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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재벌총수 '3·5 법칙' 깨졌지만…이재용 양형 논란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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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특혜' 징역 3년·집유 5년 전망 깨져

수동적이면서 적극적 뇌물? 감형엔 물음표

"기회주의적 판결" "양형재량 과다" 법원 비판도

CBS노컷뉴스 정다운 기자

노컷뉴스

'국정농단' 뇌물공여 혐의를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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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은 국정농단 사건의 일부분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동안 정치권력이 바뀔 때마다 반복돼왔던 삼성 최고 경영진이 가담한 뇌물·횡령죄의 연장선상에 있기도 합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한 서울고법 형사1부(정준영·송영승·강상욱 부장판사)는 18일 선고 현장에서 이 부회장을 포함한 피고인들에게 이같이 말했다. 판결문에는 적지 않은 내용이다.

1심에서 징역 5년, 2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던 이 부회장은 이번 파기환송심에서도 집행유예가 유력할 것으로 전망됐다. 대법원에서 뇌물로 본 액수가 50억원이나 증가해 총 86억원이 뇌물·횡령액으로 인정됐지만,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첫 재판부터 '치유적(회복적) 사법' 차원에서 양형을 검토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이런 재판부 기조에 부응해 삼성은 곧장 준법감시위원회를 만들었고 이 부회장은 대국민 사과까지 했다. 과거 고(故) 이건희 회장 당시 삼성을 비롯해 현대차·SK·한화·LIG 등의 재벌 총수들이 얼마나 중한 죄를 짓든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받고 일상으로 복귀하는 이른바 '3·5법칙'이 이 부회장에게도 적용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재판부의 판단은 예상을 벗어났다. 재판부는 "우리나라 최고 기업이자 자랑스러운 글로벌 혁신 기업인 삼성이 정치권력이 바뀔 때마다 범죄에 연루된다는 것이 매우 안타깝다"며 "최지성 피고인도 최후진술에서 이러한 불행이 저희 세대에서 그치고 후배들에게는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냐"고 설명했다.

삼성 창업주인 고(故) 이병철 회장은 박정희 정권 당시 '사카린 밀수사건'에 연루됐지만 기소를 피했고, 전두환 정권에도 220억원대 뇌물을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당시 이미 사망해 불기소) '2대 총수'인 고 이건희 회장은 노태우 정권 당시 '비자금 조성 및 뇌물 의혹'에 연루됐으나 구속은 피하고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2000년대 '삼성 비자금 폭로 사건'으로도 기소됐지만 여기서도 '3·5 법칙'의 혜택을 받았다.

약 20년이 지나 이 부회장에 대해서는 불기소·불구속 특권이 적용되지 않으면서 '총수에 대한 법원의 판단 기조가 변했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준법감시위원회의 실효성을 확보하려는 이 부회장의 진정성과 노력을 높게 평가하면서도, 앞으로 발생 가능한 새로운 유형의 위험을 예방하고 감시하는 수준엔 못 미쳤기 때문에 양형에 참작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재판부가 준법감시위를 통해 '총수 비리' 재발 가능성이 없다는 확신을 얻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반면 애초부터 재판부가 정식 양형요소도 아닌 준법감시위를 피고인에게 먼저 제시한 것부터 재판이 신뢰를 잃었으며, 2년 6개월의 형량이 부적절하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대법원 양형기준에 따르면 이 부회장에게는 징역 4~7년이 선고돼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이를 이탈해 법률상 가능한 최저수준의 형량이 선고됐기 때문이다.

양형기준은 권고사항이긴 하지만, 양형기준을 벗어난 판결을 할 때는 법원조직법에 따라 그 이유를 반드시 적시해야 한다. 양형기준은 통상 90% 이상의 준수율을 보이기 때문에 양형기준 이탈이 불가피한 특별한 사정이 반영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날 재판부가 적시한 양형이유 중 대법원 판단과 달라진 새로운 대목은 '전 대통령이 먼저 뇌물을 요구했다는 점에서 수동적 공여로 볼 측면이 있다'는 점이었다. 이 부회장이 삼성그룹 승계에 도움을 받기 위해 '부정한 청탁'과 '적극적 뇌물' 제공을 했다고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범행의 단초 자체는 수동적이었다는 상반되는 해석을 한 것이다.

판결에 대해 참여연대와 경제정의실천연합(경실련), 경제민주주의21 등 시민단체들은 "재판부가 대법원 판결 취지와 어긋나게 '소극적 뇌물공여'를 인정하면서 기회주의적으로 솜방망이 처벌을 했다"고 일제히 비판했다.

또 최고경영자 개인이 저지른 횡령 범죄의 피해자인 회사가 준법감시조직을 사후적으로 신설하는 것이 '범행 후 정황' 요소로 참작될 수 있는 불합리한 사례를 만들었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번 판결이 앞으로 재벌 총수의 배임·횡령 등 범죄에 면죄부를 줄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라는 우려다.

고등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피고인의 실형·집유 논란을 떠나 법관이 적극적으로 규정에도 없는 감형사유를 제시하더니 추후 반영 여부도 자의적으로 결정했다"며 "결과적으로 과거나 지금이나 법관에게 주어진 양형 권한이 너무 과도하다는 문제가 드러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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