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 주가 상승은 경제 성장의 지표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보기만은 힘들다. 정부의 막대한 재정과 정책금융 지원, 저금리 기조 속에 불어난 유동성이 실물경제 대신 자산시장으로 흘러 들어가 증시를 끌어올린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7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시중 통화량(M2 기준)은 3150조5000억원으로 사상 최대다. 전년 대비 9.7%나 늘어날 정도로 증가 폭도 기록적이다.
취업자 증감·실업자 수 추이.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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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실물경제의 회복세는 ‘코스피 3000시대’와 견줘 미약하다. 당장 고용 시장은 고용 한파가 혹독하다. 지난해 11월까지 국내 취업자 수가 9개월 연속(3~11월) 줄어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8개월 연속 감소 이후 최장 기록이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은 생사의 기로에 섰다. ‘한국신용데이터’에 따르면 전국 소상공인 점포의 매출은 지난달 넷째 주(12월21~27일)까지 3주 연속 올해 최저치 기록을 경신 중이다. 헬스장ㆍ학원ㆍ카페ㆍ식당ㆍ노래방 등이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를 완화해달라며 집단행동에 나서고 있는 배경이다.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수출도 코로나19 사태 이전으로 회복하진 못했다. 지난해 수출은 5128억5000만 달러(-5.4%)로 2019년에 이어 2년 연속 감소했다.
다시 내리막 탄 중소기업 경기전망.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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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경기는 온기가 구석구석까진 미치지 않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직ㆍ간접적인 특수를 누린 주요 대기업들과 달리, 약 70만개 중소기업 대다수에서는 위기가 지속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1월 중소기업 경기전망지수는 65로 전월 대비 7포인트, 전년 같은 달 대비 16.3포인트 내렸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10~11월 반짝 회복세가 나타났으나 “내수위축, 대내외 불확실성으로 인해 경기 전망이 2개월 연속 악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 3000시대에 가려진 실물경제의 어두운 그림자들이다.
무엇보다 자산가격 거품 우려를 키우는 것은 가계부채다. 지난해 9월 기준으로 가계부채는 1941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은 1년 새 16.5%포인트나 뛴 101.1%다. 세계 최고 수준이다. 나라 전체가 1년간 번 돈을 다 합쳐도 가계가 빌린 돈을 감당할 수 없게 됐다는 뜻이다.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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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의 규모도 문제지만, 질이 좋지 않다. 빌린 돈으로 소비하거나 사업에 투자하기보다는 부동산ㆍ주식으로의 이른바 ‘빚투’(빚을 내 투자)를 늘려서다. 빚투는 투자금을 늘려서 고수익을 노리는 이른바 ‘레버리지 투자’인데, 주가가 하락하면 원금 손실에 이자 부담까지 이중고를 겪는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증시가 급변할 경우 위험을 키우고, 자칫 전체 금융기관의 건전성 이슈로 번질 수 있다”며 “부채가 어떤 방식으로 늘어나는지에 대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한국경제의 ‘약한 고리’인 자영업자ㆍ소상공인의 부채는 이미 위험수위다. 기업 부채도 나라에 짐을 지우고 있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한국의 GDP 대비 기업부채 비율은 110.1%로 세계평균(103%)을 웃돈다. 조사 대상 34개국 가운데 8번째로 높다.
GDP 대비 기업부채 비율.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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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은 올해 ‘유동성 부족 기업’이 ‘기본 시나리오’에서는 2.5%, 매출이 회복되지 않는 ‘비관적 시나리오’에서는 4.4%가 될 것으로 추정했다. 금융지원이 종료되면 이 비율은 각 시나리오에서 5.2%ㆍ7%로 뛴다. 주요 경제주체의 부채문제가 올해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이에 정책 당국은 본격적으로 경고등을 켜기 시작했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이날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금융시장의 안정적 상승세가 지속하기 위해서는 시장 참가자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실물경제의 회복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위기가 남긴 상흔이 예상보다 깊을 수 있고 회복 과정에서 어떤 리스크 요인이 불거질지 예단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위축된 실물경제가 살아나 가열된 금융시장과 균형을 맞춰야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는 의미다.
이는 지난 5일 “위기 대응 과정에서 늘어난 유동성이 자산시장으로의 쏠림이나 부채 급증 등을 야기할 가능성에 유의해야 한다”(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간 발언이다. 김 차관은 그러면서 “위기 대응 과정에서 팽창한 유동성이 금융 부문 안정을 저해하지 않도록 세심히 관리하고 위기대응 조치의 연착륙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당면 과제”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책 당국이 손대기가 쉽지 않다. 자본시장의 거품을 진정시킨다고 유동성 잔치를 끝낼 경우 부작용이 더 커질 수 있어서다. 한계 기업ㆍ가계의 연쇄 도산이 나타나고, 금융으로 위기가 전이돼 다시 실물경제에까지 충격이 돌아오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시중에 유동성을 지금처럼 무한정 공급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유동성 공급의 속도 조절을 통해 자산가격의 급락, 부채의 부실화, 신용 리스크 등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안 마련에 착수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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