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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설왕설래] 빵파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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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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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설지공(螢雪之功). 반딧불과 눈빛에 책을 비추어 글을 읽는다는 뜻이다. 진나라 차윤과 손강의 고사에서 비롯된 말이다. ‘진서’에 나온다. 이런 말도 있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당구풍월(堂狗風月)이다. 정책을 책임진 자라면 어떤 자세를 지녀야 할까. 후자라면 큰일난다. 엉터리 정책이 난무하고, 그에 따른 고통은 국민이 뒤집어쓸 테니.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어떨까. 이런 말을 했다. “아파트가 빵이라면 제가 밤을 새워서라도 만들겠지만, 공사기간이 많이 걸려 당장 마련하는 것은 어렵다.” 그 한마디에 비판 글이 봇물을 이룬다. ‘빵파만파’라는 말까지 만들어졌다. “아파트 환상을 버리라”고 한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말처럼 국민 염장을 지르는 소리다.

왜 그럴까. 24차례나 내놓은 부동산대책. 그래도 집값·전셋값은 치솟는다. 김 장관은 그동안 뭐라 했을까. 내내 “공급은 부족하지 않다”고 했다. 7·10 대책 발표 때도 똑같은 말을 했다. 가격은 왜 뛰는 걸까. 아파트 공급량을 늘릴 생각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금 폭탄에다 분양가·대출·전세 규제 정책만 난무한 결과, 멀쩡한 택지에도 집을 짓질 않는다. 왜? 집 지어 손해 보기 십상일 테니. 지금 와서 아파트가 빵이라면 밤새워 만들겠다고? 그래서 나오는 비판, “이제야 수요·공급이 문제라는 걸 알았느냐.” 국토부 장관 생활 3년 반. “공급을 늘려 수요·공급의 불균형을 해소해야 한다”는 말에는 귀를 틀어막다가 ‘서당 개 3년’에 그 이치를 깨달은 걸까.

해묵은 ‘네 탓’도 한다. “5년 전 인허가 물량이 줄어들어 현재 주택공급이 부족하다”고. 과연 그럴까. 서울 주택 인허가 실적. 박근혜정부 때인 2015년 10만1235채(아파트 4만1351채), 문재인정부 출범 후인 2018년 6만5751채(3만2848채), 2019년 6만2272채(3만6220채). 거짓의 밑바닥이 훤히 드러난다.

공부를 어찌 했기에 모두가 아는 사실을 두고 장관 자리에 앉은 사람만 다른 말을 할까. 문득 드는 생각, 혹시 당구풍월식 공부를 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서당 개에게 나라를 맡겨 놓았던 것인가.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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