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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수능 잘 봤는데…코로나 걸렸다고 논술·실기는 못 본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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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면접 허용 대학도 소수

코로나 재확산 탓 방역만 치중

“질병 이유로 응시 차별 말아야”

[경향신문]

경향신문

수능 다음날인 4일 서울 강남구 종로학원에서 소수의 학부모와 수험생만 참석한 가운데 가채점 결과를 토대로 대학별 합격 예측 점수를 공개하는 설명회가 열리고 있다. 이날 설명회는 온라인으로 생중계됐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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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수학능력시험은 끝났지만 수시전형 논술·면접고사 등 대학별 평가가 숨 가쁘게 이어지고 있다. 당장 이번 주말인 5~6일에만 서울 10여개 대학이 논술전형을 실시하는 등 연인원 20만7000명이 움직인다. 그러나 상당수 대학이 논술과 면접에서 코로나19 확진자 응시를 제한하고 있다. 교육부와 대학들은 감염병 확산 우려와 형평성 논란, 관리인력 등의 한계로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언제 종식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향후 반복될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수험생 응시 기회 보장을 위한 대안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4일 경향신문이 전국 30개 대학을 대상으로 ‘대학별 평가 관련 코로나19 대응 현황’을 살펴본 결과, 면접평가에서 확진자에게도 응시 기회를 준 대학은 녹화 영상물 제출로 면접 방식을 바꾼 고려대·전북대·조선대·제주대 등 소수에 그쳤다. 논술·실기 등에서 확진자가 시험을 볼 수 있도록 조치한 대학은 한 곳도 없었다.

대학들은 확진자 응시 제한 이유로 “교육부 지침에 따른 것”이라고 항변했다. 교육부는 지난 8월 ‘대학별 평가에서 확진자는 비대면 시험에만 응시할 수 있다’는 지침을 내렸다. 당시 교육부는 ‘확진자도 논술·면접·실기평가 등에 응시할 수 있도록 비대면 방식을 확대해달라’고 권고했으나, 대학들은 ‘확진자 응시 제한’에만 방점을 찍어 받아들인 것이다. 정현진 전교조 대변인은 “사실상 교육부가 대학 결정에 맡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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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재확산 사태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대학별 평가 과정에서 추가 전파가 일어날 경우 이에 대한 책임 소재 논란이 불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충청권의 A대학 관계자는 “(확진자의 응시 기회 보장도 중요하지만) 감염 위험으로부터 다수의 수험생을 보호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자가격리자는 권역별 고사장을 활용하거나 학내에 마련된 별도 공간에서 응시할 수 있다. 현재 전국에 설치된 권역별 고사장은 348개에 이른다. 하지만 이마저도 따르지 않는 대학들이 있다. 이들 대학은 예산 및 관리인력 등 행정여력과 문제 유출 가능성 등을 이유로 들었다. B대학 관계자는 “공정성 확보를 위해 같은 장소에서 동일한 평가위원에게 평가를 받아야 하는데 평가위원의 이동 불가 및 상이한 일정으로 문제 유출 가능성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C대학 측은 “실기고사는 해당 과목에 따라 갖춰야 할 집기의 종류와 수량이 광범위한 만큼 권역별 고사장 활용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다만 대학들은 확진자나 자가격리자에게 공평한 응시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데는 대체로 공감했다. 서울의 D대학 관계자는 “아파서 개인 선택으로 시험을 보지 않는 게 아니라면, 학교나 교육부가 (방안을) 마련할 수 있는 데까지는 고민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중장기적인 대안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현진 대변인은 “교육부는 (확진자 응시 등을) 대학에 강제할 수 없다고 손 놓고 있을 게 아니라 일정 정도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지원해줘야 한다”며 “대학들도 응시 기회 제공에 대해 전향적으로 고민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저서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에서 ‘질병권’ 개념을 제안한 조한진희 작가는 “누구도 질병을 이유로 차별이나 배제를 받으면 안 된다는 게 질병권의 핵심”이라며 “격리 장소에서 온라인 감독관을 투입하는 등 어떤 방식이든 확진·격리자도 안전하고 타인도 안전한 방식으로 대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방역 정책이 확진자와 격리자 등 아픈 사람의 인권을 보장하는 방식들에 대해서는 고민을 계속 누락시키고 집단감염 방지로만 가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정부는 수능 외에도 임용시험 등 국가시행 시험에서 확진자 응시 기회가 제각각이라는 논란이 일자 기준을 통일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했다고 이날 밝혔다.

이성희·윤지원·박용근 기자 mong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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