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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 (금)

‘전기요금 처방전’ 쓰는 아파트···3년간 2억 아낀 비결 [시민이 에너지다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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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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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대문구 홍릉동부아파트는 371가구 중 362가구가 태양광 발전에 참여한다. 이 아파트는 2017~2019년 서울시 에너지자립마을로 선정됐다. 홍릉동부 아파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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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2019년 에너지자립마을 홍릉동부아파트

| 에너지절감량 꼼꼼히 챙긴 주민대표·관리소장

| 한여름 검침일 조정해 누진제 피하는 ‘디테일’


서울 동대문구 홍릉동부아파트 관리사무소장 민한식씨(69)가 사무실 캐비닛에서 속이 꽉 찬 서류철 서너 개를 꺼내 펼쳤다. 민씨가 2017년부터 주민들에게 발급한 ‘에너지크리닉 서비스 처방전’ 뭉치였다.

민씨는 이 처방전에 TV, 비데, 에어컨, 냉장고, 세탁기 등을 ‘진단제품’ 목록에 올려놓고, 각각 소모전력량과 절감목표량, 처방책을 기록했다. 이 아파트 371가구 대부분이 이 같은 ‘에너지 처방’을 받았다고 한다. 이행 여부에 따라 재처방, 재재처방이 따랐다. 민씨는 3년 동안 쌓인 이 처방전이 “전기요금 1억9500만원을 절감한 비결”이라고 했다.

홍릉동부는 2017~2019년 서울시 에너지자립마을 사업에 참여해 모범적인 성과를 낸 곳으로 꼽힌다. 에너지자립마을은 기후변화와 에너지 위기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주민이 직접 주도해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신재생에너지 생산을 늘리는 마을공동체 사업이다. 홍릉동부 성과는 독보적이다. 전기사용량은 사업 참여 전인 2015~2016년 평균치에 비해 6~8% 줄었다. 요금 절감액은 2017년 4935만원, 2018년 6885만원, 2019년 7641만원으로 모두 2억원에 육박한다. 지난달 26일 관리사무소장 민씨와 입주자대표회장 이용수씨(66)를 만나 그간 쌓인 ‘노하우’ 전수를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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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릉동부아파트 관리사무소장 민한식씨(왼쪽)와 입주자대표회장 이용수씨가 지난해 8월 광주광역시에서 견학을 온 아파트 관리사무소장들에게 에너지 절감 성과를 설명하고 있다. 홍릉동부 아파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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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첫발은 이씨가 내디뎠다. 입주자대표 일을 맡은 직후인 2012~2014년 지하주차장과 비상계단 조명을 모두 발광다이오드(LED)로 교체해 한 가구당 2만~3만원씩 나오던 공동전기료를 1만원대로 낮췄다. 이씨는 태양광 패널로 눈을 돌렸다. 서울시·동대문구 지원을 받고, 주차장 사용료·재활용품 판매료 등 아파트 잡수익을 활용하면 각 가구가 부담할 돈은 ‘0원’. 현재 371가구 중 이 사업에 동의한 362가구가 태양광 에너지를 생산한다. 설비 설치에 4700만원 정도 들었는데, 에너지자립마을 첫해 전기요금 4900만원을 절감했으니 1년 만에 ‘본전’을 뽑은 셈이다.

민씨는 에너지 처방전과 대기전력 측정기를 들고 집집마다 관리에 나섰다. 대기전력은 전원을 끈 전기제품에서 계속 소비되는 전력이다. 민씨가 측정한 결과를 보면, TV 대기전력은 1시간당 1W. 하루 4시간 TV를 시청하면 나머지 20시간에도 20W가 소모되는 셈이다. 한 달(30일)이면 0.6㎾다. 날마다 콘센트를 조작하는 대신 간편하게 관리하도록 멀티탭을 나눠줬다. 단, 에어컨이나 건조기는 전력소모가 많아 멀티탭 사용 시 화재 위험이 있어 개폐기(두꺼비집) 사용 등 다른 처방이 필요하다. 민씨는 “전자레인지는 시간당 3W” 등 여러 실험과 경험을 통해 얻은 제품별 대기전력과 관리법을 달달 외웠다.

입소문이 차츰 주민 참여를 끌어냈다. 민씨는 “처음엔 잔소리한다고 생각하는 주민도 있었지만, 장비를 주고 요금 절감도 된다고 하니 나중엔 ‘우리 집도 와서 봐달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전기밥솥의 밥을 보온해 두는 것보다 전원을 끈 다음, 나중에 찬밥에 물을 붓고 재가열하면 맛도 더 좋고 전기도 아낀다는 정보는 노인정을 통해 급속도로 퍼졌다. 태양광을 이용해 재배하는 텃밭, 휴대전화 무선 충전이 가능한 벤치 등 단지 곳곳에 태양광을 체험할 수 있는 장치도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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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릉동부 아파트가 서울시 에너지자립마을 사업에 참여하기 이전(2015~2016년)과 이후(2017~2019년) 에너지 사용량 및 에너지 요금 변화 그래프. 허남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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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릉동부 아파트 관리사무소장 민한식씨는 집집마다 에너지 사용 실태를 점검하고 ‘처방전’을 발급했다. 홍릉동부 아파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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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사용량 검침일을 조정하는 ‘디테일’도 발휘했다. 홍릉동부는 요금 누진 상승폭을 줄이기 위해 2018년부터 검침일을 매달 15일에서 말일(30일 혹은 31일)로 바꿨다. 매년 8월15일부터 9월15일은 사용량이 가장 많은 시기인데, 검침일을 바꿔 이 요금을 8월과 9월로 나눠서 내면 8월15일~9월15일로 계산할 때보다 적게 나온다는 것이다. ‘7말8초’가 휴가철이어서 사용량이 적은 점도 있다. 이씨는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에너지 절감 정보는 인터넷 등에서 쉽게 얻을 수 있다”며 “지구를 구하는 일에 참여하는 길이 멀리 있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2018년까지 에너지자립마을 100곳을 조성해 에너지 효율화와 신재생에너지 생산을 유도했다. 아파트 단지는 물론 강동구 십자성마을, 동작구 성대골마을 등 소규모 저층 주거단지도 참여해 태양광 전력 생산과 에너지 요금 절감을 실천했다. 서울시는 2019년부터 ‘에너지자립마을 2.0’을 시작해 2022년까지 에너지공동체 300곳에 에너지자립마을 우수사례 확산을 추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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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설 기자 nshe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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