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병률은 젊은 여성이 최고
혈액·초음파 정밀 검사 결과
임상 증상 함께 고려해 진단
매년 100만여 명이 진료를 받고 발견된 지 6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생소한 병이 있다. 내 몸이 나를 공격하는 병, 바로 자가면역 질환이다. 과거에는 희귀 질환이었지만 요즘에는 주변에서 드물지 않게 접한다. 배우 김유정(갑상샘 기능 저하증), 가수 윤종신(크론병)을 비롯해 일본의 아베 신조 전 총리도 지난해 자가면역 질환인 궤양성 대장염이 악화해 총리직을 내려놓기도 했다.
정확한 원인 몰라 예방·완치 어려워
자가면역 질환은 체내 면역 세포가 정상 세포를 세균·바이러스와 같은 적으로 인식해 공격하면서 발생한다. 통계적으로 남성보다 여성에게 많이 발병하고 비교적 젊은 나이에 시작되는 특징이 있다. 고려대안암병원 류마티스내과 이영호 교수는 “아토피·천식 같은 알레르기 질환과 달리 자가면역 질환은 외부 자극이 없어도 발생·악화할 수 있다”며 “유전·감염·스트레스 등이 관여하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아 예방·완치가 어려운 병”이라고 말했다.
다른 병처럼 자가면역 질환도 조기 진단·관리가 중요하다. 자가면역 질환은 대부분 한 조직에서 시작해 전신으로 퍼진다. 만성적인 염증으로 삶의 질이 떨어지고 암·심장병 등 치명적인 질환으로 이어져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이영호 교수는 “초기에 염증을 다스리면 증상 개선 효과가 크고 관절 변형이나 장기 손상 등 합병증 위험도 낮출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자가면역 질환이 누구에게, 언제 나타나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순천향대서울병원 관절류마티스내과 김현숙 교수는 “현재로서는 환자 스스로 질환별 ‘단서(증상)’에 관심을 갖고 빠르게 대처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류머티즘 관절염은 관절을 둘러싼 막(활막)에 염증이 생기는 병으로 손가락 중간 마디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일반 관절염이 50대부터 나타나지만 류머티즘 관절염은 30~40대에서 발병률이 가장 높다. 아침에 일어날 때 관절이 뻣뻣한 증상도 1시간 이상으로 일반 관절염(10~30분)보다 두 배 이상 길다. 김현숙 교수는 “손을 펼 때 마디 주름이 사라지고 눌렀을 때 찐빵처럼 말랑말랑하면 류머티즘 관절염일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장에 만성 염증이 생기는 크론병·궤양성 대장염을 묶어 염증성 장 질환이라고 한다. 크론병은 입에서 항문까지 소화기관 전체에, 궤양성 대장염은 대장에만 염증이 나타난다. 원인이 뚜렷하지 않고 복통·설사가 4주 이상 지속한다는 점에서 일반 장염과는 구별된다.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박상형 교수는 “크론병은 10~20대, 궤양성 대장염은 30대 중반 이후에서 가장 많이 발생한다”며 “이 시기 소화기 증상과 함께 체중 감소, 혈변이 나타나면 병원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신진대사를 조절하는 갑상샘 기능 장애도 자가면역 질환이 주원인이다. 갑상샘호르몬이 적은 갑상샘 기능 저하증의 80%, 반대로 호르몬 수치가 높은 갑상샘 기능 항진증의 90%가 각각 자가면역 질환인 하시모토 갑상샘염과 그레이브스병으로 인해 발생한다. 전체 환자 10명 중 7명은 여성으로 20대 이후 발병률이 급증한다. 같은 갑상샘 질환이어도 증상은 정반대다. 갑상샘호르몬이 줄면 무기력해지고 추위를 잘 타며 삶의 의욕이 떨어진다. 반면에 호르몬이 넘칠 땐 불에 땔감을 넣은 듯 맥박이 빨라지고 추운 겨울에도 땀을 흘리며 신경이 예민해진다. 혈액검사로 호르몬 수치를 파악하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몸에 좋다는 식품이 증상 악화시킬 수도
쇼그렌 증후군은 침샘·눈물샘 등 외분비샘이 면역 세포의 공격으로 손상되는 병이다. 주로 침과 눈물이 말라 구강·안구 건조증과 헷갈리기 쉽다. 핵심은 지속 시간과 증상 강도다. 김현숙 교수는 “쇼그렌 증후군일 땐 눈에 모래가 들어간 듯 따갑고 혀의 돌기가 사라질 정도로 입 마름 증상이 심하다”며 “만일 40대 이후 중년 여성이면서 복용하는 약물이 없고 3개월 이상 건조 증상이 지속하면 쇼그렌 증후군을 의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피부 증상이 특징인 자가면역 질환도 있다. 건선은 가려움·각질 등이 건조증과 비슷하지만 팔꿈치·무릎처럼 마찰이 잦고 외부에 노출되지 않는 부위에 주로 발생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손발톱이 파이거나 누렇게 착색되는 현상(네일 피팅)이 동반되기도 한다. 전신 홍반 루푸스는 안면홍조처럼 얼굴에 붉은 발진이 나타나지만 가렵지 않고, 모양이 나비·원형 등으로 다소 독특하다. 환자의 90%는 40대 이하 여성으로 피부 증상과 함께 입이 헐거나 부종, 신장 질환 등 전신 증상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다. 서울아산병원 류마티스내과 홍석찬 교수는 “손발 끝이 창백하게 변하는 레이노드 현상도 루푸스 증상 중 하나”라며 “햇빛을 오래 쐬거나 추운 날씨에 피부 증상이 심해지면 면역 상태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자가면역 질환은 혈액(호르몬·자가항체)·초음파 등 정밀 검사 결과와 임상 증상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진단한다. 소염제·스테로이드제나 면역 세포의 활성도를 조절하는 생물학적 제제로 증상을 관리할 수 있다. 염증성 장 질환이나 갑상샘 기능 항진증의 경우 합병증 위험이 크면 수술로 문제가 되는 부위를 절제하기도 한다. 홍석찬 교수는 “자가면역 질환은 면역력이 약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과해서 발생하는 문제”라며 “몸에 좋다는 건강기능식품이나 음식, 한약 등이 증상을 악화할 수 있기 때문에 의사와 상담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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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면역 질환의 증상과 특징
뺨에 생긴 나비 모양 발진 ‘전신 홍반 루푸스’
▶주 발병 연령 - 40대 이하 여성
▶특징 - 발진이 좌우 대칭으로 나타남. 신장 질환 등 전신 증상이 동반될 수 있음
사라지지 않는 구강·안구 건조증 ‘쇼그렌 증후군’
▶주 발병 연령 - 40대 이후 여성
▶특징 - 눈과 입이 마르는 증상이 3개월 이상 지속.관절통, 소화불량이 동반될 수 있음
쉽게 피로하고 추위를 잘 탄다 ‘갑상샘 기능 저하증’
▶주 발병 연령 - 나이가 들수록 발생률 증가
▶특징 - 몸이 붓고 입맛은 없는데 체중은 늘어남. 고콜레스테롤혈증·저나트륨혈증이 동반될 수 있음
땀이 많이 나고 맥박이 빠르다 ‘갑상샘 기능 항진증’
▶주 발병 연령 - 20~50대 여성
▶특징 - 4명 중 1명가량은 눈이 튀어나옴. 여성의 경우 월경 장애·난임을 겪기도 함
아침마다 손가락이 굳는다 ‘류머티즘 관절염’
▶주 발병 연령 - 30~40대 여성
▶특징 - 주로 손가락 중간 마디가 붓고, 폈을 때 주름이 잡히지 않음
팔꿈치가 가렵고 각질이 인다 ‘건선’
▶주 발병 연령 - 10~20대 남녀
▶특징 - 팔꿈치·무릎 등 옷과 닿는 부위에서 시작. 손톱이 파이거나 색이 변함
이유 모를 복통·설사가 지속한다 ‘염증성 장 질환’
▶주 발병 연령 - 10~30대 남녀
▶특징 - 소화기 증상이 4주 이상 나타남. 체중 감소와 혈변이 동반될 수 있음
박정렬 기자 park.jungry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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