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 대선 주자들도 연달아 의견을 내놓기 시작했다. 사과에 찬성 또는 반대하는 이유는 뭘까.
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모두 발언 후 물을 마시고 있다.[사진=김호영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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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는 중도층 지지
김 위원장은 국민의힘이 중도층·무당층 지지를 얻으려면 이 전 대통령 구속과 박 전 대통령 탄핵 문제를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이 변화했다는 걸 가장 확실히 보여줄 수 있는 게 대국민 사과라는 판단이다.
그는 그간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도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됐을 때 사실상 같이 탄핵된 것"이라며 "그런데 당이 국민에게 정중히 사과한 적이 있냐"는 말을 해왔다. 최근 의원총회에서도 김 위원장은 "우리가 어떻게 하면 국민 마음을 돌릴 수 있을까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며 "다소 불편한 점이 있더라도 다같이 협력해 달라"고 말했다.
찬성파, 수도권·충청권·초선 의원 다수
수도권과 충청권 의원, 당협위원장들은 대부분 김 위원장과 인식을 같이한다. '텃밭'이 아닌 '스윙 보터' 지역으로, 이곳 의원들은 탄핵 이후 4번 치른 전국 단위 선거에서 보수 정당이 모두 패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박진 의원(4선·서울 강남을)은 "잘못에 대한 반성은 보수의 참모습"이라며 "우리는 지금 달라지고 있는 야당에 다시 한 번 기회를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 잘못에 대한 사과 없이 어떻게 지지를 다시 받을 수 있겠냐"고 말했다. 충남 서산태안이 지역구인 성일종 의원(재선)과 서울 도봉갑 당협위원장인 김재섭 비대위원 역시 김 위원장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두 전직 대통령과 인연이 별로 없는 초선 의원들도 찬성 의견이 다수다. 책임 지는 자세를 보임으로써 독주하는 문재인 정권과 차별화를 시도하자는 의견이 많다. 황보승희 의원(초선·부산 중영도)은 "우리의 진심 어린 사과를 가장 두려워할 사람은 현재 권력에 심취해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는 문재인 대통령"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내년 보궐선거는 국민이 우리 당에 주는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며 "부디 사적 이해관계에 따라 당에 돌을 던지는 발언은 뒤로 물러나 달라"고 덧붙였다.
유보파, 찬성하지만 지금은 때 아냐
사과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시기'를 미루자는 유보파도 있다. 김 위원장은 당초 박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지 4년째인 지난 9일 대국민 사과를 하는 안을 생각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최근 진행된 비공개 비대위 회의에서 "여당이 공수처법을 일방 통과시키려는 상황에서 사과를 하는 건 당내 단합에 장애가 될 수 있다"며 반대했다.
한 3선 의원은 "여당이 제1야당을 완전히 무시한 채 공수처법과 기업규제 3법을 처리하는 상황"이라며 "당내 의원들이 모든 힘을 집중해야 할 시기"라고 토로했다. 이어 "정기국회가 끝나면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간 갈등이 또다시 화두에 오를 것"이라며 "현 정권의 오만을 부각시켜야 할 때 사과를 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아예 탄핵에 대한 논란 자체를 끝내자는 의견도 나왔다. 유승민 전 의원은 "탄핵 문제를 넘어서지 못하고 분열하는 건 현 정권이 제일 바라는 것"이라며 "진정 집권 의지가 있다면 이젠 탄핵을 넘어서자. 탄핵의 강을 건너자"고 주장했다.
반대파, 사과 주체·보수층 반발 이유
장제원 의원(3선·부산 사상)은 "사과 주체의 정통성도 확보하지 못한 명백한 월권"이라고 비판했다.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대표를 지낸 홍준표 무소속 의원도 "김 위원장은 탄핵 당시 민주당 의석에 앉아 있었다"며 "탄핵의 가해자가 피해자를 대리해 사과한다는 건 상식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김 위원장의 대국민 사과가 오히려 문재인 정권의 정당성만 높여준다고도 꼬집었다.
배현진 원내대변인 역시 "굳이 뜬금포 사과를 하겠다면 문 정권 탄생 그 자체부터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직을 던지겠다는데, 그건 어른의 자세가 아니다"며 "무책임한 뜨내기의 변으로 들린다"고 덧붙였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에 몸담았거나 두 전직 대통령과 함께 의정 생활을 했던 이들이 당내에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사과하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대국민 사과가 자칫 자기 부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장 원조 친박으로 꼽히는 서병수 의원(5선·부산 부산진갑)과 친이계 좌장인 이재오 국민의힘 상임고문이 김 위원장을 비판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전통적인 보수 지지층을 잃을 수도 있단 우려도 나온다. 특히 보수 텃밭으로 꼽히는 대구·경북(TK)에선 박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한 동정 여론이 여전하다. 한 대구 지역 의원은 "중도층을 얻자고 보수층을 버리는 전략은 좋지 않다"고 비판했다.
김종인, 일단 연기
당내 균열이 커지자 김 위원장은 일단 한발 물러섰다. 사과 방침은 분명하지만 시기와 내용에 변화를 주려는 모양새다. 그는 최근 3선 의원 13명이 찾아오자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과보다도 그로 인해 반민주적인 문재인 정권이 만들어진 것에 대해 폭넓게 사과하려고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발언에 한때 사과 반대 성명까지 발표하려 했던 3선 의원들은 일단 관망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차기 대권 주자로 분류되는 원희룡 제주도지사와 오세훈 전 서울시장마저 김 위원장의 사과를 지지하고 나섰다. 그리고 당내에선 내년 4월 재·보궐 선거까지는 김종인 비대위 체제로 가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결국 사과는 시기의 문제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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