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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기자가만난세상] 청년들이 살아내기 힘든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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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고등학생밖에 되지 않은 K군은 살기 힘들다. K군은 올해 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코로나19 여파로 학교에 매일 가지 못했다. 간헐적인 등교로 자주 보지 못한 친구들은 여전히 서먹하기만 하다.

체육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준비하던 체육학원도 코로나19 여파로 휴관한 지 오래됐다. 한창 친구를 만나고 꿈을 키워가야 할 K군은 이제 뭘 해야 할지 모른다. 힘들다고도 말했지만 “너만 힘든 거 아냐”라는 소리를 듣고 입을 닫았다.

세계일보

김범수 경제부 기자


취업준비생 M씨도 힘들다. 올해 26살인 M씨는 명문대 이공계를 졸업했지만 올해 취업을 하지 못했다. 감염병 여파로 기업들이 구인구직을 대폭 축소하면서다.

당장 생활비를 벌기 위해 고깃집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M씨도 어디 가서 하소연하고 싶다. 하지만 항상 꾹 참는다. 언제 한 번 힘든 소리 냈다가 “취직할 만한 사람은 다 취직해”라는 소리만 돌아왔기 때문이다.

결혼을 앞둔 J씨도 힘에 부친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J씨는 친구들보다 조금 늦은 36살에 결혼을 준비했지만, 너무나 올라버린 집값은 그의 결혼을 허락지 않았다.

J씨의 봉급을 쪼개 저축해서 서울 시내 아파트를 산다면 딱 100년 걸린다. 그렇다고 전세도 녹록지 않다. 분노도 해봤지만 돌아오는 주변 반응은 “아파트에 살 생각 말고 월세나 살라”는 비난이었다.

청년들은 그저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힘에 겹다. 그들의 최고 목표는 그저 생존이다. 누구나 살기 힘든 세상이지만, 다른 사람들보다 직업도, 돈도, 집도 가진 게 없는 청년들은 더욱 살아남기 힘들다. 살 수만 있다면 무엇인들 못할까. 부들부들 떨며 자존심 다 내려놓고 “의원님 살려주세요” 같은 소리는 수만 번 할 수도 있다.

생존마저 위기에 닥치면 불안할 수밖에 없다. 불안감은 자연스럽게 사회와 나라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진다. 불만은 인내로 해결되지 않는다. 불만이 해소되지 않으면 다음에 벌어지는 일은 여러 단어가 있다. 난리, 민란, 봉기, 혁명 등이다. 적어도 한 세대의 에너지를 모두 소모해야 하는 것들이다. 불만은 난세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신호다. 마치 큰 병을 앓기 직전 작은 통증과 같다.

그렇기에 위정자는 어려운 이들의 불만을 들어줄 책임이 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위정자는 순진하지 않다. 정당은 공익을 추구하는 좋은 정치인의 집단이 아니라, 사익을 탐하는 이기적인 인간들의 군집이라고 어떤 정치학자가 말했던가. 그들은 불만을 외면하는 것도 모자라 은연중 지지자들로 하여금 어려운 이들이 불만을 토로하는 것조차 걸림돌로 치부하며 죄책감을 느끼게 한다.

이제 불만을 누구에게 토로해야 하나. 생존 위기에서 오는 불만도 내뱉지 못하게 하는 것은 그냥 죽으라는 소리다. 위정자도, 허공에 매인 십자가도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는다. 조선 실학자 연암 박지원은 저서 ‘열하일기’에서 ‘호곡장’(好哭場·울기 좋은 곳)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감정을 드러내는 장소에 대해 말했는데, 오늘날엔 호곡장은 없어 보인다. 대나무숲이라도 찾아가야 하나.

김범수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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