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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독우와 장비의 폭행, 검사의 폭행. 이 중에 독직폭행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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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남민준 변호사 ] [편집자주] 게임과 무협지, 삼국지를 좋아하는 법률가가 잡다한 얘기로 수다를 떨면서 가끔 진지한 내용도 말하고 싶어 적는 글입니다. 혼자만의 수다라는 옹색함 때문에 약간의 법률얘기를 더합니다.

[the L][남 변호사의 삼국지로(law)]39


독우와 장비의 폭행, 검사의 폭행. 이 중에 독직폭행은?

연의 초반에 장비가 독우를 나무에 매달고 두들겨 패는 장면이 나옵니다.

유비가 뇌물을 바치지 않자 시찰 나온 독우가 유비가 현령으로 있던 곳의 관리를 고문해서 유비에게 뇌물죄를 뒤집어 씌우자 화가 난 장비가 독우를 나무에 매달고 매질을 한 것인데요.

(독우는 사람 이름이 아니라 현을 감찰하기 위하여 태수의 명에 따라 보내진 관리인데 정사에서는 유비가 독우를 때린 것으로 나옵니다만, 연의에서는 장비가 독우를 때리고 유비가 말리는 것으로 나옵니다.)

위 사례에는 독우와 장비의 두 가지 폭행이 등장합니다.

독우의 폭행은 어떤 죄에 해당할까요?

독우는 사실과 다름에도 불구하고 유비에게 뇌물죄를 뒤집어 씌우기 위한 자백을 받아 내려고 현리를 고문한 것인데요,

형법에 의하면 폭행∙가혹행위죄(독직폭행죄)로 (벌금형 없이) 5년 이하의 징역과 10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하도록 되어 있고,

특가법에 의하면 형법 제125조의 죄를 범하여 사람을 죽거나 다치게 한 때에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을, 사망에 이르게 한 때에는 무기 또는 3년이상의 징역에 처하고 있습니다.

독직폭행죄는 재판∙검찰∙경찰 기타 인신구속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공무원에 의한 인권침해행위를 처벌하여 고문을 금지한 헌법 규정(제12조 제2항)을 실현하기 위해 규정된 죄입니다.

그래서 독직폭행죄는 i) 법정형에 벌금형이 없고 ii) 형을 선고할 때도 10년 이상의 자격정지까지 병과하도록 규정되어 있어,

공무원의 입장에서 그 형이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일전에 적었듯 공무원은 ‘금고이상의 형’을 받게 되면 공직을 잃게 되고 연금의 절반 가량도 받지 못하게 됩니다).

구성요건에는 ‘폭행 또는 가혹한 행위를 가한 때’라고 규정되어 있는데 i) 폭행은 신체에 대한 유형력의 행사를 의미하지만 반드시 직접 사람에 대한 것일 필요는 없고 ii) 가혹한 행위는 폭행 이외의 방법으로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주는 일체의 행위를 의미합니다.

폭행과 가혹행위가 병렬적으로 나열되어 있는 규정의 취지상 ‘신체에 대한 유형력 행사로서의 폭행’은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줄 정도’여야 합니다.

독우를 때린 장비는 어떨까요?

유, 관, 장 삼형제는 황건적을 토벌한 공을 세웠으나 유비만이 현령으로 임명되었다는 내용으로 보아 장비를 인신구속에 관한 직무를 맡은 공무원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으니, 독우와 달리 장비는 폭행(또는 상해)죄의 책임을 지겠네요.

휴대전화를 압수하는 과정에서 피의자로부터 휴대전화를 뺏으려다가 피의자를 다치게 한 검사가 독직폭행으로 기소되었습니다.

이미 기소가 되었으니 기소유예를 받을 수는 없고 유죄가 인정된다면 검사는 공직을 잃고 연금의 절반을 받지 못한 채 자격정지 10년까지 병과 받아야 합니다.

일전에 ‘주거침입 강제추행죄’에 관해 적으면서 법 문언의 형식에 부합하더라도 당해 규정의 취지, 행위 당시의 상황, 행위의 동기, 경위 등을 고려하지 않으면 행위의 불법성이 형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여 구체적 타당성을 상실할 수 있다는 내용을 적은 적이 있습니다(에피소드-27).

형식적으로만 본다면 검사의 행위는 독직폭행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입니다만,

i) ‘휴대폰 내의 내용을 삭제하려 한다’는 오인에 기초해 발생한 부수적 행위를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주려는 적극적 행위와 같다고 보기는 어렵고 ii) 하물며 밀실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있는 피의자의 사무실에서 휴대폰을 빼앗으려다 그 과정에서 유형력이 행사된 경우이므로,

행위의 불법성은 독직폭행죄의 불법성과 달라 검사에게 독직폭행죄의 책임을 묻는 것은 오히려 형법 제125조의 취지에 반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연일 장관과 총장의 갈등으로 시끌시끌하고 ‘누구는 누구 쪽의 사람이다, 아니다’, ‘총장의 잘못이다, 장관의 잘못이다’로 의견이 분분하지만,

법은 규정의 문언과 취지에 따라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적용되어야 하고 행위자는 행위의 불법성 만큼만 책임을 져야 합니다.

모두 법과 원칙을 얘기하지만 법과 원칙이 진영의 논리나 특정 집단의 이익에 따라 다르게 해석∙적용되어 행위자가 불법성을 넘는 책임을 지게 된다면 그것은 법과 원칙의 탈을 쓴 ‘자의’에 지나지 않습니다.

머니투데이



남민준 변호사 lawmake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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