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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에 ‘미쉐린 맛집’도 배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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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비빔밥 도시락 전문점 '보자기꽃밥' 연 송정은 대표
한국일보

송정은 '꽃, 밥에 피다' 대표가 8일 서울 종로구 북촌의 친환경 도시락 전문점 '보자기꽃밥'에서 꽃밥 도시락을 설명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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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연속 '미쉐린 빕 구르망(합리적인 가격에 훌륭한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에 선정된 서울 인사동의 '꽃, 밥에 피다'가 포장배달 전문점 '보자기꽃밥'을 따로 냈다. 미쉐린 가이드에 등재된 맛집들 중에서는 첫 시도다. '꽃, 밥에 피다'는 20여년간 친환경 먹거리를 연구해온 송정은 대표가 2015년 12월 전국 산지에서 공수해온 친환경 식자재로 품격 있는 한식을 선보여온 고급 한식당이다.

최근 서울 종로구 북촌 '보자기꽃밥'에서 만난 송정은 대표는 "지난 한 해 코로나 여파로 손님 발길이 줄어들면서 매출이 크게 줄었다"며 "저희 음식은 원재료 수급에서부터 일일이 직접 손으로 다듬어 만들기 때문에 인력을 줄이는데 한계가 있고, 그렇다고 저가의 재료를 쓰는 건 운영 철학에 맞지 않았다"고 말했다.

손님이 오지 않으면 찾아가야 했다. 송 대표는 "코로나가 터지기 전에도 멀리 사시는 손님들이 포장이나 배달해주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다"며 "코로나가 기폭제가 돼 포장배달 전문점을 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문제는 '꽃, 밥에 피다'에서 내놓는 요리의 수준을 포장, 배달하면서도 지킬 수 있는지 여부였다. 미쉐린 가이드의 인증을 받은 '꽃, 밥에 피다'의 대표 인기 메뉴인 비빔밥은 갓 지은 밥 위에 색색의 나물을 얹은 뒤 노란 지단으로 감싸 황금빛 유기 그릇에 담아 낸다. 송 대표는 "포장, 배달 전문점을 내면서 가장 우려했던 것이 '이게 미쉐린 맛집에서 만들었다는 비빔밥이라고?'하면서 고객들이 실망하는 반응이었다"라며 "포장, 배달하면 아무래도 가장 맛있을 때 요리를 먹지 못할 수 있고, 식당의 분위기나 서비스도 제공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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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자기꽃밥'은 국내산 친환경 재료 95%를 사용한 비빔밥 8종을 선보인다. 보자기꽃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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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과 배달의 간극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요리를 선보이기보다 비빔밥으로 승부를 걸었다. 재료도 식당과 똑같이 썼다. 유기농 백미로 밥을 짓고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한 국산 나물, 무항생제 방사유정란 지단채, 무항생제 육류, 유기인증 한우, 통영에서 공수하는 신선한 멍게와 해초 등이 들어간 비빔밥 8종을 선보인다. 오히려 코스로 즐길 수 있는 식당과 달리 한 그릇으로 즐겨야 하는 점을 감안해 나물의 가짓 수와 양을 늘려 영양을 고루 섭취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포장, 배달 과정에서 형태가 흐트러질 수 있어 밥과 고명을 따로 분리해 담았다. 분리돼 있어 밥이 식더라도 따로 데우기 용이하다. 밥이 조금 식더라도 비비기 편하도록 나물을 더 잘게 썰어 넣었다. 송 대표는 "도시락이라고 해서 대충 만드는 게 아니다"라며 "식당에 비해 보기에는 못 미칠지 몰라도 맛에서만큼은 큰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포장 용기도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 환경에 피해를 덜 입히기 위해 코팅이 되어 있지 않은 자연 분해되는 재생 종이로 만든 용기를 쓴다. 비빔밥에 곁들일 국도 제공하고 싶지만 플라스틱 용기 외에는 뜨거운 국물을 담기가 어려워, 아예 된장국이나 사골 국물을 농축한 제품도 개발하고 있다.

식당에서 내는 요리 못지않게 공을 들인 도시락 하나 가격은 1만2,000원(감격해주꽃밥) 안팎. 다양한 반찬과 국, 디저트 등이 제공되는 2만8,000원짜리 식당의 점심 코스 요리에 비하면 저렴하지만 일반적인 배달 비빔밥(8,000원)보다는 가격이 다소 높다. 하지만 원가는 식당의 점심 코스 요리와 맞먹고, 일반 비빔밥보다 5배나 높다. 수지타산이 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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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은 '보자기꽃밥' 대표는 코로나 이후 건강한 재료로 만든 맛있는 음식을 원하는 사람들이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배우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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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연 지 3개월째. 매달 적자다. 송 대표는 "피자나 스파게티는 2만원대라도 시켜먹지만 비빔밥은 1만원만 넘어가도 비싸다는 인식이 커 수익을 정말 최소화해 가격을 정했다"며 "수익만을 목적으로 했다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였을 수도 있지만 건강한 재료들을 생산자들이 안정적으로 생산하고, 소비자들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선순환의 구조를 늘리는 측면에서 우리 같은 식당이 하는 역할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뚝심있게 말했다. 현재는 서울에만 배달이 가능하지만, 향후 전국에 택배 서비스도 할 계획이다.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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