까 [황용호의 一筆揮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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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신공항 백지화 파장

야권선 부산시장 보선 승리 전략 판단

여 “지역발전 위한 불가피한 조치” 항변

국민의힘 TK 의원들 “지역 여론 격앙”

정치성향·정서 따라 이질적 요소 존재

보수 지향하는 영남권 겉으로는 ‘원팀’

정치철학·노선 판이 ‘화학적 결합’ 한계

과거 인물중심 선거운동 정책공약 전환

2022년 대선 PK·TK 민심 향배 주목

세계일보

김수삼 김해신공항 검증위원장이 지난달 17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김해신공항 검증위원회의 검증 결과 발표를 마친 뒤 물을 마시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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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의 김해신공항 백지화에 따른 가덕도 신공항 추진이 야권 분열과 영남 갈라치기를 초래할까.

가덕도 신공항을 둘러싼 여야의 입장은 상반된다. 대구·경북(TK)을 고립시키고, 부산·울산·경남(PK)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 내년 부산시장 보궐선거와 차기 대선 승리를 꾀하는 여권의 전략이라는 게 야권의 시각이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은 가덕도 신공항 건설 추진은 지역발전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항변한다.

가덕도 신공항 문제는 정파를 떠나 부산 출신 의원과 내년 부산시장 보궐선거 출마예상자는 쌍수를 들어 환영한 반면 국민의힘 대구·경북 의원들은 “지역 여론이 격앙돼 있다”며 내심 부글부글 끓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국민의힘 부산과 TK 의원들은 이 문제를 놓고 외형상 이견을 나타낸다.

국민의힘 부산 지역 의원 15명 전원은 지난달 17일 총리실 산하 김해신공항 검증위원회의 재검토 결론 발표 후 사흘 만에 가덕도 신공항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해 신속한 공항 건설을 추진하는 내용의 특별법안을 당 지도부와 상의 없이 국회에 공동 발의했다. 의원 136명 명의로 지난달 26일 ‘가덕도 신공항 건설 촉진특별법’을 발의한 민주당에 ‘선수’를 친 셈이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가덕도 신공항에 긍정적이다. 대구 출신 주호영 원내대표가 “절차를 점검해야 한다”며 감사원에 감사를 청구하겠다고 나선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처럼 가덕도 신공항 추진을 놓고 국민의힘 당 지도부와 TK, 부산 의원들이 엇박자를 내는 것은 부산시장 보궐선거와 지역 정서를 고려해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호남, 충청과 달리 많은 인구와 넓은 면적으로 PK와 TK로 분화된 영남은 정치성향과 정서에서 동질성과 함께 이질적인 요소도 존재한다고 봐야 한다.

◆3당 합당 후 ‘우리가 남이가’

1990년 2월, 민주정의당(민정당) 통일민주당(민주당) 신민주공화당(공화당) 3당 합당으로 출범한 민주자유당(민자당) 당명 아래 보수를 지향하는 영남권은 겉으론 ‘원팀’을 이뤘다.

그전에는 TK를 기반으로 하는 박정희 대통령의 민주공화당, 전두환 대통령에 이어 노태우 대통령이 이끄는 민정당과 부산을 거점으로 민주화 운동 세력인 김영삼(YS) 총재가 주도하는 통일민주당은 여야로 갈렸다. 양측은 1960~90년 30년간 대립 구도를 형성했다. 군 출신 대통령과 군사정권에 저항한 YS의 정치적 DNA는 본질적으로 달랐다. 그런 YS는 집권을 위해 1987년 13대 대선에서 자신의 경쟁 상대였던 노태우 대통령, 김종필(JP) 공화당 총재와 보수대연합을 하는 모험을 감행했고, 그 전략은 성공했다. 그러나 정치철학과 노선이 판이한 이들은 ‘한 지붕 세 가족’ 형태를 드러내는 등 화학적 결합을 이루지 못하는 한계를 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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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류는 3당 합당 후 보수의 본거지인 대구 지역의 선거 결과에서 나타났다.

1992년 14대 대선에 출마한 민자당 YS 후보의 대구 지역 득표율은 59.59%로 13대 대선 때 이 지역에서 얻은 24.28%보다 35.31%포인트의 지지를 더 받았다. 이는 1987년 13대 대선 때 대구에서 70.69%를 획득한 TK 출신 노태우 후보와 1997년 15대 대선 때 대구에서 72.65%의 압도적 지지를 받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비교하면 YS의 지지에 한계가 있음을 의미한다.

평생 야당 투사로 살아온 YS에게 쉽게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던 대구 유권자들은 ‘우리가 남이가’라는 지역감정 자극 발언 등으로 막판에 YS의 지지로 돌아섰다.

◆15대 총선 때 부산, 대구 한 차례 등 돌려

1981년 중선거구였던 11대 총선에서 부산 지역은 12석 중 여당인 민정당 6석, 야당인 민주한국당(민한당) 5석, 민권당 1석으로 여야 의석이 비슷했다. YS와 DJ(김대중 총재)의 쌍두마차로 신민당 돌풍을 일으킨 1985년 12대 총선에서 부산 지역 성적은 12석 중 민정당은 3석에 불과했고, 신한민주당(신민당) 6석, 민주한국당 2석, 한국국민당 1석이었다. 이곳 유권자의 야성을 읽을 수 있다.

1987년 13대 대선에 출마한 통일민주당 김영삼 후보의 부산 지역 득표율은 55.98%로 32.10%를 얻은 민정당 노태우 후보를 크게 앞질렀다.

이듬해 소선거구제가 도입된 13대 총선에서 통일민주당은 부산 15석 중 14석을 석권할 정도로 YS의 바람은 거셌다.

그러나 3당 합당 후 치러진 1992년 14대 총선에서 부산은 YS가 몸담은 여당인 민자당이 16석 중 15석을 획득하며 4년 전과 정반대 현상이 벌어졌다.

15,16대 총선에서 민자당 후신인 신한국당과 한나라당 후보는 부산에서 한 명도 예외 없이 전원 당선됐다. 부산시장 선거도 마찬가지였다.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부터 2014년 제6회 지방선거에 이르기까지 진보진영 후보가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대구 역시 13대 총선에서 민정당이 8석 전원을 당선시킬 정도로 보수정당의 본령을 자처했다. 그러나 YS 정권에서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구속, TK 출신 공직자들의 퇴출로 대구에서는 ‘TK홀대론’이 일었다. 이런 기류는 1996년 15대 총선에서 반(反)YS정서로 표출됐고, YS의 신한국당은 대구 13석 중 2석에 불과했고, 자민련 8석, 무소속 3석 순이었다. 이는 15대 총선 때 부산에서 신한국당의 21석 싹쓸이와 대조되며, 3당 합당 후 부산, 대구 지역민이 선거에서 등을 돌린 첫 케이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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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가덕도 전경. 세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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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공약으로 영남 갈라치기 가능할까

1992년 14대 대선에서 부산(73.34%)과 경남(72.31%)지역의 전폭적인 지지로 당선된 YS는 40여년간 PK의 맹주였다. 부산에서 4선 국회의원을 지낸 유흥수 전 주일대사는 1일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YS가 부산에서 오랫동안 지지를 받은 배경에 대해 “YS가 대통령이 되는 것은 그 자신뿐 아니라 부산 시민들의 열망이었고, YS와 라이벌인 DJ를 이겨야 한다는 정서도 작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YS가 야당 총재로서 독재정권과 맞서 민주화운동을 할 때 부산 시민들은 그에게 표를 몰아주며 힘을 실어 주었고, 3당 합당으로 여당의 유력 대선후보로 변신한 후에도 변함없는 성원을 보냈다. 이런 정서는 14대 총선 이후 PK지역의 각종 선거에서 몇몇 지역을 제외하곤 보수진영의 독무대로 이어졌다. 그러나 PK 출신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의 배출을 계기로 이곳에 조금씩 변화의 조짐이 나타났다.

노 대통령 집권 후 실시한 2004년 17대 총선 때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부산에서 1석, 노 대통령의 고향인 경남 김해에서 2석을 확보했다.

18대 총선에서도 열린우리당 후신인 통합민주당이 부산과 경남에서 각각 1석을, 19대 총선에서는 통합민주당 맥을 이은 민주통합당이 부산 2석, 경남 1석을 차지했다.

2016년 실시된 20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을 계승한 더불어민주당은 부산에서 5석, 경남에서 3석을 수확하는 ‘이변’을 일으켰다. 문 대통령 집권 후 2018년에 치러진 제7회 지방선거에서는 민주당이 부산, 울산, 경남의 세 곳 광역단체장을 싹쓸이하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지난 4월 실시한 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부산과 경남에서 각각 3석을 거뒀다.

YS 시대 이후 진보와 보수진영은 선거 때 PK 민심을 사로잡기 위해 지역발전 사업 등을 내세워 쟁탈전을 벌이는 형국이다. 선거운동 양상이 인물 중심에서 정책공약으로 전환된 것이다.

노무현(2002년), 이명박(2007년), 박근혜(2012년), 문재인(2012년) 대통령 후보는 표현을 달리했을 뿐 대선 때 가덕도 신공항 건설 공약을 내세워 PK에서 ‘재미’를 봤다.

4개월 앞으로 다가온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가덕도 신공항 문제는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메뉴인데도 이 지역민에게 작지 않은 파급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5대 총선에서 부산과 대구 지역민들의 정치적 선택이 확연히 달랐듯 2022년 20대 대선에서 이 문제를 놓고 야권 분열은 물론 PK와 TK가 극심한 편차를 보일지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대통령 후보의 당적과 출신 지역, 새로운 지역발전 공약과 민감한 정치 이슈 등 대선에 영향을 미칠 변수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황용호 선임기자 drag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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