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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단독]‘그림자 아이’ 알리, 병원비 걱정 덜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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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 태어났지만 출생등록 못해… 법원서 지난달 부모 난민 인정

두 자녀도 뒤늦게 건보 등 혜택

국적취득 연계 안돼 “끝 아닌 시작”

동아일보

지난해 12월 법원 판결을 통해 난민 인정을 받은 알리(가명·3)네 가족. 아버지에게 안긴 알리가 동생인 마르와(가명·2)를 내려다보고 있다. 공익법센터 어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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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가족이 난민 인정을 받게 돼 태어나자마자 응급실 신세를 진 둘째 아기 병원비를 이제라도 지원받을 수 있어 다행입니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출생 등록을 할 수 없는 ‘그림자 아이’로 지내온 알리(가명·3)와 마와르(가명·2) 형제의 아버지 A 씨는 15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들뜬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중동 국가에서 박해를 피해 한국으로 온 A 씨 부부는 법무부에서 난민 불인정 처분을 받았지만 이후 2년 만인 지난해 12월 법원으로부터 난민 인정 확정 판결을 받았다.

A 씨는 본국에서 언론인으로 일하며 군사정권 반대 시위를 하다 불법 체포와 고문을 당했다. 이후에도 ‘고문 반대’ 운동을 하다가 가족이 체포되는 등 박해가 심해지자 2016년 한국에 왔다. 아내도 이듬해 입국했다. 그러자 본국 정부는 A 씨에게 구금 7년형의 유죄 판결을 내리고 A 씨의 형제를 교도소에 가뒀다.

A 씨 부부는 2018년 법무부에 본국에서 박해당한 증거들을 제출했지만 난민 인정을 받지 못했다. “충분히 근거 있는 공포가 있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몇 달 뒤 A 씨가 청와대 앞에서 난민 인권 관련 단식 농성을 벌였을 때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이 농성장을 찾아 A 씨를 격려하기도 했다.

법원은 법무부와 판단이 달랐다. 1심을 맡은 인천지법은 지난해 2월 “박해의 위험이 존재한다”며 A 씨 부부를 난민으로 인정했다. 2심인 서울고법도 지난해 12월 같은 판결을 내려 난민 인정이 확정됐다. 이에 따라 A 씨의 자녀인 알리와 마와르도 난민 신분을 얻게 됐다. 난민으로 인정되면 건강보험 등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영유아들에게 필수적인 예방접종이나 병원비를 지원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동생 마와르에겐 건강보험을 통한 병원비 지원이 더욱 절실했다. 마와르는 2019년 11월 심장질환을 가지고 태어나 15일 동안 응급실에 입원하며 치료를 받았다. A 씨는 “당시 건강보험이 안 돼 1000만 원의 병원비를 내야 했다”며 “고비를 넘긴 뒤에도 자주 병원에 가야 했는데 하루에 100만 원이 들 때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결핵, 일본뇌염, 수두 등 영유아의 개월 수에 맞춰 10가지가 넘는 예방접종을 할 때도 많은 돈을 냈다고 한다.

A 씨는 “이제 우리 아기를 덜 아프게 해줄 수 있어서 기쁘다”고 말했다. 하지만 알리 형제가 한국 국적을 얻은 것은 아니다. A 씨 가족을 대리한 공익법센터 어필의 이일 변호사는 “난민 인정은 끝이 아닌 시작”이라며 “현행법상 한국 국적이 없으면 의무교육 대상이 아니어서 취학통지서가 발부되지 않고 여러 아동복지 혜택에서 소외된다”고 말했다.

박상준 기자 speak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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