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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르포] 취임식 앞둔 워싱턴 시내 “중무장 군인·경찰 넘쳐나...폭풍전야 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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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 의사당 인근 중무장 군인, 경찰 배치
지하철역 폐쇄, 다리 봉쇄, 내셔널몰 접근 금지
노점상, 산책 시민, 관광객도 넘쳐 '일상은 유지'
한국일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식을 사흘 앞둔 17일 워싱턴 국회의사당 인근에서 주 방위군이 출입을 통제한 채 경비를 서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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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 취임식을 사흘 앞둔 17일(현지시간) 워싱턴 중심가. 미 연방수사국(FBI)이 극우단체 무장시위 가능성을 경고한 주말 일요일이었던 만큼 시내는 폭풍 전야 같은 긴장감이 가득했다. 백악관과 국회의사당 등 주요 시설 주변은 2m가 넘는 철책과 콘크리트 블록, 각종 트럭과 중장비 등으로 봉쇄됐고, 중무장한 군인과 경찰이 거리에 넘쳐났다. 다만 한편에선 시위대뿐만 아니라 노점상, 관광객, 산책 나온 워싱턴 주민 등이 거리에 늘어나면서 ‘바이든 시대’ 개막을 기다리는 미국인들의 희망도 느껴졌다.

워싱턴은 15일부터 외곽에서 들어오는 도로와 지하철 등이 봉쇄되기 시작했다. 백악관과 의사당에 접근하기 용이한 시내 13개 지하철역이 폐쇄돼 지하철은 이 역들을 무정차 통과하고 있다. 버지니아주(州)에서 포토맥강을 건너 워싱턴 시내로 진입할 수 있는 6개의 다리 중 4개는 취임식을 앞두고 폐쇄됐거나 폐쇄될 예정이고, 나머지 다리도 검문검색이 강화됐다. 반대편 메릴랜드주에서 워싱턴으로 향하는 도로도 마찬가지다. 6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 시위대의 의사당 난입 사태 이후 워싱턴 시내 경호경비가 강화된 데다 새 대통령 취임식까지 앞둔 상태여서 경비는 더 엄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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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미국 워싱턴 포기바텀 인근에서 주 방위군이 거리를 막은 채 경계를 서고 있다. 워싱턴=정상원 특파원


이날 오전 백악관에서 0.7마일(1.1㎞) 떨어진 포기바텀역 지하철 계단을 올라가자 입구부터 경찰들이 눈에 띄었다. 미 비밀경호국이 워싱턴 중심부에 설정한 차량 출입 통제용 ‘그린존’과 ‘레드존’ 바로 바깥인 이곳부터 동쪽 백악관으로 향하자 소총을 든 주방위군과 무장 경찰이 10여명씩 조를 이뤄 길목마다 서 있었다.

그러나 지나가는 사람들을 통제하는 것은 아니었다. 워싱턴 시내에 산다는 바클리는 “군인과 경찰이 많기는 하지만 상황이 급하다는 느낌은 없다”고 설명했다.

10분여를 걸어 백악관 북서쪽 패러것공원에 도착하자 트럼프 대통령 모자와 티셔츠를 파는 노점이 눈에 띄었다. 엘살바도르 출신에 인근에서 꽃집을 운영한다는 60대 루디아는 사람들이 몰릴 것 같아 노점도 함께 열었다고 소개했다. 바이든 당선인 기념품을 찾자 마스크와 달력을 내놨다. “공산주의를 피해 미국에 왔다. 트럼프는 아주 강해서 좋았다. 범죄자들도 소탕했고. 바이든은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돈을 벌게 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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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 북쪽 라파예트광장 인근 BLM 시위 현장에서 시민들이 시위를 준비하는 사람들을 촬영하고 있다. 워싱턴=정상원 특파원


백악관 북쪽 입구인 라파예트광장은 지난해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ㆍBLM)’ 시위 이후 설치된 철책이 여전했다. 하지만 오전부터 음악을 틀어놓은 5명의 시위대가 깃발을 흔들며 구호를 외쳐대고 있었다. 깃발에는 ‘트럼프는 꺼져라’ ‘경찰의 잔혹성도 문제다’ 등의 글귀가 쓰여 있었다. 현장을 지키던 한 흑인 활동가는 “취임식 이후에도 우리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여기를 지킬 것”이라고 설명했다.

백악관에 가까워질수록 통과할 수 없는 거리가 늘었다. 외신 기자증을 보여주며 우회해 아카이브-해군 기념관 지하철역 근처에 도착하자 펜실베이니아애비뉴로 향하는 검색대가 있었다. 폭발물, 장난감 총기, 폭죽, 플래카드 같은 휴대 금지 품목을 적어둔 입간판을 지나 간단한 검색 절차를 마치면 대로로 이어진다. 워싱턴 시민과 관광객들이 줄을 서서 검문을 통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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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과 국회의사당을 잇는 주요 도로인 펜실베이니아애비뉴에 차량이 통제돼 시민과 관광객들이 거리 한가운데를 걸어가고 있다. 워싱턴=정상원 특파원


펜실베이니아애비뉴는 워싱턴 백악관과 의사당을 잇는 2㎞ 정도 되는 8차선 대로다. 미국 대통령 취임식이 열리면 의사당 앞에서 취임 선서를 마친 신임 대통령이 차를 타고 가다 내려서 시민들의 환호를 받으면서 걸어가 백악관에 입성하는 길이다. 일단 20일에도 이 길에서 기념행사를 할 가능성은 남아 있지만 일정은 확정되지 않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취임식 참석 인원 자체가 1,000명 안팎으로 축소된 데다 대규모 거리 행사가 취소될 가능성이 높아져서다.

차량이 통제된 펜실베이니아애비뉴 한가운데를 걸어 의사당 서쪽 입구에 도착하자 철책이 의사당을 사방으로 둘러싸고 있었다. 안쪽에는 6일 저녁부터 배치된 주방위군이 삼엄하게 경비를 서는 모습이었다. 의사당 서쪽 취임식 행사장에는 미국 국기를 걸어둔 채 18일 행사 리허설 준비가 한창이었다. 휴일이라 의사당 건물은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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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미국 워싱턴 버스정류장에 6일 국회의사당에 난입했던 시위대의 신원 제보를 요청하는 광고판이 가동되고 있다. 워싱턴=정상원 특파원


길을 돌아 나와 워싱턴의 상징적 공간인 내셔널몰 쪽으로 향했지만 경찰이 길을 통제했다. 동서 3㎞, 남북 500m 정도 넓이의 내셔널몰 잔디밭은 역대 대통령 취임식마다 수백만 인파가 몰리는 곳이지만 올해는 미 국립공원관리청(NPS)이 철책을 둘러 접근 자체를 금지했다. 함께 걷던 관광객들은 기념사진만 촬영한 뒤 발길을 돌리는 모습이었다. 인근 버스정류장 광고판마다 6일 의사당에서 난동을 부린 수사 대상자 얼굴이 대문짝만한 영상으로 표출되고 있었다.

워싱턴 시내에는 취임식까지 2만5,000명의 주방위군이 배치된다. 주한미군(2만8,500명) 주둔 규모에 육박하는 군인에 경찰과 연방기관 인원까지 합치면 4만명 이상의 인력이 철통 경계를 펼치게 되는 셈이다. FBI의 무장시위 경고에 따라 워싱턴 이외에 50개 주의회에도 주방위군과 경찰이 배치돼 집중 경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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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식을 사흘 앞둔 17일 워싱턴 국회의사당 인근을 주 방위군이 지나고 있다. 미 당국은 오는 20일 의사당에서 열릴 취임식을 앞두고 만일의 폭력 사태에 대비해 워싱턴DC에 투입할 주 방위군을 2만5,000명까지 늘릴 계획이다. 워싱턴=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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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리엘 바우저 워싱턴 시장은 이날 미 NBC 인터뷰에서 “연방기관이 밀집해 있는 워싱턴 시내를 중심으로 경계 강화가 이뤄지고 70만 시민이 사는 지역은 그렇지 않다”며 “경찰, 연방기관, 군은 주택가에 어떤 공격이 있으면 대응할 계획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워싱턴 의사당 인근 보안 검색대에서 총기를 소지한 22세 남성이 체포되고 전날에는 법 집행관을 사칭한 여성이 검문 중 달아났다 붙잡히기도 했다고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워싱턴= 정상원 특파원 orn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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