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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가습기살균제 무죄, 과학방법론 무지"…전문가들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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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케미칼·애경 전 대표 등, 1심서 모두 무죄

"재판부, 과학적 연구 결과 해석에 서툴러"

증인 섰던 전문가 "재판부 종합 판단 안해"

뉴시스

[서울=뉴시스]박주성 기자 = 인체에 유독한 원료 물질로 만들어진 가습기 살균제를 유통·판매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SK케미칼·애경 전 대표와 임직원들이 1심 무죄를 선고 받은 지난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조순미 씨가 선고 결과를 듣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21.01.12. park769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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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정윤아 기자 = 최근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사 임직원들이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 1심에서 무죄를 받은 가운데, 재판에 증인으로 참석했던 학계 전문가들이 "법원이 과학적 방법론에 무지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해 활동하는 단체인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가습기넷)는 19일 오전 참여연대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박태현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과학적 연구가 어떤 방법으로 증명되는지와 연구결과 해석 평가 방법에 대해 재판부가 잘 모른다"며 "재판부는 과학적 연구 결과 해석에 서투를 수 밖에 없다. 재판부는 인체 피해 사례와 이에 기반한 연구 중요성과 가치를 지나치게 낮게 평가하고 한계가 있는 동물실험에 지나친 비중을 두려고 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공소사실에 해당하는 증언이 단정되지 않았다고 거듭 지적했는데 이것도 과학자의 일반적인 태도에 무지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재판에서 증언을 했던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등 학계전문가와 한국환경보건학회 관계자들이 살균제에 들어간 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과 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의 유해성을 법원에서 어떻게 판단했는지를 설명했다.

이들은 과학적 방법에서는 확신이란 표현을 쓰지 않고 측정의 오류 등 다양한 변수와 나중에 바뀔 수 있을 가능성을 위해 가설을 사용하는데, 법원에서는 개별의 실험과 인과관계를 종합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분명하고 단정적인 인과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내렸다고 했다.

백 교수는 "재판을 통한 법적 논증 내지는 다툼과 연구를 통한 학술적 검토가 매우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이번 재판에서 재판부가 종합판단의 근거로 내세운 독성의 확인, 독성물질의 표적장기 도달의 확인, 그리고 도달한 양이 충분한 정도인지의 확인이라는 세 가지 조건의 종합적 확인은 전형적인 위해도 평가의 관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러나 이런 위해도 평가는 실제 그 독성물질의 영향이 충분히 공식적으로 확인되는 경우 사용되는 방법으로서, 그렇게 공식적으로 충분하게 확인되기 이전에는 평가에 사용하는 모델과 가정의 특성상 오류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학술적으로는 위해성 평가의 방식이 아니라 역학조사의 방식이 인과관계 판단의 기본을 이루고 있다"며 "역학조사에서 어떻게 인과관계를 판단하는지에 대해 일부 새롭게 제기되는 개념들도 있지만, 크게 보면 반증과 종합이라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반증과 종합이라는 방식을 놓고 재판부가 고민한 '독성이 확인될 것, 표적장기에의 도달이 확인될 것, 그리고 충분한 양일 것'을 검토하는 경우, 일부 동물실험에서 표적장기에 변화가 없었다는 것, 동물실험에서 천식의 기전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것 등이 실제 폐손상과 천식의 반증이 되지 못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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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주성 기자 = 인체에 유독한 원료 물질로 만들어진 가습기 살균제를 유통·판매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SK케미칼·애경 전 대표와 임직원들이 1심 무죄를 선고 받은 지난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조순미 씨가 선고 결과를 듣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21.01.12. park769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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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대신 단독사용자들에게서 폐기능검사상 확산능이 저하된 것, 폐손상 사례가 발견되는 것, 그리고 그러한 사례들을 모아 양-반응 관계를 검토하면, 양이 아니라 농도가 용량-반응 관계에서 중요하다는 것 등을 통해 CMIT/MIT라는 독성물질이 폐손상을 야기하는 원인일 것이라는 점을 종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역시 증인으로 섰던 이규홍 한국화학연구원 부설 안전성평가연구소 박사의 입장문도 소개됐다.

이 박사는 "저는 이 재판에 수차례 동물독성시험 연구결과에 대해 증언했고 판결문 많은 부분에서 저의 증언이 인용됐다"며 "하지만 제 증언 취지와는 다소 다르게 인용됐다는 것을 느꼈다. 또 단정적으로 사실을 표현하지 않았던 부분이 재판부에겐 증언 취지와 다르게 받아들여졌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판결문에는 여러 부분에서 특정 시험들을 언급하면서 'CMIT/MIT가 폐 내 염증 및 섬유화가 관찰되지 않았다'고 적시했다"며 "그러면서 제가 'CMIT/MIT는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과 달리 폐섬유화와 관련이 없다고 보는 게 맞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심문은 해당 연구결과로 한정해서 인과관계가 성립하는가에 대한 것이었고 '해당 연구결과로만은 관련 없다고 보는게 맞다'는 취지로 답했다"고 전했다.

한국환경보건학회는 1심 재판부 판단에 대해 피해자가 존재하는데도 동물시험에서 피해의 근거를 찾았고, CMIT와 MIT에 대한 독성 실험에서 폐손상 유발 가능성을 짚었음에도 법원이 이를 존중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번 형사재판의 판결 대상은 기업의 위법 행위가 아니고 과학과 연구가 갖게 되는 본질적 한계점이었다며 항소심에서 합리적인 판결을 희망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판사 유영근)는 지난 12일 유해 물질로 만든 가습기 살균제를 유통·판매한 혐의를 받는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아울러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이마트 및 제조업체의 전직 임·직원 등 총 11명에게도 모두 무죄가 선고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yoona@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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