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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전술핵’ 내세운 북한...선제 핵공격 가능성 열었다 [박수찬의 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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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지난 14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노동당 제8차 대회 기념 열병식에서 KN-23 단거리 탄도미사일 개량형이 등장하고 있다. 조선중앙TV·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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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5~7일 실시된 노동당 제8차 대회 사업총화보고에서 “핵무기 소형경량화, 전술무기화를 발전시킨다”라며 전술핵무기 개발을 언급했다. 김 위원장이 공개석상에서 전술핵을 거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북한 매체들이 당 규약 개정을 보도하면서 “조국 통일을 위한 투쟁 과업 부분에 강력한 국방력으로 군사적 위협을 제압해 조선(한)반도의 안정과 평화적 환경을 수호한다는 데 대해 명백히 밝혔다”고 밝힌 것을 감안하면, 북한 전술핵의 표적은 한국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핵공포로 전쟁 주도권 장악하려는 북한

일반적으로 핵보유국은 ‘적이 먼저 핵공격을 하지 않는 한, 우리도 핵무기를 쓰지 않는다’는 핵 불사용 원칙을 따른다. 비핵국가들이 핵무기 개발에 나서지 않도록 하면서, 핵보유국 간의 갈등이 핵전쟁을 번지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다.

그런데 북한은 당대회 사업총화보고를 전하면서 “1만5000㎞ 사정권 안의 전략적 대상들을 정확히 타격 소멸하는 명중률을 제고해 핵 선제 및 보복 타격 능력을 고도화할 목표가 제시됐다”고 밝혔다. 선제 핵공격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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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노동당 제8차 대회 기념 열병식에 참석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검은 털모자를 쓴 채로 만족한 듯한 웃음을 짓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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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주장은 14일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당 8차 대회 기념 열병식에서 현실로 나타났다. 탄두 모양이 뾰족해지고 길이가 길어진 ‘북한판 이스칸데르’ KN-23 단거리 탄도미사일 개량형이 처음 등장했다.

전술핵을 탑재한 채 기존보다 더 빠른 속도로 비행할 수 있는 능력을 추구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한·미 연합군이 제대로 대응할 여유를 주지 않겠다는 의도도 읽힌다.

조선중앙통신은 열병식 소식을 전하면서 “첨단무기들이 핵보유국으로서의 우리 국가의 지위,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보유한 우리 군대의 위력을 확증해줬다”며 “이름만 들어도 적대 세력들이 전율하는 당의 믿음직한 핵무장력인 전략군 종대에 관중들은 환호를 보냈다”고 전했다.

북한의 이같은 모습은 과거와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북한은 화성-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을 개발하며 미국 본토 공격 능력 확보에 총력을 기울였다. 미국 본토에 핵탄두를 한 발이라도 떨어뜨릴 수 있다면, 미국에 대한 최소한의 억제력은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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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노동당 제8차 대회 기념 열병식에서 KN-23 단거리 탄도미사일 개량형이 등장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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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수천 개의 핵탄두와 ICBM, 전략폭격기, 전략핵추진잠수함을 보유한 미국을 상대로 북한이 핵전쟁을 벌일 역량은 없다는 관측이 많았다. ‘핵전쟁은 핵탄두를 많이 갖고 있는 쪽이 이긴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한반도 유사시 북한이 언제든 핵무기를 선제 사용할 수 있다며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면, 한미 연합군의 대응은 제약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이 수도권을 겨냥해 선제 핵공격을 감행한다고 하면, 한미 연합군이 공세적인 자세를 취할 수 있을까. 한미 군 당국을 주저하게 하는 방식으로 북한은 한반도 유사시 전쟁을 어디까지 확대할 것인지를 먼저 정할 수 있는 ‘키’를 얻게 된다.

그리고 그 ‘키’는 단거리 탄도미사일 등에 탑재될 전술핵이다. 전쟁에서 주도권을 잃고도 승리하는 군대는 없다.

특히 북한이 핵무기의 명중률과 함께 언급한 것은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2016년 당 7차 대회에서는 ‘자주권 침해 시 선제 핵공격’을 거론했다. 모호한 개념인 자주권을 내세워 언제든 선제 핵공격을 감행할 수 있다는 점을 과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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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노동당 제8차 대회 기념 열병식에서 KN-23 단거리 탄도미사일이 등장하고 있다. 노동신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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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5년 후에는 명중률과 전술핵을 콕 찍어 언급했다.

이는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최소 수준으로 핵 억제력을 보유하는 최소억제전략이나 제한적인 수량의 핵무기로 맞서는 제한전략이 아닌, 본격적인 군비경쟁을 동반하는 최대억제전략으로 전환할 가능성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최대억제전략은 핵무기로 적 도시와 군대, 군사거점을 타격할 수 있다고 위협애 선제 핵공격을 저지하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서는 적보다 질적, 양적으로 우수한 핵무기를 갖춰야 한다.

적 전략 거점을 정밀하게 타격하는 1차 공격 능력과 SLBM으로 대표되는 반격 능력이 필수다. 북한이 노동당 8차 대회에서 거론한 것과 맞아떨어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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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노동당 제8차 대회 기념 열병식에서 지대지전술유도무기가 등장하고 있다. 노동신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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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발 ‘핵공포’에 대응할 수단 있나

북한의 공세적인 핵무기 운용에 한국이 대응할 수단이 있을까. 미국의 전술핵 반입은 정치권에서 자주 등장하는 카드지만, 실효성이 없다는 평가다.

버웰 벨 전 주한미군사령관은 지난해 11월 미국의소리(VOA)에 보낸 성명에서 “미국의 한반도 전술핵 배치는 효과보다 전략적 손실이 더 크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은 한국 영토에 핵무기를 반입할 계획이나 이미 배치했다는 사실을 절대 알리지 않을 것”이라며 “핵무기를 잠재적 전투 구역으로부터 먼 곳에 두는 것이 최선책”이라고 강조했다.

정치적 의미가 없는 전술핵 배치 대신 미 본토에서의 핵우산 제공이 더 효과적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미군은 본토나 괌 앤더슨 공군기지에서 전략폭격기를 출동시킬 수 있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도 언제든 발사가 가능하다. 한미는 매년 안보협의회(SCM)에서 이들 전력을 포함하는 미국의 핵우산 제공을 재확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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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10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서 북극성-2형 준중거리탄도미사일이 등장하고 있다. 노동신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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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탄도미사일 탐지, 교란, 파괴, 방어를 망라하는 4D 작전개념도 발전시키고 있다. 한미는 2016년 이후 4D 작전개념 이행 지침을 토대로 동맹의 의사결정, 기획, 지휘통제, 훈련, 능력발전 분야에 대한 4D 이행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핵우산 제공이나 동맹 차원의 협력만으로 북한 위협을 완벽하게 저지할 수 없다. 북한이 핵과 탄도미사일을 사용하기 전에 독자적으로 타격하는 작전도 준비할 필요가 있다.

기존의 킬 체인(Kill chain)과 대량응징보복(KMPR) 체계를 포괄하는 전략적 타격체계 조기 구축이 절실한 이유다. 북한이 노동당 8차 대회에서 전술핵을 공식 거론한 이후 전략적 타격체계에 대한 군 안팎의 관심이 높아진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하지만 군 안팎에서는 전략적 타격체계를 구축하는 작업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북한은 한미 군 당국이 기존에 파악한 핵, 미사일 기지가 아닌, 모처에 숨겨둔 이동식발사차량(TEL)을 이용해 기습 공격을 감행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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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10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서 화성-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이 등장하고 있다. 노동신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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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저지하려면 신속하고 정확하게 표적을 탐지, 타격해야 한다. 한국군은 탄도미사일 등 타격 수단을 확보했지만, 표적을 포착하는데 필요한 감시정찰 능력은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다양한 수단을 통해 확보한 정보를 융합해서 군 수뇌부에 제공하는 정보체계는 2020년대 중반쯤 전력화가 가능하다.

북한 핵과 미사일 대응 능력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의 핵심 요소다. 한국군이 북한 전술핵에 맞설 능력을 얼마나 빨리 확보하느냐에 따라 전작권 전환 시기도 앞당겨질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이 핵무력 증강에 본격적으로 나서면 군 당국도 그만큼 대응전력을 더 많이 갖춰야 해 전작권 조기 전환은 쉽지 않다는 관측도 나온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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