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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후 서울 성동구 살곶이다리의 모습. / 권도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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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동구 성수동과 행당동을 이어주는 살곶이다리는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석교 중의 하나다. 중랑천과 청계천이 만나 한강을 약 2㎞ 앞둔 곳에 놓여진 이 다리는 1420년 세종의 명령으로 공사를 시작해 63년 후인 1483년 성종 때 완성되었다. 반석처럼 튼튼하다하여 당시에 제반교(濟磐橋)로 명명했다고 전해진다. 지금 남아 있는 살곶이다리는 중간 부분이 훼손된 채 군데군데 콘크리트로 덧바르는 등 보수한 흔적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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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난간이 없는 살곶이다리는 미끄럼방지를 위해 상판 돌 표면을 거칠게 만들었다. / 권도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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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이 눈 쌓인 살곶이다리를 건너고 있다. / 권도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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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이 눈 쌓인 살곶이다리를 건너고 있다. / 권도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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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이름이 ‘살곶이’가 된 데에는 태종 이방원과 태조 이성계의 일화와 관련이 있다. 태종이 함흥에서 돌아오는 태조를 중랑천에서 맞이하는데 이 때 태조가 태종을 향해 활을 쏘았고, 빗나간 화살이 땅에 꽂혔다. 그 이후로 이 지역을 ‘화살이 꽂힌 곳’이라 하여 화살꽂이에서 살꽂이로 변화를 거치며 ‘살곶이’라는 지명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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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이 반려견과 함께 살곶이다리를 건너고 있다. / 권도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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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잡고 다리를 건너는 아버지와 아들. / 권도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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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간 안타까운 사연에서 비롯된 이름이었지만 500년도 넘는 세월이 지난 다리의 풍경은 달랐다. 아직 눈이 다 녹지 않아 다소 미끄러운 다리 초입에 들어선 아버지가 아들에게 “미끄러워 조심해”라고 말하자 함께 온 아들은 살갑게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난간이 없어 잡을 곳이 없는 다리는 대신 옆사람의 손을 꼭 잡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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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곶이다리를 건너는 엄마와 아이들. / 권도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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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를 건너다 멈춘 엄마와 아이들이 물 속을 보며 이야기하고 있다. / 권도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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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손을 잡고 다리를 건너는 아이들은 난간이 없는 다리를 건너며 연신 물 속을 바라보기 바빴다. 아이들이 멈춰 강물 속을 바라볼 때면 엄마는 아이들과 함께 수그려 물 속에 무엇이 보이는지 물었다. 물끄러미 물 속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던 엄마와 아이들은 다시 손을 잡고 다리를 건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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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살곶이다리의 모습. / 권도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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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곶이다리 옆으로 한양대학교 건물과 동부간선도로의 모습이 보인다. / 권도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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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게 솟은 빌딩과 차가 빠르게 달리는 고가들 사이에서 살곶이다리는 유유히 자신만의 시간을 지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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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살곶이다리의 모습. / 권도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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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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