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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최유식의 온차이나] 중국 코로나, 또 찾아온 ‘춘제 악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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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우한처럼 춘제 앞두고 스자좡서 코로나 급속 확산... 방역 실패하면 공산당 지도부 정치적 타격 불가피

춘제(春節·설)를 20여일 앞둔 요즘 중국 정부는 호떡집에 불이라도 난듯한 분위기입니다. 한동안 소강 상태였던 코로나 사태가 대규모 인구 이동이 일어나는 춘제를 전후해 다시 폭발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죠.

◇농민공, 학생 등 3억 인구 고향 찾아 대이동

설은 우리에게도 중요한 명절이지만, 중국인들에게는 그 의미가 더 각별합니다.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일하는 농민공(농촌 출신 이주 근로자)이나 학생들은 1년에 한번 있는 춘제 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죠. 노부모를 상봉하고 두고온 아이들을 만나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그 시기를 놓치면 다시 1년 세월을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죠. 2~3일씩 걸려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고향으로 가는 이들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춘제 연휴는 공식적으로 7일이지만, 실제로는 보름 이상으로 이어지죠.

연인원으로 따지만 수십억명이라고 하지만, 실제 춘제 때 고향으로 가는 인원은 3억명 가량입니다. 보통 춘제 보름 전부터 이동을 시작해 고향으로 갔다가 춘제 이후 20일 동안 다시 도시로 돌아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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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 휴가 막고 보너스 주고...범정부 차원 대책 총동원

최근 중국 코로나 상황은 작년 초 데자뷰를 보는 듯합니다. 작년엔 춘제 전 우한에서 코로나 사태가 터졌고, 춘제를 거치면서 전국적으로 확산됐죠. 우한이 봉쇄된 것이 춘제 이틀 전인 1월23일이었습니다.

올해는 베이징에서 불과 250킬로미터 떨어진 허베이성 스자좡이 진원지에요. 경기도가 서울을 둘러싸고 있듯이 허베이성도 베이징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1월초 스자좡시에서 확진자가 발생한 후 그 숫자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죠. 8개월만에 코로나 사망자도 1명 나왔다고 합니다.

중국 당국은 작년 연말부터 쑨춘란 부총리가 이끄는 범정부 합동대책 기구가 대대적인 춘제 방역 대책을 시행하고 있죠. 그 핵심은 귀향객을 최대한 줄이겠다는 겁니다.

국가 공무원과 국영기업 임직원 등은 사실상 허가를 받아야 귀향 휴가를 갈 수 있는 상황이죠. 베이징, 상하이 등 10여개 대도시는 ‘불필요하면 고향 가지 말자’는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고향 가지 않고 거주지에서 춘제를 보내는 이들에게는 춘제 선물 제공과 할인권, 공짜 영화표, 특별보너스 지급 등 갖가지 혜택을 제공한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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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산시성 한양시 첸현 지방정부가 작년 12월31일 이 지역 출신 농민공들에게 보낸 공개편지. 사전에 코로나 검사를 하고 도착 즉시 음성 증명서를 마을 행정기관에 제시해달라는 내용 등이 담겨 있다. /첸현인민정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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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정부 “고향 도착 전 72시간 이내에 받은 코로나 음성 증명 지참하라”

귀향객을 맞는 지방 정부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그 지역 출신 농민공들에게 고향으로 오지 말 것을 호소하는 편지까지 보낼 정도예요.

강도 높은 귀향 규제책도 내놓고 있습니다. 귀향을 하려면 사전에 고향 가족을 통해 귀향 사실을 행정기관에 통보하고, 도착 전 72시간 이내에 받은 코로나 검사 음성 증명서를 지참하도록 하고 있어요. 70여개 위험 지역에서 오는 귀향객은 아예 3일 간 격리시키겠다는 지역도 있습니다.

이런 대책에도 춘제 귀향객은 크게 줄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아요. 귀성 열차 예매 상황 등을 보면 줄어들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소셜미디어에는 ‘코로나 검사 받고 격리 조치를 당해도 고향에 돌아가 가족과 함께 새해를 맞겠다’는 글을 쉽게 볼 수 있어요. 중국의 춘제 방역은 여전히 위태위태해 보입니다.

중국 정부가 비상 대책을 시행하는 첫번째 목적은 당연히 방역이죠. 귀향객들이 돌아가는 곳은 대부분 농촌 지역입니다. 농민공들은 쓰촨성, 후난성, 허난성, 안후이성 등 가난한 내륙 성 출신들이 많아요.

농촌은 도시에 비해 체계적인 방역 대책을 시행하기가 쉽지 않고 의료시설도 낙후돼 있습니다. 또 50대 이상 장년층, 노년층 비율이 높아 감염 시 사망 위험도 그만큼 커지겠죠.

◇작년 춘제 방역 실패, 시 주석 책임론으로 이어져

공산당 입장에서 보면 정치적 고비입니다. 우한에서 코로나가 대대적으로 확산되고 있던 작년 1월초 중국 질병예방 당국은 중앙 당 지도부에 강도 높은 통제책을 요구했죠.

하지만 1월7일 열린 시진핑 주석 주재 정치국 상무위 회의에서는 “주의해서 대응하되, 불필요한 혼란을 일으켜 곧 다가오는 춘제 분위기에 영향을 주지 않아야 한다”는 지침이 나왔습니다. 이 발언의 당사자가 시 주석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시 주석 책임론이 대대적으로 불거졌죠.

중국은 이후 강도 높은 봉쇄 조치를 동원해 겨우 코로나 확산을 막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작년 초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어요. 더욱이 허베이성은 베이징과 가깝습니다. 자칫 허베이성의 코로나 확산세가 베이징으로 이어진다면 내년 3월초 예정된 양회(중국 최대정치행사) 일정을 연기해야 할 수도 있어요. 시 주석을 비롯한 공산당 지도부로서는 작년보다 더 큰 정치적 타격을 입을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전체 주민 2만여명 격리 시설 보내고 마을 통째로 소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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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11일 중국 허베이성 스자좡시 가오청구 주민들이 다른 지역 격리시설로 가는 버스에 탑승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AP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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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11일 스자좡시 외곽 가오청구는 12개 마을 전체 주민 2만여명을 다른 지역 격리 관찰 시설로 이주시켰습니다. 마을을 통째로 비워 소독을 하고, 격리 관찰을 통해 음성이 확인되면 주민들을 다시 돌려보내겠다는 거죠.

이런 식의 방역은 아마도 중국이 아니면 불가능할 겁니다. 가오청구는 이번에 스자좡시에서 처음으로 확진자가 나온 곳이죠. 중국이 춘제 방역에 얼마나 사활을 걸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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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식 중국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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