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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이슈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범여가 밀어붙인 '비례 전략공천 금지법' 1년도 안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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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은 민주적 심사절차를 거쳐 대의원ㆍ당원 등으로 구성된 선거인단의 민주적 투표절차에 따라 추천할 후보자를 결정한다.”

비례대표 전략공천을 금지하는 이같은 내용의 공직선거법 조항(제47조의2)이 법 개정 1년도 안 돼 폐기됐다. 해당 조항이 삭제된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다. ‘패스트 트랙 사태’로 불렸던 극한 진통 끝에 올해 초 도입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핵심축 하나를 국회가 스스로 허문 셈이다.

개정안에서 삭제된 이 조항은 ‘비례대표 전략공천 금지법’으로 불렸다. 실제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처음으로 적용된 선거였던 지난 21대 총선에선 아무리 지명도가 높거나 각 정당 실세들과 특수 관계에 있는 인사라고 해도 대의원·당원 등이 참여하는 투표 절차를 거치지 않고는 비례대표 후보가 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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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는 9일 본회의를 열고 비례대표 선출과 관련한 민주적 절차 조항을 삭제하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법안은 찬성 174인에 반대 72인, 기권 19인으로 가결됐다. 하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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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행이 돼 왔던 전략공천이 금지되자 여야 모두 진통을 앓았다. 특히 당규(10호 49조 3항)를 통해 당선 안정권의 20% 이내에서 당 대표의 비례대표 후보 전략공천 권한을 인정해 왔던 더불어민주당은 혼란에 빠졌다. 민주당은 즉각 선관위에 전략공천 가능 여부에 대한 유권 해석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선관위는 지난 2월 “당 대표나 최고위원회의 등이 선거 전략만으로 비례대표 후보자 및 순위를 결정하여 추천하는 전략공천은 법률 위반”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그러자 각 당은 부랴부랴 요식적이나마 제 나름의 '민주적 절차'를 설계해 적용하느라 바빴다.



국민의힘 칼 빼들자 민주당·정의당도 동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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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27일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의장석으로 몰려들어 항의했다. 이렇게 진통 끝에 통과된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시행 1년도 안돼 폐기됐다. 비례대표 선출과 관련한 '민주적 절차'를 규정하는 조항 등이 삭제된 또 다른 개정안이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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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칼을 빼든 건 국민의힘이었다.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은 총선 한 달여만인 지난 6월 4일 이 조항을 삭제하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20대 국회에서 졸속으로 입법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폐지하고 이전의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환원해야 한다”면서다. 이 법안은 지난 9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상정됐고 두 번의 법안심사소위를 거쳐 지난 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문턱을 넘었다.

법안이 본회의에 올라오기까지 제대로 된 반대의견은 나오지 않았다. 비례대표 추천 과정의 민주적 절차에 대해 “강도 높은 민주적 공천제도가 포함됐다”(지난해 12월 27일, 당시 심상정 정의당 대표)고 평가했던 정의당마저 법안 심사 초기엔 해당 조항 삭제에 찬성했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은 지난달 5일 행안위 법안심사2소위 회의에서 “후보자 추천은 자율적 결사체인 정당이 공적 책임을 갖고 진행하는게 맞다. 정치적 행위를 법으로 이렇게 규제받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장 의원의 개정안에 동의했다. 이 의원은 이후 한 차례 추가로 열린 회의에선 “해당 조항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페지와 묶여 있다는 점을 착각했다. 조항 폐지에 찬성했던 입장을 철회한다”고 말했다.



정의당의 뒤늦은 "정치 퇴행"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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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지난해 말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오랜 투쟁 끝에 선거법이 통과됐다. 거대 양당으로 수렴되던 제도가 주권자의 뜻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핸들을 꺾은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1년이 지난 9일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핵심축 중 하나인 비례대표 선출 절차와 관련한 절차 조항이 폐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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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던 정의당은 9일 본회의 표결을 앞두고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뒤늦게 비판했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이날 법안 토론을 신청해 “정당 구성과 활동 당론결정의 모든 과정은 반드시 민주적인 절차로 진행돼야하고 이런 원칙은 공직선거후보자 추천에 있어서도 당연히 적용돼야 한다”며 “본회의에 상정된 공직선거법 대안은 지난 국회에서 애써 만든 법안을 폐지하고 다시 밀실공천, 내리꽂기 공천이 난무하는 비민주적인 독소조항 포함됐다”고 지적했다.

장 의원의 지적에 대해 이해식 민주당 의원은 법안 토론 발언을 통해 “비례대표 추천과 관련한 규정을 일부 삭제한 것은 선거법에 규정하기보단 정당법에 규정하는게 맞겠다는 판단 때문이다. 정당법을 개정해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통해) 삭제한 조항을 거의 그대로 담는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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