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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 (금)

이슈 무병장수 꿈꾸는 백세시대 건강 관리법

“책방언니로 3년…건강·돈 잃고 문학의 힘 깨달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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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듬 시인 새 에세이집 『안녕…』

일산서 독립책방 운영 경험 담아

“전미번역상 못 받았으면 망할 뻔”

중앙일보

2017년부터 경기도 일산에서 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시인 김이듬.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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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모으기는커녕 그간 강의를 다니며 알뜰히 모은 돈을 다 날렸다. 월세와 관리비를 내고 책을 주문하고 행사를 진행하며 지금까지 인건비를 한 푼도 건지지 못했다. 건강이 나빠졌고 스트레스성 탈모가 겹쳐 몰골이 말이 아니다.”

중앙일보

히스테리아


전미번역상 수상작 『히스테리아』(사진)의 작가 김이듬(52) 시인이 펴낸 새 에세이집 『안녕, 나의 작은 테이블이여』(열림원)의 한 대목이다. 2017년 10월부터 경기도 일산에서 독립책방 ‘책방이듬’을 운영해온 그가 ‘책방언니’로서의 단상을 일기처럼 풀어냈다. 지난 5일 전화 인터뷰로 만난 그는 “지난 3년이 건강과 돈을 다 잃은 ‘암흑기’였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시의 힘, 문학의 힘, 인문학의 힘을 깨달은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책방이듬’은 지난달 호수공원 옆 정발산동을 떠나 대화동 성저마을으로 자리를 옮겼다. “더 넓고, 햇살도 잘 들고, 월세도 싼 곳”이다.

2001년 계간 ‘포에지’로 등단한 그는 『명랑하라 팜 파탈』 『베를린, 달렘의 노래』 등 시집을 발표하며 독창적인 시 세계를 구축했고, 한양여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임 중이다. 고양시 어느 고등학교에 특강 하러 갔다 처음 만난 일산 호수공원에 매료돼 덜컥 책방 일을 벌였다.

“사람들이 다 바보라 하더라고요. 호숫가라 바람 많이 불고 인적이 드물어 상권이 죽은 곳이었죠. 물정 모르고 낭만적인 생각으로 시작한 일이었는데….”

월세 160만원에 부가세 10%, 관리비·전기요금 등 고정 비용만 월 200만원이 들었다. 책을 팔고 음료를 만들고 설거지하고, 모든 일을 그 혼자 해내야 했다. 개업 6개월 무렵 시작된 원형 탈모는 접시 크기만큼 커졌다.

“유안진 ‘지란지교를 꿈꾸며’에 나오듯 슬리퍼 신고 찾아가 차 한잔 마실 수 있는 곳을 꿈꿨어요. 이 사이에 고춧가루가 끼어도 괜찮을 그런 공간이요. 그런데 종일 지나가는 사람이 한둘이었으니…. 열심히 해도 안 되면 어쩔 수 없다, 생각했을 때 ‘친구’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하나둘 들어온 손님들이 그가 권한 시집을 펼쳤고, 몇 시간씩 머물다가는 단골이 됐다. 삶의 고민을 나누고, 바쁜 그의 일손을 돕기도 했다. 조촐한 송년회 날엔 누구 하나 빈손으로 오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 사이에 우정이라는 불가사의한 에너지가 생겨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며 “인간이라는 존재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아름답더라”고 말했다.

호수공원 옆 ‘책방이듬’에서 그는 낭독회와 저자와의 대화 등 행사도 100여 차례 열었다. 독서모임과 인문학 강의, 시 창작모임 등 소모임도 펼쳤다. 하지만 지난달 11일 문을 연 대화동 ‘책방이듬’에선 코로나19 방역 지침에 따라 대부분 행사를 미뤘다. 이사 후 첫 행사로 계획한 시인 나태주 낭독회도 일정을 못 잡고 있다. 그는 “『히스테리아』가 상을 못 받았으면 책방이 망할 뻔했다”며 웃었다. 2014년 펴낸 시집 『히스테리아』의 영역본이 지난해 10월 미국문학번역가협회 주관 전미번역상을 국내 작품 최초로 받게 되면서 책방을 찾는 손님이 많아진 것이다. 그는 “책을 어제는 18권, 그저께는 20권 정도 팔았다”며 “이 정도면 책방 초창기 한 달 동안 판 양”이라고 했다.

“열심히 책방언니로 늙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나도 이제 최저시급 한 번 받아봤으면 좋겠다는 기대도 생기고요. 사람들 마음속에 다 시의 씨앗이 있지 않나요? 그 씨앗에 관심을 가져주고 햇살을 쐬어주면 얼마나 아름다운 꽃을 피울지, 희망이 큽니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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